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대륙서 신기록 경신
亞·중동·유럽까지 ‘가을폭염’
온난화·열돔에 엘니뇨 영향
올해 역사상 가장 더운 해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입동을 앞두고 포근한 가을 날씨를 보인 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 거리에서 반팔 차림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입동을 앞두고 포근한 가을 날씨를 보인 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인근 거리에서 반팔 차림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외투를 어깨에 걸친 채 이동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이솜 기자] “오늘 5개 대륙, 약 30개 국가, 수천개의 관측소에서 (최고 기온) 기록이 깨질 것입니다. 세네갈에서 일본에 이르는 폭염은 사실상 모든 대륙에서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30여년간 세계 기온을 추적해 온 기후학자 막시밀리아노 에레라는 지난 2일 천지일보에 이같이 말했다. 세계 관측소들의 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미, 아프리카 곳곳에서는 11월이 시작하자마자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올해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런 지구온난화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이날 세계 곳곳에서는 수천개의 최고 기온 기록이 수립됐다. 한국, 북한, 필리핀, 튀니지, 방글라데시, 키프로스, 몰타, 몽골, 러시아 등 수십개 지역에서 11월 역대 최고 수준으로 기온이 치솟았다. 에레라 박사는 “이처럼 세계 수천개의 최고 기온 기록이 깨지는, 유사한 상황조차 본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3일 일본에서는 전체 3분의 1에 해당하는 300개 이상의 기상 관측소에서 11월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출처: 일본 기상청, @sayakasofiamori 엑스)
지난 3일 일본에서는 전체 3분의 1에 해당하는 300개 이상의 기상 관측소에서 11월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출처: 일본 기상청, @sayakasofiamori 엑스)

◆“에어컨 필요한 11월 될 것”

우리나라는 이날 서울이 25.9도를 기록, 역대 11월 중 가장 더운 날을 경신했다. 강릉은 29.1도로 전국에서도 가장 더웠다. 울산, 순천, 포항, 속초 등도 27~28도를 기록했다. 북한은 더 심각했다. 이날 남포는 27.3도로 역시 역대 11월 중 최고 기온이었다.

중국은 한국보다 더 극단적인 날씨를 보였다. 지난 1~2일 이틀 만에 관측소 906개, 지방 기록 13개가 깨졌다. 이와 관련 에레라 박사는 ‘세계의 극한 기온’ 엑스 계정에 “중국 기후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사건”이라며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남쪽의 열기는 악화할 것이며 수천만의 중국인들이 11월에 에어컨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도 처음 있는 11월 더위를 맛봤다. 일부 지역에서는 밤에도 30도에 육박하는 기온을 기록했다. 일본 관측소 122개소는 11월 최고 기온을 깼다. 에카와사키는 29.7도, 마에바시는 27.3도까지 올라 100년 만의 기록을 경신했다.

필리핀 잠보앙가 37.4도, 인도 데라둔 31.0도, 미얀마 36.0도, 방글라데시 35.8도로 각각 11월 최고 기온이 깨졌으며 인도네시아 일부 섬에서는 37도까지 기온이 오르는 등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시아를 넘어 중동, 코카서스, 지중해에서도 유례없는 폭염을 맞이했다.

사이프러스는 34.3도, 조지아는 21.8도, 몰타 29.1도, 이란은 35.2도로 각각 가장 더운 날을 기록했으며 튀르키예도 31~32도를 넘어섰다. 모두 11월에 처음으로 본 온도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도 38.1도로 가장 뜨거운 11월의 시작을 알렸다.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에서도 11월 밤 온도가 30도를 넘어선 지역이 나왔다. 그리스는 지난 4일 30도를 넘어서면서 유럽 기후의 새 역사를 썼다. 불가리아는 지난달에도 역사상 가장 더웠던 10월을 기록한 데 이어 11월에도 더위가 지속했다.

항상 폭염에 시달렸던 북아프리카도 이번 가을은 예외가 아니었다. 튀니지(36.4도), 세네갈(42.7도), 알제리(36.7도) 등 모두 11월 폭염 신기록을 기록했다.

러시아는 그야말로 ‘미친 더위’를 경험했다. 러시아의 11월 평균 기온은 약 0~11도다. 그런데 이날 고랴치클류치는 30.1도, 마이코프 28.2도, 아르마비르 27.4도로 거의 20도 이상이 오른 이례적인 온도를 경신했다. 이런 유례없는 ‘가을 폭염’은 이번 주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예보도 나온다. 지금이 아직 최악이 아니라는 경고다.

그리스 일부 지역에서도 35도를 넘어서는 등 11월 기온 역사를 다시 썼다. (출처: 쿠도스 아테네대학교, 그리스 기상청)
그리스 일부 지역에서도 35도를 넘어서는 등 11월 기온 역사를 다시 썼다. (출처: 쿠도스 아테네대학교, 그리스 기상청)

◆올해 매달 역대 더운 달 기록

세계는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역대 가장 더운 날씨를 겪었다. 특히 지난 9월은 기록상 세계가 가장 따뜻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2세기 동안 관측될 달 중 가장 비정상적인 날씨를 보였다. 이런 폭염으로 인해 북반구에서는 기록적인 더운 여름이, 남반구에서는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 지구를 덮쳤다.

11월 더위가 나타나게 된 원인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이날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빈번하고 지속적인 고기압, 즉 열돔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열돔은 일본 근처와 동아시아, 중동 및 북아프리카, 유럽 등에 집중됐다.

열돔 아래는 햇빛이 강하고 구름과 강수량이 적어 따뜻함이 유지되는 조건이 갖춰진다. 그리고 따뜻한 공기가 지표면을 건조시키며 지표면이 더 빨리 가열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많은 연구들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로 인해 이런 열돔이 더 커지고 더 빈번하고 강렬해진다고 지적한다.

올해는 특히 엘니뇨로 인한 열대 태평양의 해수 온난화로 대기에 더 많은 열이 유입됐다. 엘니뇨는 동부 태평양 해수면이 비정상적으로 따뜻해지는 기상 패턴이다. 따뜻한 바닷물이 증발할 때 대기로 전달되는 해양 열기가 급증해 기온이 평균 0.2~0.4도 정도가 오른다.

우리나라 올해 여름 수온 상승 폭은 세계 평균에 비해 3배 이상이나 높았다. 해양수산부 국립수산과학원은 1990년부터 수온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 올해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의 평균 수온이 가장 높았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육지와 바다를 통틀어 올해 지구는 엘니뇨 영향으로 예상했던 온도보다 훨씬 더 따뜻해졌다. 올해는 엘니뇨의 영향을 받은 2016년을 넘어 기록상 지구에서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달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이런 신기록을 세울 확률이 99% 이상으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눈이 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美에선 눈 내리고 유럽엔 폭풍

가시지 않는 더위에 이어 미국과 서유럽 등에서는 때 이른 폭설과 폭풍으로 피해가 크다.

지난 한 주 동안 미국 로키산맥, 북부 평원, 오대호, 뉴잉글랜드 북부에는 첫눈이자 11월 기록으로는 20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NOAA에 따르면 지난 1일 미국 전역의 17.9%에서 눈이 내렸다.

현재 많은 눈이 내린 이유는 이른 계절에 강력한 한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 국립기상청은 시카고의 이상기후와 관련 ‘호수 효과’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차가운 저기압이 시속 48~64km의 서풍에 밀려 상대적으로 따뜻한 미시간호수를 지나면서 눈을 뿌렸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시카고에서 10월에 첫눈을 보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번처럼 핼러윈 시기에 폭설이 오거나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건 드물다”고 했다.

한편 대서양에서 발달한 폭풍 ‘시아란’은 이날 서유럽 일대를 강타했다.

로이터통신과 AP통신은 이번 폭풍으로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에서 최소 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서유럽 전역에서 항공편과 철도 운행이 중단됐으며 일부 학교는 휴교했다. 영국 남부에서는 강풍이 최소 112㎞/h에 달했으며 최대 7㎝가량의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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