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년 美 의회 역사상 최초
45일 한도 예산안 통과 여파
우크라 지원 등 여야 대치 속
같은 당서 안건 제출 후 통과
정국, 대화 실종 속 혼돈으로

234년 미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안이 통과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23.10.04.
234년 미국 의회 사상 처음으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안이 통과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2023.10.04.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미국 의회 권력서열 3위인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 결의안이 속전속결로 통과됐다. 하원의장 해임안 통과는 234년 미 의회 역사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극적으로 ‘일시 정지’됐던 이른바 ‘셧다운(정부 업무 정지 사태)’이라는 시한폭탄에 다시 불이 붙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하원은 3일(현지시간) 맥카시 하원의장을 해임하는 결의안을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통과시켰다고 CNN 등 현지 언론이 이날 일제히 전했다. 하원 의석은 야당인 공화당 의석(222석)이 민주당(212석)보다 많다. 최소 공화당 소속 의원 8명이 같은 당 의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 민주당 편에 섰다는 계산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중심으로 예산 대폭 삭감을 요구하는 공화당 강경파의 목소리에도 하원의장이 ‘셧다운’을 피하려 45일짜리 임시 예산안을 통과시킨 데에 따른 여파다. 이번 사태로 공화당 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진 데다 여야 간 대치가 격렬해지면서 미 정국은 극단적인 혼란에 빠지게 됐다. 특히 해임안이 공화당 같은 당내에서 강행 추진된 만큼, 여야 간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진은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 (출처: AFP, 연합뉴스)
사진은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 (출처: AFP, 연합뉴스)

해임 결의안은 전날 하원의장과 같은 공화당 소속의 강경파 의원인 맷 게이츠 의원이 제출했다. 그는 결의안을 제출한 뒤 “매카시는 ‘늪’과 같은 존재”라면서 “그는 특별 이자를 받고 그 돈을 재분배함으로써 권력을 잡았다. 우리는 이제 그 ‘열병’을 깰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카시 의장은 약 9개월 전 당선될 당시 강경파와 줄다리기 속 15번의 투표 끝에 가까스로 의장 자리에 오른 바 있다.

최근 게이츠 의원을 비롯한 강경화 의원들은 매카시 의장이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제외한 45일짜리 임시 예산안을 처리한 것에 반발한 바 있다. 공화당 강경파는 내년 예산안에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포함해 지난해 수준인 1조 4700억 달러(약 2000조원)으로 맞춰야만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 미 하원은 지난달 30일 연방정부 업무 중단(셧다운)을 하루 앞두고 45일간의 임시 예산안을 처리한 바 있다. 매카시 하원의장이 제안한 임시 예산안은 이날 하원 본회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찬성 335 대 반대 91로 통과됐다. 1조 5900억 달러 규모의 임시 예산안에는 공화당에서 반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은 빠졌다.

미국 하원은 18일(현지시간)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막기 위해 마련한 범정부 임시예산안을 찬성 230표, 반대 197표로 가결했다.상원으로 넘어간 예산안이 19일까지 최종 처리되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201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셧다운에 처한다. 사진은 폴 라이언(가운데) 하원의장 등 하원 공화당 지도부가 이날 의회에서 상원에 대해 예산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미국 하원은 18일(현지시간)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막기 위해 마련한 범정부 임시예산안을 찬성 230표, 반대 197표로 가결했다.상원으로 넘어간 예산안이 19일까지 최종 처리되지 않으면 연방정부는 2013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셧다운에 처한다. 사진은 폴 라이언(가운데) 하원의장 등 하원 공화당 지도부가 이날 의회에서 상원에 대해 예산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매카시 의장은 이날 해임 결의안이 통과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에 대해 백악관과 합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자금을 보내는 게 아니라 우크라이나 무장하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국민에게 예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기에 실패로 돌아갔다고 본다”고 책임을 바이든 대통령에 돌렸다. 또 그간 사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다면서 “결과를 존중하며 저는 (앞으로도) 항상 국민을 위해 일할 것”이라고도 했다.

매카시 의장이 물러난 자리에는 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공화당 패트릭 맥헨리 의원(노스캐롤라이나)이 임시의장을 맡아 표결과 차기 의장 선출을 주관한다. 그는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백악관과 협상 자리에서 공화당 최고 협상가로 투입되기도 했다.

이번 의장 해임으로 하원은 당장 새로운 의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원 공화당은 조만간 회의를 열어 새로운 의장 선출을 논의할 예정이다.

백악관서 부채한도 협상하는 바이든과 매카시 美 하원의장(출처: AP, 연합뉴스 )
백악관서 부채한도 협상하는 바이든과 매카시 美 하원의장(출처: AP, 연합뉴스 )

하원은 내주까지 휴회 중으로, 의장이 공석이 되면서 정상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또다시 셧다운 사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도부 공백에다 예산안을 놓고 의원들 간 더욱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면서 최악의 상황 시 정부 업무 정지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임시 예산 기한은 내달 중순으로 불과 한 달여를 남겨두고 있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두고도 갈등이 예상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번 임시 예산안에 우크라 지원이 빠지자 “어떤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지원이 중단되는 걸 허용할 수 없다”면서 “시간이 얼마 없다. 상대 진영(공화당)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우크라이나는 미 의회의 합의 문제로 미국의 지원이 중단될 경우 다른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CNN이 존커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을 인용해 이날 전했다.

한편 하원에서 의장에 대한 해임안이 제출된 건 1910년 조지프 캐넌, 2015년 존 베이너 전 의장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베이너 전 의장의 경우 해임안 제출 두 달 뒤에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바 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임된 케빈 매카시 전(前)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3.10.04.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해임된 케빈 매카시 전(前) 하원의장이 3일(현지시간)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뒤 기자회견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23.10.04.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