글 신현배 

옛날 미국의 어느 마을에 딸 둘을 데리고 사는 어머니가 있었다. 큰딸은 로즈, 작은딸은 브랜시였다. 로즈는 성미가 고약하고 심술이 많았으나, 브랜시는 마음씨가 착하고 욕심이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브랜시보다 로즈를 더 사랑했다. 그것은 로즈가 자신을 쏙 빼닮아서였다.

어머니는 로즈에게는 전혀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로즈는 날마다 빈둥거리며 놀고먹었다. 하지만 브랜시는 달랐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모두 브랜시에게 시켰기 때문에 브랜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브랜시는 물을 길어 오려고 우물에 갔다. 브랜시가 우물가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긷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불쑥 할머니 한 사람이 나타나 브랜시에게 말했다.

“아가씨, 물을 좀 주시겠소? 날이 몹시 더워서 목이 마르구려.”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브랜시는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올렸다. 그리고 두레박째 할머니에게 건넸다. 할머니는 무척 목이 마른 지 두레박에 담긴 물을 모두 마셨다. 할머니는 빈 두레박을 돌려주며 말했다.

“아가씨는 참 마음씨가 착하구먼. 나중에 하느님에게 복을 받을 거야.”

할머니는 브랜시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며칠 뒤, 브랜시는 어머니에게 별것 아닌 일로 큰 꾸지람을 들었다.

“요 녀석!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니?”

어머니는 몽둥이를 집어 들더니 브랜시를 인정사정없이 마구 때렸다.

“아, 어머니! 아파요. 그만 때리세요.”

“듣기 싫어. 넌 맞아야 해.”

어머니는 더욱더 세게 브랜시를 때렸다. 브랜시는 매를 견디다 못해 집에서 뛰쳐나와 숲속으로 달아났다. 어머니는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매가 무서워 당장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가지?’

브랜시는 울상을 지으며 숲속에 서 있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때 할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여기서 으앙으앙 울고 있으니….”

브랜시가 쳐다보니 우물가에서 만난 적이 있는 할머니였다. 브랜시는 울음을 그치고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전 방금 어머니에게 매를 맞았어요. 또 매를 맞을까 봐 집에 가지 못하겠어요.”

“그래요? 그럼 어머니의 화가 풀릴 때까지 우리 집에 가 있어요. 내가 맛있는 음식을 주고 잠도 재워 드릴게요. 하지만 나와 한가지 약속할 수 있겠어요? 무엇을 보든 절대로 웃지 않겠다고….”

“그럼요. 약속할게요.”

브랜시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자 할머니는 브랜시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요. 이제 우리 집에 갈까요?”

브랜시는 할머니를 따라 나무와 덤불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길이 없는 곳으로 거침없이 발길을 옮겼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가시덤불이 갈라져 길을 열어 주고 두 사람이 지나간 뒤에는 그 길이 닫혔다.

숲속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쯤 걸어가자 놀랍게도 도끼 두 개가 공중에 떠올라 서로 싸우고 있었다.

“쨍, 쨍!”

도끼끼리 부딪쳐 공중에는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브랜시는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얼마쯤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두 팔이 공중에 떠올라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하고 우스웠지만 브랜시는 말을 하거나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다.

할머니와 브랜시는 숲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다리가 공중에 떠올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브랜시는 이 광경을 보고도 못 본 척 그대로 지나쳤다.

얼마 뒤에는 두 머리가 공중에 떠올라 싸우는 광경이 보였다.

그런데 브랜시가 할머니와 함께 지나가자 머리 하나가 아는 체를 했다.

“브랜시, 안녕! 하느님에게 복을 받을 거야.”

브랜시는 머리로부터 인사를 받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하지만 어금니를 물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할머니는 숲속 깊이 들어가자 통나무로 지은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제 다 왔어요.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브랜시는 할머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저녁을 지어야 하니 불을 피우도록 하세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할머니는 브랜시에게 말하고 난롯가에 앉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기 머리를 뚝 떼어 무릎 위에 올려놓더니 이를 잡는 것이다. 브랜시는 몹시 신기했지만 할머니가 무서웠다. 하지만 태연한 척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불을 피웠다.

할머니가 이를 다 잡은 뒤 머리를 집어 올려 제자리에 얹혔다. 그러고는 난롯가에서 일어나 찬장에서 큰 뼈다귀 하나를 꺼냈다.

“아가씨, 이 뼈다귀로 요리를 하세요.”

브랜시는 뼈다귀를 건네받아 냄비 속에 넣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냄비를 불 위에 올려놓자, 그 속에는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가득 채워졌다. 할머니는 쌀 한 톨을 건네며 말했다.

“아가씨, 이 쌀 한 톨을 절구에 넣고 찧으세요.”

브랜시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쌀 한 톨을 절구에 넣고 찧었다. 그러자 절구 속에는 어느새 쌀이 가득 찼다. 브랜시는 그 쌀로 흰 쌀밥을 지었다. 그리고 고기 요리와 함께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끝낸 뒤 할머니가 청했다.

“아가씨, 등이 간지러우니 내 등 좀 긁어 주세요.”

“알겠어요.”

브랜시는 할머니의 옷 속에 손을 넣어 등을 긁기 시작했다. 하지만 등에 깨진 유리조각이 박혀 있어 금세 손을 베었다. 브랜시의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자, 할머니는 손을 ‘후우’ 불었다. 그러자 피가 멎고 상처가 씻은 듯이 나았다.

브랜시는 할머니의 집에서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깨어나자 할머니는 브랜시에게 말했다.

“아마 지금쯤 어머니의 화가 풀렸을 거예요. 이제 그만 집으로 가세요. 아가씨는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니 착한 아가씨에게 달걀을 선물로 드릴게요. 집 밖으로 나가면 닭장이 있어요. 닭장에 가면 달걀들이 입을 열어 말할 거예요. 그중에서 ‘나를 집어요’ 하고 말하는 달걀들만 가져가세요. ‘나를 집지 말아요’ 하고 말하는 달걀들은 가져가지 마시고요. 달걀을 들고 길을 가다가 등 뒤로 던져 깨뜨리세요.”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브랜시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닭장에 들어갔다. 닭장에는 달걀들이 있었는데, 브랜시가 나타나자 저마다 입을 열어 말했다.

“나를 집어요.”

“나를 집지 말아요.”

브랜시는 “나를 집어요”하고 말하는 달걀들만 따로 챙겨 들고 길을 떠났다.

브랜시는 집을 향해 가다가 길가에서 달걀들을 등 뒤로 던졌다. 그러자 달걀들이 깨지며 그 속에서 다이아몬드, 황금, 진주 등 온갖 값진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브랜시는 이 보석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나! 이 귀한 보석들을 어디서 얻어왔니?”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브랜시에게 물었다. 브랜시는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브랜시 덕분에 부자가 되었지만 더 큰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큰딸 로즈를 불러 말했다.

“너도 브랜시에게 이야기를 들었지? 숲속에서 할머니를 찾아 그 집에서 묵어라. 말하는 달걀을 선물로 주면 받아 오고…. 오다가 달걀을 등 뒤로 던져 깨뜨리는 것 잊지 말아라.”

로즈는 숲속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로즈가 어머니에게 매를 맞아 집에 가기 싫다고 하자, 자기 집에서 재워 주겠다고 했다.

로즈는 할머니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집으로 가는 길에 도끼, 팔, 다리, 머리 등이 싸우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로즈는 할머니의 당부를 어기고 깔깔대고 웃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집에 도착해 할머니가 자기 머리를 뚝 떼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이를 잡는 광경을 보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할머니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와의 약속을 잊었니? 무엇을 보든 절대로 웃지 않겠다고 했잖아. 너는 약속도 밥 먹듯이 어기는 못된 아이로구나. 너한테 많이 실망했다.”

할머니는 로즈를 자기 집에서 재워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로즈에게 말했다.

“너도 우리 집에 온 손님이니 달걀을 선물로 주도록 하지. 집 밖으로 나가면 닭장이 있어. 닭장에 가면 달걀들이 입을 열어 말할 거야. 그중에서 ‘나를 집어요’ 하고 말하는 달걀들만 가져가라. ‘나를 집지 말아요’ 하고 말하는 달걀들은 가져가지 말고. 달걀을 들고 길을 가다가 등 뒤로 던져 깨뜨려라.”

로즈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닭장에 들어갔다. 닭장에는 달걀들이 있었는데 로즈가 나타나자 저마다 입을 열어 말했다.

“나를 집어요.”

“나를 집지 말아요.”

로즈는 할머니를 언짢게 하여 할머니가 가져가라는 선물은 자기를 골탕 먹이려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래서 ‘나를 집어요.’ 하고 말하는 달걀들 대신 ‘나를 집지 말아요.’ 하고 말하는 달걀들만 골라서 가져갔다.

로즈는 집을 향해 가다가 길가에서 달걀들을 등 뒤로 던졌다. 그러자 달걀들이 깨지며 그 속에서 뱀, 두꺼비, 개구리 등이 쏟아져 나와 로즈에게 덤벼들었다. 심지어 어떤 달걀에서는 회초리가 나와 로즈를 매섭게 때렸다.

“엄마야!”

로즈는 비명을 지르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집으로 달아났다.

어머니는 로즈가 값진 보석 대신 흉측한 동물들을 데려온 것을 보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로즈를 숲속으로 쫓아 버렸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신화 이야기 해설>

미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것은 20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유럽의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했는데, 그 이전에는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 신화라고 하면 주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를 일컫는다. 그렇지만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온 백인이나 흑인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있고, 신대륙에서 살면서 체험이 더해져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미국적인 신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19세기 초에 시작된 서부 개척 시대에는 인디언과 싸우며 영토를 넓혀 가는 백인들에게 이른바 ‘서부 신화’라고 부르는 이야기들이 전해졌다. 이를테면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사슴뿔이 달린 산토끼 재칼로프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오늘의 이야기 역시 서부 개척 시대에 전해 내려온 신화다. 이 이야기에는 마법을 부리는 마녀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자기 머리를 뚝 떼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이를 잡는가 하면, 뼈다귀와 쌀 한 톨로 먹음직스러운 고기와 쌀이 가득 차게 해 맛있는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그뿐만 아니라 유리 조각에 베어 피 흘리는 손을 ‘후우’ 입김 불어 씻은 듯이 낫게 하고, 말하는 달걀을 주어 그 속에서 다이아몬드, 황금, 진주 등 온갖 값진 보석이 쏟아져 나오게 한다. 또한 할머니 집으로 가는 길에 도끼, 팔, 다리, 머리 등이 싸우는 광경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할머니의 신기한 마법의 힘 덕분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를 살펴보면, 마녀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마법을 부리는 여자를 마녀, 마법을 부리는 남자를 마법사라고 한다. 마녀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인 키르케가 유명하다. 키르케는 외딴섬에 살면서 매혹적인 노래를 불러 선원들을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마법사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가 손꼽히는데, 지팡이를 갖고 다니며 마법을 부린다.

마녀나 마법사에게는 헤르메스의 지팡이 같은 마법의 도구들이 있다. 날아다닐 때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마법사는 갈퀴를 탄다. 또한 마녀들은 가마솥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 마법의 약을 만든다. 켈트 신화에는 신들의 아버지인 다자 모르가 지닌 ‘마법의 큰 솥’이 있는데, 아무리 먹어도 먹을 것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의 신화에는 요정이 종종 나오는데, 이들도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는 요정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올 때 바다를 건넜는데 바다에는 요정의 천적인 상어가 많기 때문이란다. 또한 신대륙에는 요정의 천적인 뱀이 우글거려 요정이 살지 못하니 요정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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