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탐방] 전남 보성 태백산맥 문학기행

조정래 작가 따라 소설 무대 걸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상 생생하게 느껴
“소설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존중·대화로 통일 이룰 수 있단 것”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소화의 집’ 앞에서 조정래 작가가 탐방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소화의 집’ 앞에서 조정래 작가가 탐방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전남 보성군 보성읍에서 국도2호선을 따라 순천방면으로 가다 보면 30㎞ 지점에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읍에 다다른다.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척추로 남북으로 잘린 허리를 의미한다. 소설 제목 그 자체가 곧 민족분단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한의 모닥불, 민중의 불꽃, 분단과 전쟁, 전쟁과 분단 등 총 10권, 4800쪽에 달하는 책이다. 실화가 아닌 소설이지만 작가가 생활했던 벌교를 소설 속의 무대로 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소설과 똑같은 곳에 있어 사실감을 더해준다.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1919년 금융시설로 지은 구 벌교금융조합.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1919년 금융시설로 지은 구 벌교금융조합. ⓒ천지일보 2023.11.03.

여순민중항쟁에서부터 6.25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때 민족의 한과 한반도의 분단상황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한반도의 근대사를 알기 위해서는 태백산맥만 한 작품은 없다는 평까지 받고 있다. 1986년 출간 이후 현재까지 860만부 이상 판매됐다.

지난 2008년 11월 21일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세워진 태백산맥문학관은 올해로 개관 15주년을 맞이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29일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됐다. 본지도 행사에 참석해 조정래 작가의 설명을 직접 들으며 소설 속 현장을 둘러봤다. 작품의 설명을 들으며 현장을 도는 내내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간 듯 작품과 하나가 된 느낌이다.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태백산맥 문학관 앞에서 조정래 작가와 탐방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태백산맥 문학관 앞에서 조정래 작가와 탐방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사건 속으로

‘태백산맥’의 주요 사건이 펼쳐진 벌교에는 소설 속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공간들이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생생히 남아 있다. 문학 애호가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문학관 바로 앞에 있는 ‘현부자네 집’은 소설 ‘태백산맥’이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집이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다. 기둥과 마루는 조선식, 천장과 정원은 일본식으로 한옥을 기본 틀로 삼고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모습이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대나무 담장을 둘러놓은 소화의 집.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대나무 담장을 둘러놓은 소화의 집. ⓒ천지일보 2023.11.03.

조정래 작가의 안내에 따라 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소화의 집’이다. 소설에서는 ‘조그만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라고 소개된 것처럼 정갈하고 아담한 집이었으나 1988년 무렵 태풍으로 인해 쓰러졌고 이후 밭으로 변해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자 보성군이 2008년 문학관을 만들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회정리교회는 소설에서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곳으로 그려졌다. 교회의 양쪽 문이 ‘여자용’ ‘남자용’으로 구분된 것도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요소다.

이어 도착한 곳은 소화다리다. 여순사건부터 6.25까지 민족의 비극과 상처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으로 양쪽에서 밀고 밀릴 때마다 이 다리 위에서 총살형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현부자네 집’ 앞에서 조정래 작가가 탐방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현부자네 집’ 앞에서 조정래 작가가 탐방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태백산맥의 서사를 이끄는 주 내용은 좌우 갈등이다.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과 토착 지주,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 사이의 갈등이 전쟁으로 전개되며 혼돈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조정래 작가는 “춘향전은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같지만, 사회혁명이고 계급타파를 담은 사회소설”이라며 “태백산맥 또한 사회주의자들의 이야기지만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고 대화하고 뜻이 합해져야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설에서 정하섭이 도깨비, 유령, 악마가 아닌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이 그러한 부분을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 ‘중도방죽’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일제 강점기 때 뻘밭을 메꿔 농토로 만든 중도방죽.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일제 강점기 때 뻘밭을 메꿔 농토로 만든 중도방죽. ⓒ천지일보 2023.11.03.

‘중도방죽’은 일제 강점기 수탈의 현장으로 뻘밭을 간척지로 만들어 쌀을 재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중도방죽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 실존 인물인 일본인 중도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조정래 작가는 “중도방죽은 일제 강점기 힘들었던 농민의 한, 소작인의 한을 담은 곳”이라며 “농토가 부족해 국민의 40%가 굶어 죽던 일본이 곡식을 채우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서해안 뻘밭을 다 메꿔서 농토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곽을 쌓는 것보다 두 배 힘든 것이 방죽을 쌓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며 “깊어서 정강이까지 빠지는 뻘밭에서 물이 빠지면 돌을 깨서 넣으며 20리 방죽을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 중도들판”이라고 말했다.

뻘밭에다 방죽을 돌멩이 하나하나, 흙 한삽 한삽 옮기며 쌓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소설에서도 어렵고 힘들었던 일이었으며 작업이 수월하지 않았음을 묘사하고 있다.

조정래 작가는 또 소설 속 전설에 대해 설명하며 “전설, 신화, 설화 모두 저와 같은 이야기꾼들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또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100년, 200년 세월이 지나면 그것이 전설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소화의 집’ 앞에서 탐방객들이 조정래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소화의 집’ 앞에서 탐방객들이 조정래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이어 방문한 보성여관에서 조 작가는 “소설에 보성여관(남도여관)을 등장시킨 이유는 일본의 착취 배경을 설명할 뿐 아니라 그 당시 타락한 경찰 조직이 무슨 짓을 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여든을 넘은 조정래 작가와 끝으로 방문한 곳은 태백산맥 문학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정래 작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가로 23m, 높이 3m, 실물 얼굴 크기의 100배인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소설 탈고 후 조정래 작가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느끼도록 음각으로 만들어 보는 각도에 따라 때로는 인자하게, 때로는 강인하게 보인다.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태백산맥 문학공원’에서 조정래 작가가 탐방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천지일보 보성=천성현 기자] 태백산맥문학관 개관 15주년을 맞아 지난달 29일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서 ‘조정래 작가와 함께하는 태백산맥 문학기행’이 진행된 가운데 ‘태백산맥 문학공원’에서 조정래 작가가 탐방객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11.03.

소설 속 현장을 따라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곳곳에서 발길이 머물게 된다. 멀리 가을 하늘을 보며 잠시 역사 속으로 빠졌던 자신을 돌아본다. 지구촌이 이념 갈등과 분쟁으로 전쟁과 아픔을 겪고 있는 이때 소설 ‘태백산맥’을 통해 더욱더 화합과 평화의 절실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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