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강력범죄로 존폐 논란
사형제 찬성 여론이 3배 多
韓, 사실상 사형 폐지국 분류
가석방 없는 종신형 입법예고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사형제 폐지는) 국가 형벌권의 근본과 관련된 중대한 사안으로 사형의 형사 정책적 기능, 국내외 상황, 대체 형벌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무부가 지난 19~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UN·국제연합) 자유권규약 국가보고서 심의에 참석, 사형제 폐지에 관한 유엔 측의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이 심의는 1990년 유엔 시민적 정치적 권리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자유권규약)을 비준한 한국의 자유권 현황을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자리다.

올해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사형제도의 존폐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신림역·서현역에서 연속해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등 연이은 강력 범죄에 ‘사형 집행’ 여론이 조성됐다. 사형 집행에 찬성하는 여론은 강력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찬성 측은 사형제가 폐지되면 강력 범죄가 급증할 것을 우려한다. 반대 측은 ‘생명권’에 관한 문제인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사형을 재집행할 경우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10년간(2012~2022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5차례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존치 여론은 폐지 여론보다 2.3~4.9배 높았다. 지난해는 찬성(69%)이 반대(23%)의 3배였다.

검찰은 이달에만 2개의 사건에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 김승정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일당 7명의 공판에서 주범 이경우(36)와 공범 황대한(36), 범죄자금을 제공한 유상원(51)·황은희(49) 부부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들은 지난 3월 밤 11시 50분쯤 서울 역삼동에서 피해자 A씨를 차로 납치해 살해한 뒤 시신을 대전 대청댐 인근 야산에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또 지난 20일에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서 아랫집에 사는 70대 이웃을 살해하고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모(40)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8월 사형 집행시설이 있는 전국의 교정기관 4곳의 시설을 점검하고 실제 집행이 가능한 곳은 서울구치소 한 곳인 것을 확인했다. 유영철·정형구 등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흉악범죄자를 사형 시설을 갖춘 서울구치소로 이감하기도 했다.

현재 전국에 수감된 사형수는 총 59명이다. 이 59명 중에는 잔혹한 살인과 존속 살해, 총기 난사 살인, 방화 살해 등으로 국민에게 공포와 충격을 준 범죄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 이 중 4명은 군형법으로 사형이 선고돼 군에서 관리 중이다. 이들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을 경우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미집행자로 생을 마치게 된다.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 (출처: 연합뉴스)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 (출처: 연합뉴스)

그동안 유영철과 강호순 등 흉악 연쇄살인범의 등장에 사형제 존폐를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헌법재판소는 현재까지 두 차례 사형제가 헌법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3번째로 사형제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기도 하다. 한국은 1997년 12월 사형집행 이후 26년여 동안 단 한 차례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다. 이에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10년 이상 사형집행을 하지 않으면 사형제도가 있어도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판단하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무차별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등 범죄로 국민 불안감이 커져 ‘엄벌주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사실상 사형제가 폐지된 현실과 국민 법감정을 절충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2020년 제75차 유엔총회에서 사형 집행을 점진적으로 제한하는 ‘사형 집행 모라토리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바 있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는 “오랫동안 국회에서는 계속해 사형폐지에 관한 법률안이 제출됐지만 국회의원 임기만료와 함께 항상 폐기됐다. 이는 국회가 총선 때가 되면 국민 여론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왜냐하면 국민의 다수는 여전히 사형제 존치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혹 연쇄살인범이나 아동살인범에 관한 사건이 등장하면 사형제 존치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더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회가 사형폐지 법률안을 만들어 통과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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