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 때 저마다 귀성길에 오른 가운데 6.25 전쟁으로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과 생이별한 이산가족의 사연이 전해졌습니다. 이들의 가슴 속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산가족 1세대는 평균 80세 넘는 고령이 됐고,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숫자는 늘고 있습니다.

부산에 사는 이산가족 2세대 김성만(66)씨가 지난 23일 천지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가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고 말했습니다. 김씨의 부모는 모두 이북 출신입니다. 1928년생인 김씨의 아버지는 평안남도 강서군 쌍용면에 살았습니다. 6.25 전쟁 발발 이후 인민군으로 징집돼 전쟁터에 나갔다가 남한군에 손을 들었습니다.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 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당시 반공 포로들은 국군에 입대했습니다. 김씨의 아버지는 군 제대 후 1.4 후퇴 때 북에서 피난 온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김씨 아버지와 북에서 온 친구, 자식들은 서로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이들이 남쪽에서의 가족이고 친척이었습니다. 그러나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대신하지 못했습니다.

김씨 아버지는 여동생들이 학교에 들어가던 걸 마지막으로 보고 평생을 그리워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김씨는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평양이 폭격 맞아 다 가루가 됐었다”며 그때 다 죽었을 거라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김씨의 아버지는 여동생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현재 김씨 어머니는 95세. 김씨는 “북한에 가도 (어머니) 가족들, 형제들 다 돌아가시고 손자 정도나 있지 않겠느냐”며 “70년 이상을 너무 오래 떨어져 유전자 검사해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6.25 전쟁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과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현재 남한에 생존한 이산가족은 약 4만명이며 이들의 평균 연령은 83세에 달합니다.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시급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2002년 6.15 남북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그해 8월 처음 시작됐습니다. 당시 남측 가족 751명, 북측 가족 218명이 분단 이후 50년 만에 재회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까지 총 21회 진행됐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5년 가까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받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및 생존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 5월까지 상봉 신청자 중 사망자는 1만 5313명에 달했습니다.

‘이산가족의 날’은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정해졌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추석 전전날로 정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기획] “구십 평생 잊지 못해”… 전 국민 울린 ‘이산가족의 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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