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자수점필(智水掂筆)’의 저자(著者) 홍한주(洪翰周)의 생존연대(生存年代)는 1798(정조 22)~1868(고종 5)년으로서 5대조부를 비롯해 윤치정(尹致定), 조병구(趙秉龜)와 동시대 인물(同時代人物)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자(字)는 헌경(憲卿)이며, 호(號)는 해옹(海翁)을 비롯해 해사(海士), 지수(智水), 쌍송만사(雙松漫士), 총계당(叢桂堂) 등이 있다.

홍한주는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의빈부 도사(儀賓府都事)를 시작으로 의성 현감(義城縣監),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 이천 부사(利川府使), 상주 목사(尙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홍한주는 특히 당대(當代)의 학자(學者)로 유명하였던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와 정조(正祖)의 부마(駙馬) 영명위(永明尉) 홍현주(洪顯周)의 6촌 동생이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와 관련해 홍석주와 홍현주는 친형제(親兄弟)인데 전부 탁월한 문장력(文章力)으로 당대에 명성을 떨쳤다는 것이다.

특히 홍석주는 좌의정(左議政)과 영의정(領議政)을 역임한 정치가(政治家)이면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로서 김매순(金邁淳)과 함께 19세기 전반기 서울의 학문을 대표하는 학자였다고 하니 당시 그의 위상이 어느정도 였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홍한주는 윤치정과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의 시문집(詩文集)인 ‘해옹고(海翁稿)’에 윤치정에게 보낸 여러 편의 시가 있다는 것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회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지수점필’을 통해 홍한주가 윤치정과 조병구를 장서가로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수점필’을 소개하면 홍한주가 상주목사(尙州牧使)에 재임 중에 발생한 임술민란(壬戌民亂)의 여파로 탄핵되어 전라도 나주목에 속한 지도(智島)에 유배된 1862(철종 13)년 윤 8월부터 이듬해 8월 해배(解配)되기까지 13개월 동안 저술했다.

이와 관련해 ‘지수(智水)’는 홍한주가 유배지 지도(智島)에서 이름을 따서 지은 별호(別號)로 보이며, ‘점필(拈筆)’은 ‘붓을 뽑아 들어 자유롭게 기록하다’의 의미인데, 서명(書名)에서 보듯이 이 책은 자신의 학식과 견문한 것들을 주제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술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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