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양속에 담긴 겨울 채비
농한기 접어들면 본격 준비
고사, 날씨 점치기 등 유행

입동은 24절기 중 19번째 절기로 올해 입동은 양력 11월 8일이다. 사진은 조선풍속김장하는 모습. (출처:부산광역시립박물관) ⓒ천지일보 2023.11.07.
입동은 24절기 중 19번째 절기로 올해 입동은 양력 11월 8일이다. 사진은 조선풍속김장하는 모습. (출처:부산광역시립박물관) ⓒ천지일보 2023.11.07.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立冬)이 찾아온 것이다. 잎사귀가 가득하던 나무는 조금씩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시민들의 겉옷은 점점 도톰해지고 있다. 창고 깊숙이 보관해둔 난방기계도 하나 둘씩 다시 꺼내지고 있다. 이처럼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지혜는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온 미풍양속에 잘 담겨있다. 오늘날처럼 따듯한 옷도 난방기계도 없던 시절, 겨울을 지혜롭게 나기위한 입동과 관련된 미풍양속을 알아봤다.

◆겨울의 시작 ‘입동’

입동은 24절기 중 19번째 절기로, ‘겨울(冬)이 시작된다(立)’고 하여 입동이라 불린다. 서리가 내리는 절기인 ‘상강(霜降)’과 첫눈이 내리는 절기인 ‘소서(小暑)’ 사이에 위치한다. 올해 입동은 양력 11월 8일이다. 이 시기에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땅굴 속으로 숨고, 울창했던 숲도 알록달록한 낙엽을 떨군다.

고대 중국에서는 입동 후 5일씩 묶여 삼후(三候)로 삼았다. 초후(初候)에는 비로소 물이 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처음으로 땅이 얼어붙는다 했다. 말후(末候)에는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입동은 명절처럼 특별한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겨울 생활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겨울을 가장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곳은 들녘이다. 농한기에 접어들면 선조들은 긴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 본격적인 겨울나기를 준비했다.

◆농경사회의 점치기 풍습

입동 무렵에는 중요한 풍습도 전해 내려왔다. 농경사회였던 과거에는 추수를 무사히 마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고사를 지냈다. 보통 고사는 곡물 저장소나 마루, 소를 기르는 외양간에서 지냈다. 고사가 끝나면 농사를 돕기 위해 애쓴 소에게 음식을 주고, 이웃과도 나눴다. 입동을 즈음해 점치기 풍습인 ‘입동보기’도 전해졌다. 예컨대 충청도 지역에서는 ‘입동 전 가위보리’라는 말이 속담이 있어, 입동 전 보리의 잎이 가위처럼 두개가 나면 그해 보리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경상남도 도서지방에서는 입동에 갈까마귀가 날아온다고 하고, 밀양지방에서는 갈까마귀의 배에 흰색의 부분이 보이면 이듬해에 목화가 잘된다고 믿었다. 제주도에서는 입동 날씨점을 쳤는데, 입동에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겨울 바람이 독하다는 믿었다.

◆김장은 겨울철 최고 음식

가정에서는 입동을 기준으로 김장 준비를 했다. 오늘날에야 사시사철 먹거리가 풍성하지만, 과거에는 동절기에 먹을 채소나 과일이 부족했기에 김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장은 보통 입동을 전후로 5일내에 담궜고 이때 담근 김장이 가장 맛있었다고 한다.

고려 중엽의 문장가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장을 담근 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인 순무 겨울 내내 반찬 되네’라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 쓰인 ‘동국세시기’에는 ‘봄의 장 담그기와 겨울의 김장 담그기가 가장 중요한 일년 계획’이라고 씌여있다. 이러한 한국의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세계적으로 역사성을 인정받았다.

입동에는 ‘치계미(雉鷄米)’라는 독특한 미풍양속도 전해졌다. 치계미는 입동·동지·섣달그믐날에 노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으로 ‘경로잔치’의 한 형태다. 원래 치계미는 사또의 밥상에 올릴 반찬값으로 받는 뇌물을 뜻하는 단어인데, 마치 마을의 노인들을 사또처럼 대접하려는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온 마을 사람들은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을 대접했으니, 선조들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미풍양속을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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