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 속 경덕궁(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3.12.04.
한양도 속 경덕궁(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3.12.04.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이 서울사료총서 제20권 ‘국역 경덕궁수리소의궤’를 발간한다.

4일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이번에 발간하는 ‘국역 경덕궁수리소의궤’는 조선 숙종대 경덕궁(慶德宮)의 수리 과정을 기록한 ‘경덕궁수리소의궤’를 번역해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도서다.

‘경덕궁’은 다소 낯선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는 ‘경희궁(慶熙宮)’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궁궐이다. 이 궁궐은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져 140여년간 경덕궁이라고 불렸다. 1760(영조 36)년 ‘경덕(慶德)’이라는 명칭이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의 시호 가운데 ‘경덕(敬德)’과 음이 같다고 하여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꿨다.

경덕궁수리소의궤 표지 (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3.12.04.
경덕궁수리소의궤 표지 (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3.12.04.

경덕궁(경희궁)은 창덕궁과 더불어 왕이 머물며 국정을 운영하던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였는데, 경복궁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창경궁이 중건될 때까지 9년간 경덕궁에서 보냈고, 영조 역시 치세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숙종과 순조가 승하한 곳도, 그리하여 경종·정조·헌종의 즉위가 이뤄진 공간도 경덕궁이다.

경덕궁의 이와 같은 위상 변화에는 경덕궁에서 태어난 숙종의 역할이 컸다. 숙종은 경덕궁에 오랜 기간 머무르며 국정 운영했고 1693(숙종 19)년에는 대대적인 개보수를 단행했다.

‘경덕궁수리소의궤’는 바로 이 시기 경덕궁 수리에 관한 공사를 1책으로 기록한 기록물이다. 별도의 삽화 등은 없이 담당자들의 명단, 수리와 관련된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공문들이 일정한 항목으로 정리돼 있으며, 마지막에는 공사 책임자들의 수결로 끝을 맺고 있다.

일례로 기한 내 완공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상황에서 작업자들에게 특별히 통행증을 발급하고 야간통행을 단속하는 포도청과 순청(巡廳) 등에 이들의 통행을 금지하지 않도록 요청했다. 지방에서 공급하는 물품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급될 수 있도록 관문(關門)에도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국역 경덕궁수리소의궤’는 조선시대 서울 궁궐 수리 공사의 일면목을 기록하고 있는 귀한 사료”라고 전했다.

국역 경덕궁수리소의궤 표지 (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3.12.04.
국역 경덕궁수리소의궤 표지 (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천지일보 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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