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577돌 맞은 한글날

애민정신 깃든 ‘훈민정음’

억압 속 한글을 지킨 사람들

훈민정음 해례본.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천지일보 2023.10.04.
훈민정음 해례본.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천지일보 2023.10.04.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한글날이 제577돌을 맞는다. 해마다 10월 9일이면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돼 반포된 날을 기념하며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올해 역시 문화체육관광부는 4~10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한국박물관 등에서 ‘2023 한글주간’ 행사를 개최하며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다. 한글주간 행사는 2008년 시작해 올해 16회를 맞았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읽고 쓰는 글자이지만 막상 한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면 막막할 때가 있다. 과연 한글은 어떤 문자일까.

먼저 한글날은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로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다. 이후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됐으며 광복 후 양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 2006년부터는 국경일로 지정해 지키고 있다.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문자로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3.10.04.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문자로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3.10.04.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한글은 ‘큰 글’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이는 한글의 태생과도 맞물린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은 고전(古篆)을 본받아 창제됐다. ‘세종실록’ 제102권, 세종 25(1443)년 음력 12월 30일자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만들었다. 그 글자는 고전(古篆)을 본받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눠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이 이어(俚語: 속된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이름 하겠다.”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문자의 이름인 동시에 이 문자를 한문으로 해설해 1446년에 반포한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우리말을 자유롭고 온전하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없어 지배계층은 입으로는 우리말을 하고 글을 쓸 때는 한문(한자)을 쓰는 이중적인 언어생활을 했다.

반면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했다. 이에 세종은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고, 자기의 생각과 뜻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더불어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 백성을 교화하고 나아가 통치에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도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세종의 애민정신이 깃든 글자인 것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 (출처: 해당 영화 포스터) ⓒ천지일보 2023.10.04.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 (출처: 해당 영화 포스터) ⓒ천지일보 2023.10.04.

◆ 한글을 지키다

훈민정음이 한글로 불린 시기는 1910년대 초로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뜻글자가 아닌 표음문자(表音文字)인 한글은 외국인들도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로 꼽힌다.

그 제자원리 중 모음의 제자원리는 하늘의 둥근 모양(‧)과 땅의 평평한 모양(ㅡ), 사람이 서 있는 모양(l)을 본 뜬 ‘상형’, 둘 이상의 것을 합친 ‘합성’이 있다. 즉 천(天), 지(地), 인(人)을 상형화해 이 셋을 기본자로 초출, 재출, 합용의 원리로 탄생한 것이다. 한글을 과학적이며 창조적인 문자로 보는 이유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사용 방법 등을 한문으로 해설한 책 ‘훈민정음’은 국내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대한민국 국보 제70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지금은 우리가 자유롭게 읽고 쓰는 한글이지만 일제강점기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학교에서는 한국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만을 가르쳤고, 일상생활에서도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한글로 된 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과 잡지(신동아, 문장)도 폐간됐다.

이렇게 일제의 억압이 극심하던 시기 한글을 지킨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다.

6.25전쟁 중에 수정한 '조선말 큰사전' 제5권(1953년). (출처: 한글학회 소장) ⓒ천지일보 2023.10.04.
6.25전쟁 중에 수정한 '조선말 큰사전' 제5권(1953년). (출처: 한글학회 소장) ⓒ천지일보 2023.10.04.

조선어학회는 1931년 우리의 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 현재의 한글학회다. 이들은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상황 속에서도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으며, 1933년에는 오늘날까지도 한글표기의 기준이 되는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이후 1940년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들어가 1942년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예정이었으나 조선어학회를 독립단체로 간주한 일제에 의해 무산됐다. 일제는 사전 편찬을 위해 힘들게 모은 원고 2만 6000여장을 압수했으며 1942년부터 1943년 4월까지 한글학자 33명을 체포하고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고유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이다.”

당시 일제가 일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이들에게 내린 결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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