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약 경로 역추적해 병원 특정
식약처 등 유관기관 협력 강화
2차 범죄 연평균 ‘200건’ 이상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채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힌 20대 남성 신 모씨가 8월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채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행인을 치어 중상을 입힌 20대 남성 신 모씨가 8월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강남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 ‘람보르기니 주차 시비 사건’ 등 최근 연이어 마약류 문제가 발생하면서 경찰이 마약류 과다 처방 의혹이 있는 병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의료기관의 마약류 불법 취급·오남용 사례 적발 시 단속 정보를 적극적으로 주고받는 등 수사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발생한 마약류 관련 운전 등 범죄 척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단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히 병원이 취급하고 있는 마약류와 관련해 관계 기관과 협의해 단속을 강화할 것임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마약류 관련 사건 피의자의 투약 경위를 역추적해 처방 병원을 특정한 뒤 해당 병원의 처방 약품 및 처방량에 대한 적정성 등을 들여다보겠다는 게 경찰의 계획이다.

경찰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피의자의 투약 경위를 조사하면서 처방 병원을 확인 후, 의료용 처치와 관계없이 프로포폴이나 펜타닐 등의 처방이 과도했는지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식약처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는 등 관계 기관과의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식약처가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NIMS)에 올라온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 처방 병원 및 투약 환자 정보 등을 분석해, 프로포폴이나 펜타닐 등의 처방이 과도하게 이뤄지는 병원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식이다.

또 의료용 마약류 합동 점검 체제를 연 2회에서 연 4회로 늘리고, 의료기관의 마약류 불법 취급·오남용 사례 적발 시 단속 정보를 적극적으로 주고받기로 했다.

이처럼 경찰이 식약처와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최근 의료용 마약류에 취한 채 차량을 운전하다 인도에 있던 행인을 치어 다치게 하는 등 마약류 투약 후 2차 범죄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8월 2일 오후 8시 1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뇌사 상태에 이르게 한 신모(28)씨는 사고 당일 강남의 한 병원에서 피부미용시술을 빙자해 미다졸람, 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2회 투약받고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차량을 운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씨는 체내에서 케타민, 포로포폴 등 향정신성의약품 7종이 검출됐다.

‘람보르기니남’으로 불리는 홍모(30)씨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람보르기니 차량을 주차하려다 가게 직원과 시비가 붙자, 흉기를 보이며 위협한 뒤, 차를 타고 달아난 혐의로 지난 13일 구속됐다.

홍씨는 주차 시비 전후 서울 강남의 병원 두 곳을 방문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주 3시간 만에 붙잡힌 홍씨는 체포 당시 휘청이기도 하고, 앞으로 넘어지기도 하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마약 간이시약 검사 결과 필로폰, 엑스터시(MDMA), 케타민 마약 3종 양성 반응이 나왔다.

지난해 마약류 투약 후 환각 상태에서 살인, 폭력 등 강력 사건을 저지른 사범이 214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마약류 투약 상태에서 살인·폭력 등 2차 범죄를 저지른 사례는 최근 3년 기준 연 평균 2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유형별로는 교통 범죄가 66명으로 가장 많지만 살인·살인미수가 4명, 강도·강간이 21명이나 됐다.

특히 마약류 투약사범이 늘면서 치사량에 이르는 마약류 과다 투약, 마약류 중독에 따른 불안장애 등에 따른 극단선택, 환각 상태에서의 사고사 등으로 사망 사례도 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지난 3월 ‘마약류감정백서’에 따르면 변사체에서 마약류 검출된 사례는 2021년 43명에서 2022년 69명으로 60.46%가 급증했다.

앞서 대검찰청은 “지난해 모두 214명이 마약류를 투약한 상태에서 살인과 폭력 등 추가 범죄를 저질렀다”며 “단순 마약류 투약이라도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는 2차 범죄로 이어질 위험성이 높은 중범죄이므로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약물운전 사례가 잇따르면서 약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을 해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최근 이 형량을 올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약물운전으로 사람을 상해에 이르게 한 사람은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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