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공격 ‘중동 화해 좌초’ 목적 관측

‘실각 위기’ 이스라엘 정권서 유발 의혹도

이스라엘 극우 정권과 무척 닮은 윤 정부

국방장관 9.19 효력 정지 주장은 ‘어불성설’

(출처: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간 무력충돌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출처: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군 간 무력충돌 발생 사흘째인 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 단체가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에 나선 건 이스라엘의 대(對) 팔레스타인 정책인 힘에 의한 평화와 이를 뒷받침한 극우 정권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나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기가 될 때마다 외치는 구호와도 일치해 이목이 집중되는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힘에 의한 평화의 한계를 인정하고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걱정어린 목소리를 내놓는다. 물론 그간의 행보를 보면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변함은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가자지구 17년째 강력봉쇄‧군사작전

이스라엘은 1947년 5월 조상 대대로 살아온 팔레스타인을 내쫓고 건국을 강행했다.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을 팔레스타인에서 ‘나크바(대재앙의 날)’로 부르는 이유다. 가자지구 주민 60%가량이 당시 난민의 후예다.

비극의 시작점인데, 이후 양측의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에는 이스라엘이 17년째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생필품 반입을 통제하는 등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펼쳐 갈등을 더욱 키웠다.

전력망과 상하수도를 비롯한 가자지구의 기반 시설은 17년 동안 초토화됐다. 유엔 팔레스타인 인권특별보고관(2008~2014년)을 지낸 리처드 포크 미국 프린스턴대학 명예교수(국제법)는 “무한 폭력의 다히아 독트린은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바로 국가테러주의”라고 꼬집은 바 있다.

‘다히아 독트린’은 가디 아이젠코트 전 이스라엘군 합참의장이 고안한 ‘비대칭적 군사전략’으로, 적대세력의 민간용 사회기반시설을 압도적 무력을 행사해 파괴함으로써 그들의 전투 요원들이 이를 활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이다. 2006년 레바논의 무장 정치단체 헤즈볼라(이란 원리주의 영향)와 전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군이 초토화한 베이루트 인근 다히아 지역에서 따온 이름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봉쇄된 가자 지구를 툭하면 때려댔다. 이스라엘 인권 단체 ‘점령지인권정보센터(베첼렘)’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12월 27일부터 해를 넘겨 22일간 이어진 작전명 ‘케스트 리드’로 가자 주민 1391명이 숨졌다. 사망자 가운데 759명은 민간인이었고, 318명은 18살 이하였다.

이후에도 필라 오브 디펜스(2012년 11월, 167명 사망), 프로텍티브 엣지(2014년 7월 8일, 2203명 사망), 가디언 오브 더 월(2021년 5월 10일, 232명 사망), 브레이킹 돈(2022년 8월 5일, 33명 사망) 등 대규모 군사작전이 계속됐다. 올해에도 내내 이스라엘의 거센 공세가 이어졌는데, 이는 이스라엘과 서방 쪽 주장과 달리 하마스의 이번 공세가 ‘예상 밖’의 일이 아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재차 통화할 예정이라고 이스라엘 현지매체가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제78차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회담하며 악수하고 있는 모습. 2023.10.09 (출처: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재차 통화할 예정이라고 이스라엘 현지매체가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제78차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회담하며 악수하고 있는 모습. 2023.10.09 (출처: 뉴시스)

◆이스라엘 극우 정권 등장으로 더욱 갈등

아울러 지난해 말 이스라엘에 극우 시오니즘 정권이 들어선 뒤 양측 간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 ‘알 아크사’에 경찰을 투입해 예배 중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둔기로 마구 때려 체포하는 등 종교적 도발로 하마스를 자극했다.

이스라엘은 무장한 채 사원에 숨어든 팔레스타인 참배객들을 사원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지만, 팔레스타인은 무고한 참배객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면서 가자지구에서 10여발의 로켓을 발사하기까지 했다.

17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에 따른 경제난이 하마스 공격의 빌미가 됐다는 분석과 함께 실제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성지인 알 아크사를 훼손했다는 것을 공세의 또 다른 명분으로 들고 있다.

알 아크사는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모두 중요한 성지로 여긴다. 유대인에게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하나님에게 바치려던 곳이자 솔로몬 성전이 있는 장소이고, 이슬람인들에게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승천한 장소로 이슬람 3대 성지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무력을 통해 인접국인 요르단으로부터 가져갔지만, 알아크사의 모스크 사원 경내에서 기도는 이슬람 신자에게만 허용하고 유대인들은 성전 산 바깥에 있는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관행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극우 성향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불만을 공공연히 표출해 왔고, 올해에는 수차례 일부 극우 정치인을 포함한 이스라엘인들이 기습적으로 사원 경내에서 기도해 이슬람 측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라파=AP/뉴시스] 1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라파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엿새째 지속되면서 양측 사상자가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라파=AP/뉴시스] 1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라파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부상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이 엿새째 지속되면서 양측 사상자가 1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마스 극단적 대결 택한 배경은

강력한 힘에 의한 통제 정책과 극우 정권의 등장은 이스라엘 대 팔레스타인 간 갈등을 정점에 다다르게 했고, 이는 하마스가 민간인까지 인질로 삼는 등 극단적인 대결을 선택한 본질적인 원인이라는 관측이다.

또 다른 배경으로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중동의 화해 분위기 속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지난 2020년 이슬람권 국가인 바레인, 모로코 등과 관계를 정상화했고 올해는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평화 무드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목적과 맞물려 공격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선행 조건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내걸었지만 이스라엘은 진정성 있게 응하지 않은 채 이를 후순위로 넘기려고 했다. 팔레스타인 없는 중동권의 평화는 올 수도 없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해법 없는 접근은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측이 간과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선 하마스 공격에는 이란의 지원이 배후에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마스의 공격이 이스라엘 정권에 의해 유발된 측면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이다. 3번의 기간을 합쳐서 장장 15년을 집권한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뇌물 스캔들 수사에 대한 견제와 함께 극우 정권 연장을 위한 사법 개악의 반발로 실각 위기까지 처하자 외부의 위협을 부각해 치환했다는 것이다. 올해 알 아크사 갈등도 시선을 돌리기 위한 네타냐후 총리의 자자극이라는 설도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무력 충돌을 유발해 중동 위기를 고조시키고 이를 통해 극우 유대주의와 손잡고 권력을 강화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의 치밀한 수법에 하마스가 말려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다 어린이와 여성, 외국인 등을 인질로 잡고 가혹하게 학대하는 등의 모습을 SNS에까지 올렸으니 국제사회의 공분 여론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국내 언론 대부분은 하마스가 일방적으로 테러에 가까운 위협을 하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실상 하마스의 무기 수준은 조잡한 정도로 5000발의 로켓포 공격에도 일부 몇몇 사상자만 발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이에 대응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은 전투기를 동원한 폭격과 중무장한 기갑전력을 앞세워 가자지구 민간인 지구에 들어가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는 등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라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출차: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출차: 뉴시스)

◆“힘에 의한 평화 한계… 위기관리 중요”

‘힘에 의한 평화’와 극우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은 윤석열 정권과 무척 닮아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힘에 의한 평화’를 안보·국방정책의 핵심 가치로 역설해 왔다. 올해 들어 표현의 강도와 빈도 역시 모두 높아졌다. 지난 4월 방미 이후 윤 대통령은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최근 75주년 국군의 날 공식 구호는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였다. 작년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첫 국군의 날 구호가 ‘튼튼한 국방, 과학기술 강군’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양새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는 이 같은 기조를 견인해 줄 통일부와 국방부 등 내각에 극우 인사들을 대거 배치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주장한 힘에 의한 평화는 이번 하마스 사태에서 한계로 드러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윤 정부는 군의 대량보복체계가 완벽한 것처럼 설명하지만 얻어맞고 보복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남북 간 군비 경쟁을 부추길 뿐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되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으니 한반도 위기 관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네타야후만큼 무장 평화,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한 사람도 없다. 또 한쪽으로는 극우 통치를 했다”면서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태가 발생한 주된 배경이다. 위기를 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하는 노력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역사에서 내몰린 극단주의자들이 발호한 계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힘에 의한 강력한 통제의 결과가 남북 긴장 고조, 즉 불안함이라면 현재의 대북 기조에서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함께 등장할 수밖에 없다. 상시적 불확실성은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장벽을 높이 쌓고, 정보 활동을 강화하고, 첨단 무기에 돈을 쏟아부어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신원식 국방부 장관 등이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해야 하마스 공격 같은 것을 막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굳이 최후의 ‘안전핀’ 역할을 하고 있는 9.19 합의를 효력 정지해야 한다는 등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키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건 이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지전 등 남북 충돌을 유도해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안보로 정치적 이득을 챙기겠다는 심산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것인데, 보수 정부만 들어서면 북한과의 대결 구도를 구축하는 것도 이런 계산의 일환이라는 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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