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년 美 의회 역사상 최초
45일 한도 예산안 통과 여파
야당 소수파가 의회 좌지우지
예산 기한 코앞 양당 대립 속
우크라 전쟁 지원도 난관 전망

234년 미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안이 통과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23.10.04.
234년 미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안이 통과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23.10.04.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앞으로 공화당 내에서 강경파의 영향력이 더욱 늘어나면서 민주-공화 양당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포함해 법안이나 예산안을 합의하는 게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 하원의장 해임에는 무당파층 민심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전격 해임된 후 현지 정치 논객들의 논평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 정치 전문가들은 “공화당은 원래 하나의 대오가 아니었지만, 최근 들어 당내 이념 대립이 눈에 띄었다. 매카시 하원의장은 당초 공화당 강경파와 타협해 의장이 됐다. 이번에는 강경파가 그에게 양보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공화당 내서 안건 제출 후 통과

공화당 강경파 맷 게이츠 의원이 매카시 의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해임안이 통과되기 전날인 2일 밤. 매카시 의장은 정부 기관 폐쇄를 막기 위해 여당인 민주당을 배려한 ‘연결예산안’에 합의했다. 이에 매카시 의장과 같은 당인 게이츠 의원은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의 압도적인 찬성 속에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인정한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킨 걸 보면 모종의 뒷거래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게이츠 의원은 특히 대폭적 세출 삭감이 포함되지 않았던 점에 반발해 매카시 의장 해임 동의안을 전격 제출했다. 이어 민주당 전원과 공화당 내 게이츠 의원 계보인 보수 강경파 의원 8명이 찬성, 해임 결의안이 덜컥 통과되고 만다. 미국 역사상 처음 하원의장이 하원 표결로 해임된 순간이었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된 공화당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위 오른쪽)과 해임안을 제출한 같은 당 강경파 맷 게이츠 하원의원. (AFP/연합뉴스) 2023.10.05.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해임된 공화당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위 오른쪽)과 해임안을 제출한 같은 당 강경파 맷 게이츠 하원의원. (AFP/연합뉴스) 2023.10.05.

당초 매카시 의장은 설마 자신이 해임될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틀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전날 밤 제출된 자신에 대한 해임 동의안을 이튿날 곧바로 표결에 부친 것이다. 그런데 예산안에 힘을 실어줬던 집권 민주당 지도부는 투표 직전 매카시 의장 해임 안에 찬성하기로 당론을 모았다.

해임안이 통과되려면 과반 찬성이 필요한데 민주당 212명 전원이 찬성하고 공화당 221명 중 5명 이상만 찬성하면 가결되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찬성 216표, 반대 210표. 공화당 강경파 의원 8명이 같은당 매카시 의장 해임에 표를 던진 결과였다. 소수 강경파가 미국 내 권력서열 3위인 자당 소속 하원의장을 역사상 처음으로 끌어내린 순간이었다.

◆“여당 구해준 매카시 여당이 버려”

해임된 매카시 의원은 “나의 노력을 후회하지 않는다”라며 연결 예산안을 둘러싼 자신의 판단 타당성을 거듭 주장했다. 또 이날 해임 결의안이 통과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에 대해 백악관과 합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보내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무장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국민에게 예산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기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본다”고 책임을 바이든 대통령에 돌렸다.

현지 전문가들은 “공화당 분열 상태에서 하원의장이 된 매카시는 민주당의 협력을 얻어야 해임되지 않고 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를 구하지는 않았다”고 이번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임된 케빈 매카시 전(前)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3.10.04.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임된 케빈 매카시 전(前)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3.10.04.

매카시 해임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화근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셧다운 시한을 불과 3시간 앞둔 9월 30일 밤 하원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지 않는 잠정 예산을 의결한 직후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맥카시 의장과 우크라이나에 관한 합의를 체결했다”고 공표했다.

이것이 어떤 합의였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매카시가 자신의 당은 물론 의회 동의 없이 집권 행정부와 협상했고, 이것이 당내 소수파를 격노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해임안 가결 이후 기자들에게 “나와 매카시는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합의를 정리했지만 공화당 강경파 때문에 엉망이 됐다”고 비판했다.

◆민심 업고 있는 공화 소수파 ‘변수’

야당의 소수파가 미국 의회정치를 좌지우지한 이번 사건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오히려 미국 국민들의 민심이 반영돼 있다는 시각도 눈에 띈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 등 미국의 물가와 재정 악화 상황 속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는 다수의 국민이 반발하는 사안이었다는 시각이다.

과거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인이 다수 희생됐다는 대의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지원 명분은 이념적이기 때문에 미국 대중들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배제하기 어렵다. 재정적자 누적은 미국이 원래 지향했던 연방제, 작은 중앙정부로 돌아가려는 잠재적 민심을 현실로 불러냈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결국 향후 누가 미국 하원의장이 되든, 공화당 강경파의 주장이 주목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공화당 강경파의 주장대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이 더욱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 하원 지도부 공백으로 하원 기능이 당분간 마비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7월 의회에 요청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240억 달러(약 32조원)의 내년도 예산안 반영이 불투명한 상태다.

또 공화당 강경파 주장대로 미국 정부 지출이 전반적으로 삭감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공화당 강경파는 내년 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포함해 지난해 수준인 1조 4700억 달러(약 2000조원)으로 맞춰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연방정부 업무정지 이른바 ‘셧다운’을 피하기 위한 임시 예산안 처리 후 매카시 하원의장이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공화당 내 분열된 모습이 보이고 있다. ‘셧다운’ 하루 전날 공화당 의원 126명과 민주당 의원 209명이 임시 예산안을 지지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美 임시 예산안 상원 통과 순간 (출처: AP, 연합뉴스)
미국 연방정부 업무정지 이른바 ‘셧다운’을 피하기 위한 임시 예산안 처리 후 매카시 하원의장이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며 공화당 내 분열된 모습이 보이고 있다. ‘셧다운’ 하루 전날 공화당 의원 126명과 민주당 의원 209명이 임시 예산안을 지지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美 임시 예산안 상원 통과 순간 (출처: AP, 연합뉴스)

앞서 미 하원은 지난달 30일 연방정부 업무 중단(셧다운)을 하루 앞두고 45일간의 임시 예산안을 처리한 바 있다. 1조 5900억 달러 규모의 이 임시 예산안에는 공화당에서 반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통째로 빠지게 됐다.

◆우크라 전쟁 지원 두고도 ‘분열’

무엇보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국이 지속 표류할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극 균형이 무너지고 다극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중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양극화 구도에 균열을 낸 정치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다 미국 중산층 입장에서 그다지 피부에 와닿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균열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때 자부심의 대상이던 미국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에 침식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선 ‘이젠 전쟁을 끝내자’라는 목소리가 늘고 있다. 600여일에 가까운 장기전 속에 우크라이나가 총력전으로 잃어버린 영토를 빠르게 수복할 거란 서방의 기대와는 달리, ‘대반격’이 더디게 진행되고 전쟁 피로감이 누적되면서다. 이에 따라 종전을 원하는 목소리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여론까지 커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의장 해임 사태 이후 의회를 우회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백악관서 부채한도 협상하는 바이든과 매카시 美 하원의장(출처: AP, 연합뉴스 )
백악관서 부채한도 협상하는 바이든과 매카시 美 하원의장(출처: AP, 연합뉴스 )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결국 예산이 반영되지 않을 상황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것”이라면서 “차기 지원에 대해선 자금을 조달할 다른 방법들이 있다”고 시사했다. 대통령령에 근거해 어떻게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는 미 의회의 합의 문제로 미국의 지원이 중단될 경우 다른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CNN이 존커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을 인용해 이날 전했다.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모습. (AP/뉴시스)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 모습.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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