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올해 두번째 정상회담
美 중심서 중러 주도 의지 피력

대규모 프로젝트 ‘일대일로’ 두고
‘빈국에 부채 안긴다’는 비판 속

푸틴 “각종 국제문제의 해결책”
시진핑 “양적→질적 성장할 때”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별도 양자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10.19.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별도 양자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10.19.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중국과 러시아가 전쟁이 잇따르는 혼란한 정세 속에서 전략적 동맹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나섰다. 3연임을 확정하고 줄곧 러시아와 밀착 행보를 이어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디커플링과 무역 재제 등을 꼭 집어 서방을 견제하면서도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일대일로에 참가한 130여개국의 결속을 강조했다.

양 정상은 중국이 추진해온 거대 경제권 구상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 국제회의가 열린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만나 손을 맞잡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직전인 지난해 2월 4일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도 양 정상은 우정을 과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만사를 제쳐두고 확전 위기감이 고조되는 중동, 이스라엘을 찾아간 날이다.

◆시진핑 ‘지구촌 협력구상성과’ 과시

시진핑 주석은 18일 ‘일대일로’ 국제회의에서 기조연설에 나섰다. 자신이 제안해 이뤄진 지구촌 구상이 어언 10년을 맞아 세계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국제협력의 구심이 됐다면서 그 성과를 과시했다.

시 주석은 “앞으로 참가국들과 함께 한층 더 질 높은 발전을 목표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때”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환경 분야 등 8개 항목의 행동 방침을 제시했다. 중국에 의한 과잉융자나 난개발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의식, 일대일로 참가국들의 결속을 거듭 강조했다.

다만 전쟁 관련해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가자지구의 정세 등 외교 안보 사안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꺼렸다. 중동 정세 등 중요한 얘기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따로 만나 깊이 상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일대일로가 열린 베이징에서는 지난주 이스라엘 대사관 관계자가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 정부가 중동 문제를 계기로 테러 위험 등에 대비, 경비 체제를 크게 강화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정상포럼 개막식 기조연설 후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는 지난 10년간 풍성한 성과를 달성했고, 이런 성과와 기회를 세계와 공유하겠다"라고 밝혔다. (AP/뉴시스) 2023.10.19.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정상포럼 개막식 기조연설 후 인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는 지난 10년간 풍성한 성과를 달성했고, 이런 성과와 기회를 세계와 공유하겠다"라고 밝혔다. (AP/뉴시스) 2023.10.19.

그러나 시 주석은 특히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하는 서방이 중국의 러시아 지원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점을 의식한 듯 “일대일로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 대립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도와 도로, 공항, 항만 등으로 전 세계에 네트워크를 넓혀 상품과 기술, 사람의 흐름을 촉진해 왔다”며 지정학적 고려 대신 지구촌 연결성에 더욱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시진핑·일대일로 치켜세운 푸틴

17일 중국·베이징에 도착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엄중한 경호 속에서 36대의 차량대열을 이뤄 중국 영빈관으로 향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국제형사재판소가 지난 3월 17일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였고, 이날 이후 푸틴 대통령이 구 소련권 이외의 나라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바로 다음 연설에 나섰다. 그는 “일대일로가 성공하고 있어 기쁘다”고 칭찬하면서 “중요하고 임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대일로 등의 틀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일대일로를 통한 지구촌의 연결이 국제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포럼에는 푸틴 대통령을 포함해 130여개국 대표가 포럼에 참석했다. 참석한 국가 원수는 총 23명으로, 2019년 포럼의 37명에 비해 10명 이상 줄어들었다.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은 실종됐다. EU 지도자는 헝가리 총리가 전부였다.

이어 중러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행사 중 3시간에 걸친 회담에서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양측이 전략적 신흥 산업에서 협력을 모색하고 지역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미국과 유럽 등 서방 진영에 맞서 연대를 강화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선진국 대부분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러시아는 중국이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며, 구체적인 관계 강화를 재확인했다.

앞서 시 주석은 1000여명의 대표단에게 “우리는 (서방의) 일방적인 제재, 경제적 강요, 디커플링, 공급망 파괴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지도자들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싶다며 대중국 디커플링이 아닌 탈리스크가 목표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 회담 앞서 선제적인 친중 행보

러시아는 이날 정상회담을 앞두고 선제적인 친중 행보를 보였다. 러시아 극동 지역 중러 국경 마을인 블라고베셴스크에서 중국인 관광객의 모습이 대거 발견됐다. 러시아 극동에서 3번째로 크며 아무르주 주도인 블라고베셴스크는 중국 헤이룽장성 헤이허와 아무르강을 사이에 두고 500m 거리에 있다.

러시아의 각종 생필품 도매시장에는 중국산 물건이 잇달아 운반 중이다. 러시아에서 중국이 만들어 세상이 열광하고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 사용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방중에 앞서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을 잔뜩 띄웠다. 그는 “틀림없이 그(시진핑 주석)는 세계에 인정받은 리더 중 한명”이라고 치켜세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러시아의 북극해 항로 개발에도 많은 국가가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AP/뉴시스) 2023.10.19.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 연설을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러시아의 북극해 항로 개발에도 많은 국가가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AP/뉴시스) 2023.10.19.

앞서 양국은 지난해 6월 10일 중국 헤이허 지역과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를 잇는 도로 다리를 개통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이 다리가 중국과의 물류에서 대동맥 역할을 할 것”이라고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당시는 물자 운반을 우선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중러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다리가 됐다.

다리 개통 후 지난 5월 블라고베셴스크 쪽 다리 근처에는 물류와 통관, 세관이 한곳에 들어선 시설이 설치됐다. 다리가 개통되기 전까지 중국에서 러시아 블라고베셴스크 지역으로 들어오는 화물은 1500㎞ 떨어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다리와 시설을 거치면 500m만 이동하면 된다. 물류비와 시간 절약을 고려하면 가격도 크게 저렴해져 다리를 이용한 무역은 급증할 전망이다. 실제 10월 현재까지 올해 중러 무역액은 전년 동기대비 약 30%나 증가했다. 증가속도도 빠르다. 러시아에서는 최근 중국어 배우기 열풍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요 도시의 모든 학교에서 중국어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추세다.

◆일대일로 대한 서방의 회의적 시각도

일대일로는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중국의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사업을 말한다.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돕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반대로 가난한 국가에 막대한 부채를 지우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 200억 달러(약 27조원)가 넘는 빚을 지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연설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관련해 “국가의 재정 상태를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댐과 같은 대규모 사업에서 디지털 금융, 전자 상거래 플랫폼과 같은 첨단 기술 분야로 이동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서방 분석가들은 미국의 일극 체제에 대항해 글로벌 사우스가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포럼에 참가한 익명의 한 유럽 기업 대표는 기념식과 별도로 “일대일로가 관련국 국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다만 이에 관련한 호구지책과 연결성 개선에 대한 일부 연설에는 어느 정도 진정성이 있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별도 양자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10.19.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차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별도 양자 회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2023.10.19.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