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두고 러중-미 줄다리기
美, 한일 중심 인태 전략 추진
러, 아태 군사협력 유지·강화
아세안, 경제는 中 안보는 美
아세안식 중립외교에 ‘안간힘’

지난 9월 6일(현지시간) 각국 정상들이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사란 차런수완 태국 사무차관(대참),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리창 중국 총리, 손싸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총리. (뉴시스) ⓒ천지일보 2023.11.02.
지난 9월 6일(현지시간) 각국 정상들이 자카르타 컨벤션센터(JCC)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손을 맞잡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사란 차런수완 태국 사무차관(대참),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리창 중국 총리, 손싸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총리. (뉴시스) ⓒ천지일보 2023.11.02.
편집자 주

미국이 최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중 일부 국가들과 군사안보 협력 활동을 강화하면서 아세안과 아세안+3 등 기존 결속체들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APR)의 관심 국가들과 장비공급과 합동훈련을 포함한 군사협력 및 군사기술협력(MTC)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아세안 국가들의 군사안보를 둘러싼 방정식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나름 합리적인 균형을 유지하려 안간힘이다. 경제는 중국에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이 아사아 전문가들의 시각을 담은 기고문을 보내와 번역 게재한다.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보웃 티다 캄보디아 크메르라이프 발행인.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 공유’를 지난해 11월 프놈펜 정상회의에서 처음 거론한 데 이어 지난 8월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도 논의, 올해부터 시행하자는 데 합의를 봤다.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Missile Defence, MD) 계획이 공고화되는 순간으로 읽혔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자신들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것이다.

특히 러시아는 지난달 31일 중국에서 폐막한 ‘샹산 포럼’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 불리는 샹산 포럼은 영국 주도로 매년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샹그릴라 대화에 맞서 중국이 지난 2006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안보 포럼이다. 지역 안보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 채널이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 자리를 빌어 미국의 도발 행위를 비난하고 서방을 견제하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러 “美, 아세안 결속 무너뜨리고 있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번 포럼에서 “미국은 호주·영국과 함께 앵글로색슨 동맹인 오커스(AUKUS)를 중심으로 쿼드(호주·인도·일본·미국)와 아태 4국(일본·호주·뉴질랜드·한국)을 아우르며, 지역 안보위협을 억지하도록 이들을 한데 묶어 사실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의 아태지역 선봉 역할을 맡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주도의 각종 안보 모임에 참여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상호협력을 통해 재래식 무기 중심의 현대화에 주력하는 한편 세계평화를 저해하는 유해한 핵 구성 요소 개발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도 경고했다.

아울러 “미국이 최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중 특정 나라들만 끌어들이는 활동까지 강화, 기존 아세안의 자체 결속력마저 무너뜨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쇼이구 장관은 이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나토의 군사력 구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미국이 싱가포르와 태국, 캄보디아, 한국에 생물학무기 전체 실험실 네트워크를 배치하는 군사행동의 틀 안에서 추진력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도 불리는 ‘샹산(香山) 포럼’이 지난달 30일 미국 등 9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안보, 지속가능한 평화’를 주제로 베이징 후난성 샹산에서 열렸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과 중국군 서열 2위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샹산 포럼에서 만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2023.10.31.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로도 불리는 ‘샹산(香山) 포럼’이 지난달 30일 미국 등 9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안보, 지속가능한 평화’를 주제로 베이징 후난성 샹산에서 열렸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오른쪽)과 중국군 서열 2위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샹산 포럼에서 만나고 있는 모습. (EPA/연합뉴스) 2023.10.31.

러시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APR)의 관심 국가들과 장비공급과 합동훈련을 포함한 군사협력 및 군사기술협력(MTC)을 지속해왔다. 특히 ASEAN 회원국 국방장관 회의 체계가 맺고 있는 ‘대화 파트너(ADMM Plus)’ 국가들의 일원으로서 이미 2020~2023년 반테러 협력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이처럼 러시아는 미국이 한국, 일본과 함께 주도하는 미사일 발사 관련 정보교환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아태지역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킨다고 보는 것과 대조되는 시각이다.

◆현지선 러시아 주장에 ‘갸우뚱’

하지만 미국이 아세안 중심 메커니즘을 인도·태평양 지향의 폐쇄적 블록 구조로 대체, 아세안의 중심 역할과 이를 중심으로 발전한 안정적인 안보 구조를 훼손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게 현지에서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나름 합리적인 균형을 유지해왔다고 자평할 수 있다. 실제 아세안의 안보 문제에 개입하려는 미-중을 각각 견제하기 위한 아세안 차원의 군사안보 방정식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사실 미-중 전략적 경쟁의 틈바구니에 러시아가 또 하나의 변수로 등장해도 전체적인 개념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아세안 입장에선 그동안 미국과 중국에 해왔던 방정식을 그대로 대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그동안 다원적 중립외교를 펼쳐 오면서도 나라별로 자신들이 처한 입장과 생각에 따라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중립외교를 표방해왔다. 과거 강대국 침략을 많이 받아 중립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해온 게 경험적으로 체득된 것이다.

◆아세안 나라별 외교 노선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메콩강 상류를 틀어잡고 있기에 영향을 받을 수 밖는 라오스나 캄보디아는 친중국 성향 국가로 분류된다. 대신 역사적인 이유로 태국과 필리핀은 친미 성향이 강하다. 베트남과 싱가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경제는 중국과 더 큰 친화력을 갖되 안보는 미국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종의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관광과 자원 수출 등의 이유로 중국과 경제적으로 교류가 왕성하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 등 자국의 영토・영해권 문제로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싱가폴은 과거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 장소로 결정할 만큼 현실적인 중립외교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위안화의 중국과 루블화를 내세운 러시아에 이어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들이 통화 다극화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사진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5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제43차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본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2023.10.03.
위안화의 중국과 루블화를 내세운 러시아에 이어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가들이 통화 다극화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 사진은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5일(현지시간) 자카르타에서 제43차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본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2023.10.03.

러시아가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세안 지역 안보의 한 독립변수로 참여한다면, 아세안 국가들은 이를 자국 이익을 더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 중국의 대(對) 아세안 관여는 더 강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세안은 그동안 중국과 미국에 써온 아세안 특유의 다원적 중립외교방식을 러시아에도 그대로 적용시켜 아세안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한편 극대화한 이익으로 스스로의 힘을 더 키워가게 될 것이다.

◆아세안식 중립외교 기조

아세안은 완전히 누군가에게 편중되지 않고 중국과 미국, 러시아 사이에서 각자와 적절히 관계를 유지하며 스스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특유의 방식을 갖고 있다. 느린 듯 빠르고, 다른 듯 같은 다소 모순적이면서도 무시 못 할 아세안의 경쟁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동안 G7, 국제통화기금(IMF), 나토 등 서방 중심의 지구촌 이니셔티브들에 맞서는 브릭스(BRICS)와 브릭스 은행인 신개발은행(NDB),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이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서방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이른바 ‘불만자 그룹’을 구성하는 국가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방 세력이 주도해온 지구촌 질서의 불균형성과 불합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구심력이 큰 흐름이라는 평가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가 아태지역, 좁혀서 아세안 지역의 군사안보 분야에서 미국 주도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맞서 구사하고 있는 아세안 관여는 여러모로 새로운 안보지형을 예고하고 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들이 필연적으로 각개격파를 유도하는 강대국들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아세안식 중립외교 기조를 지키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지형을 파악하고 회원국들의 구체적인 공동대응 방향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정상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2022.05.13. (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 정상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2022.05.13.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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