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흐르고 문화 숨 쉬는 곳
서울시 중구 ‘2023 정동야행’
가을밤 정취 즐길 테마 있어
한국 근대건축의 중요한 자료

덕수궁 안 광명문 전각 ⓒ천지일보 2023.10.23.
덕수궁 안 광명문 전각 ⓒ천지일보 2023.10.23.

[천지일보 서울=송연숙 기자] 서울의 중심 중구 정동에서 과거와 현재를 만날 수 있는 ‘2023 정동야행’이 펼쳐져 본지가 참여했다.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정동길 일대를 둘러보고 가을밤 정취도 느낄 수 있는 역사문화 테마축제다.

정동야행은 지난 2015년부터 시작됐다. 매년 20만명 이상의 서울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 성공한 지역축제 중 하나로 꼽힌다. 2018년까지 매년 5월과 10월 열렸다가 이후 서울시에서 운영해왔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5년 만에 중구가 다시 주최해 열렸다.

덕수궁 돌담길 ⓒ천지일보 2023.10.23.
덕수궁 돌담길 ⓒ천지일보 2023.10.23.

올해 열린 정동야행의 주제는 ‘정동에서 꿈을 통해 이뤄지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다.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근대화의 꿈이 모여들었던 중심지로 정동을 재조명했다.

덕수궁 중화전 앞에서 국악인의 음악을 들은 후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정동야행 창작시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문장이 준 출입증을 받고 역사 해설사들의 안내를 받으며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해설사는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정동제일교회, 이화박물관, 구러시아공사관, 정동극장, 정명전 등을 둘러보며 맛깔스러운 설명을 곁들였다.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왔다는 권혜진(32, 여, 서울시 강동구)씨는 “현대와 과거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고즈넉한 정동을 좋아해 가끔 온다”며 “가을이 더 깊어져 운치를 더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천지일보 2023.10.23.
서울시립미술관 ⓒ천지일보 2023.10.23.

해설가는 서울시립미술관을 안내하며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건축양식과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육영공원과 독일공사관, 경성재판소가 있었던 자리”라며 “광복 후에는 대법원 건물로 이용됐다가 대서 초동으로 이전 후 2002년 시립미술관으로 재건축됐다”고 설명했다. 또 “1920년대식(르네상스식)으로 지어진 파사드(전면부, 앞면)만 보존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철거 후 신축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은 외장 및 치장 쌓기 벽돌구조가 뛰어나고 정면 현관과 양 측면 출입구의 부재들이 건립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돼 한국 근대건축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고도 전했다. 박물관 1층에서는 고종이 하사한 배재학당 현판을 볼 수 있다. 해설가는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가 1885년에 세운 학교”라며 “고종황제가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학생들의 공부에 필요한 학용품과 수업비를 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동제일교회 ⓒ천지일보 2023.10.23.
정동제일교회 ⓒ천지일보 2023.10.23.

정동제일교회 내부 정면에는 1918년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삼일운동 당시 일본 헌병에게 쫓기던 유관순 열사가 오르간 뒤에 숨은 곳이기도 하다.

구 러시아공사관은 정동에서 제일 높은 정동공원 위쪽에 있다. 이곳을 걷다 보니 당시로 돌아간 듯했다. 해설가는 “고종은 명성황후시해사건 목격 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1896년 2월 왕세자와 함께 가마를 타고 러시아공사관으로 몰래 이동했다”며 “이후 고종은 공사관으로 찾아오는 대신들과 자주적인 개화를 준비했고 1897년 아관파천을 끝내고 경운궁으로 환궁한 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의 탄생을 황제로서 하늘에 고했다”고 설명했다.

또 “건물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역사를 기억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며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명전 ⓒ천지일보 2023.10.23.
중명전 ⓒ천지일보 2023.10.23.

중명전은 1901년 덕수궁이 대한제국 황궁으로 정비되는 과정에서 황실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한 서재로 지어졌다. 당시 건물의 이름은 수옥헌이었다. 1907년 황태자 가례의 연회가 거행된 장소이며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부터 외국인에게 임대돼 경성구락부로 이용됐다.

김보아(30대, 여,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동)씨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고 남편이 추천해 가족과 함께 왔다”며 “아직 아이가 어려 아쉽기도 하지만 중명전 투어는 교육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역사에 관심을 더 갖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동야행 중에는 고종의 꿈을 되새기는 프로그램도 접할 수 있다. 대한제국 지도 만들기, 어차 만들어보기, 독립선언서 만들기, 고종황제 밀서 답장하기, 박에스더 편지쓰기 등이 진행됐다.

아이들과 함께 온 윤미경(42, 여, 서울시 중구 약수동)씨는 “음악회도 좋았지만 아이들이 독립선언서를 만들며 역사에 대해 알고 희망을 품을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구러시아 공사관 정동공원 ⓒ천지일보 2023.10.23.
구러시아 공사관 정동공원 ⓒ천지일보 2023.10.23.

국토발전전시관에서는 쏭내관 강의를 진행해 궁궐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줬다. 사전예약으로 진행되며 퀴즈를 통해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초희(가명, 55, 서울시 성동구 상왕십리동)씨는 “10년 넘게 정동에서 일했는데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몰랐다”며 “설명을 듣고 돌아보며 역사도 알고 싶어 강의를 듣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야설 거리공연에선 싱어송라이터 오상준과 최태준, 세션프라이데이 등의 기타와 노래로 덕수궁 돌담길을 가득 채워 시민들의 발길을 사고 잡고 있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