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후 첫 ‘구호 트럭’
주민들 짧은 안도 깊은 근심
합의 조건 깨지면 즉시 중단
“지속적 지원 메커니즘 필요”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집트와 가자 스트립을 가로지르는 라파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집트와 가자 스트립을 가로지르는 라파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공습 작전으로 인도주의적 재앙에 처한 가자지구에 ‘생명줄’이 연결됐다. ‘라파’ 관문을 통해 주민들을 위한 구호품이 전쟁 후 처음으로 반입됐지만, 구호의 손길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이스라엘군은 오히려 공습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해 우려를 더한다.

21일(현지시간) 오전 10시경 트럭이 가자지구 주민을 위한 구호품을 싣고 이집트 라파 국경 검문소를 통과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알자지라 등 중동 현지 언론과 외신이 이날 일제히 전했다.

이집트와 가자지구를 잇는 유일한 통로인 ‘라파’가 문을 연 건 이스라엘 전쟁 발발 후 사실상 처음이다.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다른 두 개의 국경 검문소는 모두 폐쇄돼 있다. 그간 가자지구 내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와 무차별 폭격으로 물과 식량, 전력 등 생명줄이 잘린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야 했다.

앞서 지난 1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트럭 20대 분량의 구호품을 가자지구에 반입하는 데 조건부로 합의했다. 이어 라파 국경 검문소 앞에는 세계 각국과 국제단체에서 보낸 트럭 200대 분량의 구호물자 약 3000톤이 진입을 기다려왔다. 이날 라파 관문이 열리자 의약품, 제한된 양의 식량을 담은 트럭 20대분이 느린 속도로 들어갔으며, 트럭이 모두 통과하자 검문소는 다시 닫혔다.

첫 구호 트럭 진입에 국제사회는 환호했지만 여전히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먼저 이스라엘군이 하마스를 향한 전투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이스라엘군(IDF) 수석대변인을 맡은 대니얼 하가리 소장은 “하마스를 겨냥한 타격이 깊어지고 확대될 것”이라며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안전을 위해 남쪽으로 이동하도록 경고했다.

이날 가자지구 전역에는 지난 공습 때처럼 북부에 남아 있는 주민들은 하마스 공범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이스라엘군 전단이 살포됐다고 BBC는 전했다. 민간인 피해와 함께 구호 중단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앞서 이집트는 지난 9~10일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개방해놨던 라파 관문을 닫은 바 있다. 이스라엘군이 공습을 더 확대하겠다고 선포한 만큼 라파 관문은 언제라도 다시 닫힐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턱없이 부족한 구호 물량이다. 20대라는 1차분은 제주도 1/5 크기의 좁은 땅에 몰려 있는 200만명이라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고루 전달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유엔은 모든 자원이 고갈된 재앙적인 상황에서 당장 숨통이라도 트이려면 최소 100대분 이상의 트럭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유엔은 이번 반입을 ‘바닷속의 한 방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라파 국경 검문소에 대기 중인 구호품 실은 트럭들[라파=AP/뉴시스] 21일(현지시간) 가자 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국경 지역인 라파에서 구호품을 실은 팔레스타인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날 라파 검문소가 개방되면서 구호품이 가자 지구로 반입되기 시작했다. 2023.10.21.
라파 국경 검문소에 대기 중인 구호품 실은 트럭들[라파=AP/뉴시스] 21일(현지시간) 가자 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국경 지역인 라파에서 구호품을 실은 팔레스타인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날 라파 검문소가 개방되면서 구호품이 가자 지구로 반입되기 시작했다. 2023.10.21.
이스라엘서 네타냐후와 회담하는 바이든. (출처: 연합뉴스)
이스라엘서 네타냐후와 회담하는 바이든. (연합뉴스)

구호가 지속될지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가까스로 구호물품 반입에 합의한 이스라엘은 하마스로 공급 금지라는 조건을 붙였고 이집트도 구호 수송대의 안전을 내세웠다. 미국의 중재로 겨우 합의된 상황이니만큼 어느 조건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생명줄이 다시 끊어질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이스라엘은 이 지원 패키지가 과연 민간인에게까지 잘 전달될 수 있을지를 우려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실의 마크 네게브 대변인은 “원칙적으론 이집트를 통한 가자지구 지원을 허용하기로 합의했지만, 하마스가 민간인을 위한 지원을 가로채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일단 가자지구로 물품이 반입되면 추적이 어려운 만큼 민간인의 생명줄이 적으로 규정한 하마스의 생명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등 다른 나라로 들어가려는 외국인들 문제도 있다. 라파 관문에는 현재 수백병의 외국인들과 이중국적자들이 몰려 있는데, 이들이 가자지구나 이스라엘이 아닌 이집트나 그 방면의 이슬람 국가로 넘어가려 하면서 관문이 다시 닫힐 수 있다는 문제다. 이집트는 그동안 난민들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다. 협상 과정에서도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또 전기, 수도 등 모든 유틸리티를 끊은 이스라엘은 연료를 제외한 채 식량과 물, 의약품만 반입할 수 있다고 구호품 종류를 제한하고 있다. 이에 유엔 측은 연료 반입도 허용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다.

옌스 라에르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대변인은 “우리는 가자지구 구호물품 인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해야 한다”며 “인도주의적 휴전을 여전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2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에서 소녀를 품에 안고 대피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2023.10.1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12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에서 소녀를 품에 안고 대피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2023.10.16.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3.10.16.
12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시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3.10.16.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