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공무원간 신뢰 행정 전략
인사권 전결, 현장 시장실 운영
회색빛 도심을 녹색으로 탈바꿈
정원, 삶이자 경제 정주여건 개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투자유치

오천그린광장을 즐기는 사람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오천그린광장을 즐기는 사람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천지일보 순천=김미정 기자] 200여일간의 긴 여정의 막을 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녹색도시의 가치를 조명하며 대한민국 도시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대도시를 흉내 내지 않고도 생태와 정원, 휴식과 행복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된 매력으로 기업들의 시선도 집중해 화제가 됐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지난달 31일 폐막식을 끝으로 7개월간의 긴 여정을 마쳤다. 총방문객 수는 981만 2157명을 기록했다. 개장 12일 만에 100만, 개장 58일 차에 400만 관람객을 돌파하며 목포 관람객의 50%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들이 순천의 우수한 정주여건에 주목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순천은 박람회를 계기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포스코리튬솔루션, 포스코와이드 등 6개 기업으로부터 8600억원에 달하는 투자유치를 끌어냈다. 또한 6000억원에 달하는 거점산단 경쟁력강화사업 대상지에 순천 소재 주요 산단이 선정되고,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산업에 2000억원을 확보하는 등 기업과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미래 산업의 동력도 확보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원박람회장을 찾은 모습.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오세훈 서울시장이 정원박람회장을 찾은 모습.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순천으로부터 시작된 정원 열풍은 대한민국 전체로 확산하고 있다. 수도인 서울을 비롯해 행정 수도인 세종시도 정원도시 조성을 계획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32개 지자체가 정원도시를 선언했다. 또한 지자체 정원 관련 부서가 24곳이 신설됐고, 자체 조례 제정이 77건으로 증가했다. 현재 전국의 지자체가 가장 많은 관심을 쏟는 정책 중 하나로 ‘정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1천만 가까운 관람객 선택한 ‘정원’

오세훈 서울시장은 순천을 ‘정원도시 서울’ 구상을 위한 가장 좋은 모델로 꼽고 “배우러 왔다”라는 간략한 문장으로 정원박람회장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지방 행정의 신모델”,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지방균형 발전 철학과 닮은 모범도시”라는 표현으로 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순천의 사례를 극찬했다.

노 시장은 취임 직후 박람회 책임자 1명을 선발하고 일하고 싶은 직원을 직접 뽑게 해 시장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실무자에게 위임했다. 대신 조직 구성은 행정, 토목, 보건 등 다양한 직렬을 배치해 융·복합이 가능하게 했다. 더불어 박람회장에 시장실을 마련해 현장에서 즉각적인 소통과 결정, 보완을 이뤄갔다. 순천시가 7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193㏊에 달하는 박람회장을 완성도 있게 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시장과 공무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행정력이었다.

박람회장 전경.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박람회장 전경.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노 시장은 눈으로 감상하는데 그쳤던 정원을 도시의 판을 바꾸는 수단이라 여기고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저류지와 아스팔트 차도를 6만평의 푸른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회색빛 도심이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도시 공간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노 시장과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잔디를 깔아 정원을 만드는 공법을 제안한 공무원이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도심 속 정원인 오천그린광장과 그린아일랜드를 무료로 개방해 시민과 관람객들이 마사토와 잔디를 오가며 어싱을 즐겼다. 또 돗자리 위에서 자유롭게 피크닉을 즐기거나 아이들과 반려견들이 마음껏 뛰놀며 내 집 앞 정원을 만끽했다. ‘정원에 또는 반려견과 마음껏 뛰놀며 내 집 앞 정원을 만끽했다. ‘정원에 삽니다’라는 주제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화된 것이다.

개막 공연에서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수준 높은 공연도 ‘중소도시 행사’라는 편견을 깨뜨렸다. 개막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중앙정부 공무원보다 잘한다”고 평가했다.

그린아일랜드에서 사람들이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있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그린아일랜드에서 사람들이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있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개화시기 고려 개장일 4월 1일로 앞당겨

당초 개장일은 4월 22일이었으나 기후변화로 빨라진 개화시기를 고려해 1일로 앞당겼다.

여름에는 오천그린광장에 연면적 1만㎡ 규모의 워터아일랜드를 조성하는 한편, 국가정원 내 개울길광장, 빙하정원 등을 활용해 ‘여름 휴가지’라는 테마를 내세웠다. 악천후에 구애받지 않는 완성도 높은 정원을 유지할 결과, 한 달 넘게 이어진 장마에도 불구하고 박람회는 개장 149일 만에 600만 관람객을 달성했다. 흥행은 계속됐다. 억만 송이 국화와 160만 평의 너른 황금빛 갈대군락으로 가을옷을 갈아입은 정원에는 추석 연휴 6일 만에 100만명이 방문했고, 폐막 24일을 앞둔 10월 7일에는 목표였던 800만 관람객을 넘어섰다.

노 시장은 이 시대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총체가 정원임을 증명하듯 정원에 고품격 문화를 녹여냈다. 국내 처음으로 전기 유람선을 특별 제작, 동천 위로 정원드림호를 띄웠고, 플로팅 공법을 활용해 물 위의 정원을 조성했다. 한편 오천그린광장에서는 꾸준한 문화행사를 이어갔다. 클래식·힙합·퓨전·대중가요·멀티미디어 불꽃쇼 등 36회에 달하는 다양한 장르의 기획행사와 19회의 주제공연이, 국가정원에서는 저글링·매직쇼 등 거리 퍼포먼스와 버스킹 공연 등 560회 이상의 상설공연이 열렸다. 국제행사로서의 면모도 돋보였다. 15개의 ‘국가의 날’ 행사, 15개국이 모인 AIPH 총회가 박람회장에서 열렸다. 또 세계 각국의 참여 정원을 포함해 정원박람회는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총 46개국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글로벌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자리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가든스테이-쉴랑게 전경.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 조성된 가든스테이-쉴랑게 전경.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유럽 갈 필요 없을 정도 완성도 높아”

“유럽 갈 필요 없다. 유럽보다 정원의 완성도가 높다. 정원에 사는 순천시민이 부럽다. 우리 도시는 순천처럼 못 만드나” 박람회장을 다녀간 관람객들의 반응이다.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전반적 평가는 5점 만점에 4.47점으로, 재방문의사는 4.39점, 추천의향은 4.45점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볼거리, 친절도, 체험거리, 식음시설 등 모든 분야별 만족도는 4점 이상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볼거리는 4.54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했다.

삶 속의 정원을 표방한 박람회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며 순천은 대한민국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정원을 흡수한 도시는 어떤 모양일지, 도시를 어떻게 바꿔냈는지 확인하고자 전국의 지자체·기관 등 510여곳이 박람회장을 찾았다. 그 중 수도 서울과 부산, 세종 등을 포함해 광역·기초를 가리지 않고 200여곳의 지자체가 순천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방시대위원회와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등 국가균형발전을 담당하는 인사들도 줄지어 순천을 찾으면서 정원박람회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도시계획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을 예고했다.

노관규 순천시장과 직원들이 박람회장 현장에서 회의 및 점검을 하고 있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노관규 순천시장과 직원들이 박람회장 현장에서 회의 및 점검을 하고 있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박람회 성공 열쇠는 ‘시장·공무원·시민 삼합(三合)’

박람회 성공 비결에 대해 노 시장은 한결같이 ‘시장, 공무원, 시민의 삼합(三合)’이라고 답한다. 흑두루미를 위해 순천만 전봇대 282개를 뽑는 일에 동의해준 순천시민은 도시구조를 새롭게 짜는 움직임에도 흔쾌히 힘을 보탰다. 교통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강변로를 막아 그린아일랜드를 조성할 수 있게 한 시민의 품격이 현재의 정원박람회를 있게 한 것이다.

안전하고 품격 높은 행사장 운영에 앞장서며 자원봉사자·해설가·일류플래너·모범운전자 등의 빛나는 시민의식도 한몫했다.

박람회를 통한 수익 또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박람회 목표 수익금인 253억원을 훌쩍 넘겨 최종 333억여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상인들은 “매출액이 평소 2배에서 5배까지 증가했다” “웃장 국밥골목 조성 후 손님들이 이렇게 줄지어 있는 모습은 40년 만에 처음” “오천그린광장이 생긴 뒤로 카페 이용객이 늘었다. 특히 공연이 있는 날은 매출이 크게 뛴다”며 박람회로 비롯된 경제효과를 체감했다. 수백만 관람객들이 순천을 넘어 인접 도시까지 넘나들자 전남 동부지역 또한 박람회의 낙수효과를 누렸다. 정원박람회를 맞아 관광종합대책반을 운영했던 여수는 순천발 방문객이 동일 분기대비 5.2%p 늘었으며, 광양과 보성은 박람회장에서 출발하는 시티투어와 셔틀버스를 운행, 박람회장을 찾은 관람객들을 지역으로 끌어오는 관광 대책을 꾸렸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 수백만 관람객이 찾았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 수백만 관람객이 찾았다.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정원박람회로 인해 1조 5926억원의 생산유발효과, 2만 5149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 7156억원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시는 실제 박람회가 미친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용역을 의뢰해 분석하고 있다. 관람객 관광행태 및 지출 규모 등을 종합해 11월 중순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순천은 이제 박람회 이후 ‘문화’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생태수도 순천의 무한한 확장을 꾀하고자 한다.

노관규 시장은 “그동안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사랑해 주시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박람회는 끝이 났지만 이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어 “순천은 정원에 문화의 옷을 입혀 더 큰 도약에 나설 계획”이라며 “국가정원과 도심, 순천만을 하나로 이은 정원 위에 애니메이션 산업을 입힌, 일본·미국과는 차별화된 한국판 K-디즈니를 구상하고 있다”고 비전을 밝혔다.

정원드림호.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정원드림호. (제공: 순천시) ⓒ천지일보 2023.11.02.

박람회 후방산업에 대비해 국가정원 공간 개편도 이뤄진다. 오천그린광장 등 도심정원과 인접한 서문권역은 공공성을 강화해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문권역은 애니메이션 산업과 연계한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고, 품격 있는 화훼연출로 수익성과 희소성을 강조할 계획이다. 자세한 운영전략은 관련 정부정책 및 시책과 연계해 여러모로 검토, 수립할 예정이다. 특히 가든스테이와 정원드림호, 반려견놀이터 등 지속해서 운영될 콘텐츠 또한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맞춰 개편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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