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숭의여학교(왼쪽)와 현재 숭의여대 전경. (제공: 숭의학원) ⓒ천지일보 2023.10.28.
1903년 숭의여학교(왼쪽)와 현재 숭의여대 전경. (제공: 숭의학원) ⓒ천지일보 2023.10.28.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숭의학원이 오는 30일 오후 3시부터 남산 숭의여대 마펫기념 숭의음악당에서 창립 120주년 기념식을 거행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숭의학원에 따르면 1903년 마펫 선교사(Samuel Austin Moffett, 1864~1939)가 평양에 설립한 숭의여학교는 ‘하나님의 의(義)를 높인다’는 건학 정신 아래 여성교육의 불모지에서 수많은 인재들을 길러낸 관서 지방 최고의 명문학교였다.

숭의여학교는 학교 이름대로 의를 실천한 수많은 사람을 배출했다. 1913년 숭의의 기숙사에서 은밀히 조직된 송죽결사대원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에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이들은 3.1 운동 당시 태극기를 만들어 만세운동에 참여한 것은 물론 군자금 모집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무임소장관을 지낸 박현숙,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인 권기옥 등은 숭의가 배출한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꼽힌다. 또한 숭의는 최초의 여류 성악가 윤심덕, 최초의 여성 문교부장관 김옥길, 소설가 강경애 등과 같은 선각자들을 길러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숭의는 건학정신에 따라 끝까지 이를 거부하다가 1938년 3월에 자진 폐교하는 순절의 길을 택하면서 평양 시대의 숭의는 막을 내렸다.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의 와중에서도 평양 숭의 동문들은 숭의의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숭의학원은 1953년 6월 박현숙 여사의 주도로 서울 충무로에 있었던 송죽원이란 임시교사에서 부활했다. 이후 일제의 정신적 심장부였던 남산 기슭의 경성신사 터로 이주해 신사 건물을 철거하고 학교다운 건물을 새롭게 짓고 입주하면서 숭의가 다시 한 번 반석 위에 세워졌다.

1966년 숭의국민학교, 1971년 숭의여자전문학교, 1974년 전문학교 부설유치원의 교육기관이 신설되면서 남산의 숭의학원은 규모를 넓혀나갔다. 남산 시대의 숭의학원은 평양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기독교를 모든 교육활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리고 배구의 조혜정, 빙상의 김영희, 농구의 박찬숙과 같은 선수를 배출한 스포츠 명가로 이름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월드비전의 한비야 등 동문들의 사회적 활동도 활발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체제를 갖춘 숭의학원은 산업화로 인한 대도시 인구 유입에 따라 학급을 증설하고 체육관, 도서관, 음악당 등의 건물을 증축했다. 하지만  넘쳐나는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어 1999년 한경직 목사의 간청에 따라 학교법인 숭의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백성학 전 이사장은 이러한 학원의 문제 해결에 주력했다. 취임 직후 남산 외교구락부를 매입해 대학교 강의실을 확충했고, 숭의학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2003년에 동작구 대방동에 부지를 마련해 숭의여자중∙고등학교를 신축 이전했다.

중∙고등학교가 빠져나간 현재 숭의 남산캠퍼스에는 넓고 쾌적하며 현대화된 교육시설 속에서 숭의여대(부속유치원 포함)와 숭의초등학교 학생들이 꿈과 끼와 재능을 키워가고 있다.

학교법인은 1999년 이래 안정된 재정여건 속에서 평양 숭의여학교의 건학정신을 굳건히 하며 숭의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지켜나가고 있다. 또한 120년을 흘러온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숭의학원의 고향인 북녘 땅 평양으로 이어야 하는 꿈과 사명을 간직하고 있다.

학령인구 급감과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 속에서 숭의학원은 쇄신과 혁신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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