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관북리유적 및 부소산성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12.01.
부여 관북리유적 및 부소산성 전경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12.01.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왕궁 시설이 밀집된 부여 관북리유적에서 길이 60m 이상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됐다.

1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부여 관북리유적의 남쪽 대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총 3동의 백제 사비기 건물지와 삼국시대~근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유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여 관북리유적은 1982년부터 현재까지 총 15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전각건물지, 와적기단건물지, ‘+’ 형태로 교차하는 도로유구, 금속 공방지(작업장), 연못 등이 확인됐으며, 이를 통해 왕궁과 관련된 건물의 대략적인 배치와 구조를 추측할 수 있었다.

다만 백제 사비 도읍시기 왕이 정무를 관장하던 ‘정전’과 같은 중심 건물이 확인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왕궁의 정확한 구조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1호 건물지 출토 연화문 전(塼)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12.01.
1호 건물지 출토 연화문 전(塼)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12.01.

1호 건물지 내부에서는 적심시설을 비롯해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적심의 간격은 동-서방향이 5.2m 내외로 일정한 편이고, 남-북 방향은 3~5m 간격으로 다양하다. 남-북 방향의 적심 배치를 고려할 때, 복수의 단독건물이 나란히 선 구조로 추정된다.

적심의 구조는 평면형태가 (장)방형이고, 축조방식은 바닥에 석재를 시설한 후, 모래가 섞인 점토를 이용하여 일정한 두께로 성토해 조성했다. 이는 백제 사비기 적심 대부분이 흙을 성토해 만든 흙적심인 것과 달리 이례적인 사례이다.

또한 백제의 왕궁시설과 관련된 공주 공산성, 익산 왕궁리유적에서 확인된 바 있는 파문 수막새를 비롯한 다수의 전(塼)이 출토됐다. 전의 문양은 연화문으로, 연화문 수막새 와범을 이용해 찍은 것으로 판단된다.

1호 건물지 출토 파문 수막새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12.01.
1호 건물지 출토 파문 수막새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12.01.

한편 2·3호 건물지는 흙적심으로 이뤄져 1호 건물지와 축조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2호 건물지는 1호 건물지 하부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2호 건물이 허물어진 뒤 그 자리에 1호 건물을 축조했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밖에도 백제인들의 정교한 토목기술을 파악할 수 있는 대단위 성토대지도 함께 확인됐다. 건물지가 위치한 지점은 대부분 뻘층이 확인되는 습지지형인데, 백제인들은 이러한 연약지반을 극복하기 위해 토제(土堤)를 활용했다. 토제는 흙을 쌓기 위한 일종의 둑으로, 자연지형을 따라 둑을 쌓고, 그 안쪽을 여러 방향에서 메워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로써 작업기간을 단축하고 효율적인 흙쌓기가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조사된 백제 사비기 건물지의 구조와 규모를 고려했을 때 왕궁 내에 중요 건물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장랑식 건물지는 6~7세기 고대 동아시아 왕궁 내 조당 공간의 일부로 여겨지며, 이 건물 북쪽에는 ‘정전’급의 중심건물이 위치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백제의 우수한 건축술이 전래된 일본의 여러 고대 궁에서 확인되는 조당원(朝堂院)의 구조와 유사해 향후 동아시아 고대 왕궁 연구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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