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생존 이산가족 4만명, 평균 나이 83세 상봉 문제 시급
이산가족 상봉, 2018년까지 21회 진행 후 5년째 중단 상태
KBS ‘이산가족 찾기’ 138일간 생방송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지난 2014년 2월 20일 북한 강원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제19차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열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2년 8월 처음 시작된 이후 2018년 8월까지 총 21회 진행됐다. 현재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5년 가까이 중단된 상황이다. (출처: 뉴시스)
지난 2014년 2월 20일 북한 강원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제19차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열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2002년 8월 처음 시작된 이후 2018년 8월까지 총 21회 진행됐다. 현재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5년 가까이 중단된 상황이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추석 명절 저마다 귀성길에 오를 때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3.8선에 고향이 가로막힌 탈북민들이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부모, 형제, 배우자, 자식과 생이별해야 했던 이산가족의 수는 10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가슴 속에 남은 전쟁의 상흔은 세월이 흘러도 아물지 않았다.

70여년이 지난 지금 이산가족 1세대는 평균 80세 넘는 고령이 됐다.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숫자도 늘고 있다. 추석을 이틀 앞둔 27일 ‘제1회 이산가족의 날’을 맞아 이산가족의 한 맺힌 사연을 전해본다.

부산에 사는 이산가족 2세대 김성만(66)씨는 지난 23일 천지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북에 두고 온 여동생)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모는 모두 이북 출신이다. 1928년생인 김씨 아버지는 평안남도 강서군 쌍용면에 살았다. 6.25 전쟁 발발 후 인민군으로 징집돼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남한군에 손을 들었다. 그는 1953년 6월 18일 반공 포로 석방 때 풀려났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중에서 일상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 22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국편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으로, 국편 전자사료관 누리집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 사진은 폐허가 된 원산 (1950.11.08). (출처: 뉴시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맞아,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중에서 일상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를 선별해 22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국편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으로, 국편 전자사료관 누리집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 사진은 폐허가 된 원산 (1950.11.08). (출처: 뉴시스)

당시 반공 포로들은 다시 국군에 입대했다. 김씨 아버지는 군 제대 후 1.4 후퇴 때 북에서 피난 온 여성과 결혼했다. 김씨 어머니는 폭격으로 가루가 됐던 평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부산역에 가는 마지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김씨네 가족은 북에서 온 아버지 친구들과 서로 가족처럼 지냈다. 이들이 남쪽에서의 가족이자 친척이었다. 그러나 핏줄에 대한 그리움은 대신할 수 없었다. 김씨 아버지는 북에 두고 온 여동생들을 한평생 그리워했다.

김씨 아버지는 10여년 전 유명을 달리했다. 김씨 아버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아버지 친구분들은 북한에 있는 자식이나 형제 주려고 열심히 돈 벌어서 (재산) 다 만들어놓고 통일되기만 기다리다가 다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전쟁에서 총부림하던 세대가 죽고 난 뒤 다음세대에서야 통일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산가족 4만명 평균 83세

현재 남한에 생존한 이산가족은 약 4만명. 이들의 평균 연령은 83세에 달한다. 대부분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시급하다.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2002년 6.15 남북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그해 8월 처음 시작됐다. 당시 남측 가족 751명, 북측 가족 218명이 분단 이후 50년 만에 재회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2018년 8월까지 총 21회 진행됐으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5년 가까이 중단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받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및 생존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 5월까지 상봉 신청자 중 사망자는 1만 5313명에 달했다.

‘이산가족의 날’은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정해졌다.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추석 전전날로 정했다.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을 마치고 버스에 오른 북측 가족들이 남측 가족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8.09.01. (출처: 뉴시스)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마지막날인 26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 및 공동중식을 마치고 버스에 오른 북측 가족들이 남측 가족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8.09.01. (출처: 뉴시스)

◆남북이산가족찾기 절절한 사연

남북이산가족찾기 홈페이지에는 가슴 절절한 사연들이 올라와 있다. 김성덕씨는 7살 터울 동생을 찾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1950년 6월 25일 함경남도 단천 이죽면 문암리 나의 고향입니다. 어디 가냐고 따라 나와 칭얼대던 12살짜리 작은 내 동생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저는 국군을 지원하게 됐고 남에 내려와 자식과 손주까지 봤지만 지금 이날까지 단 한 순간도 동생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90년 동안이나 잊히지 않아 늘 그리워 눈물이 나 가슴이 막혀 숨이 안 쉬어집니다.’

강민아씨는 전쟁 중 홀로 마지막 배를 타고 내려온 아버지 강주황씨를 대신해 글을 올렸다.

‘아빠는 아직도 약주를 많이 하시면 음도 맞지 않는 음정으로 구슬픈 노래를 하시며 엄마 아빠를 찾으시며 눈물 흘리십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눈물 어린 모습 많이 봐왔는데. 아버지 살아계실 때 생사 확인이나 가능할까요. 꿈같은 이산가족 상봉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할아버지를 대신해 글을 올린 손자도 있었다.

‘저희 할아버지 황○○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평안북도 호하동 출신 할아버지께서 남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여동생을 흥남 지역에서 잃어버리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가 약주 하시면 항상 보고 싶다고 울부짖으시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하셔서 이렇게나마 적어봅니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1983년 일천만 이산가족찾기 한국방송공사 공개방송 모습. (출처: 연합뉴스)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1983년 일천만 이산가족찾기 한국방송공사 공개방송 모습. (출처: 연합뉴스)

◆전국을 눈물바다 만든 방송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을 알리는 가수 패티김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전국은 눈물바다가 됐다. 집마다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이산가족이 서로를 부둥켜안는 모습을 보며 함께 울었다.

이 방송은 당초 6.25 특집으로 하루만 기획됐었다. 그러나 수많은 이산가족이 구름떼처럼 몰리며 신청서가 10만 952건 접수됐다. KBS 본관과 여의도공원 일대에는 가족을 찾는다는 벽보로 뒤덮였다. 1983년 6월 30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11월 14일까지 138일간 이어졌다. 방송 시간은 총 453시간 45분. 이 기간 방송을 통해 1만 189건의 남한 내, 남한과 해외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은 우리나라 방송 사상 처음으로 기네스북에 ‘세계 최장 시간 생방송’으로 기록됐다. 생방송 비디오 녹화 원본 테이프 463개, 담당 프로듀서 업무수첩, 이산가족이 직접 작성한 신청서, 일일 방송진행표, 큐시트, 기념음반, 사진 등 기록물 2만 522건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국가기록원이 28일 공개한 1983년 일천만 이산가족찾기 한국방송공사 공개방송 모습. (출처: 연합뉴스)
국가기록원이 28일 공개한 1983년 일천만 이산가족찾기 한국방송공사 공개방송 모습. (출처: 연합뉴스)

당시 방송 중에는 특별한 사연도 소개됐다. 부산에 살던 이강훈씨는 6살 아들 이승진군이 엄마와 서울을 지나가다가 벽보에 붙은 아버지의 이름을 봤다. 이 덕분에 이씨는 30년 만에 형과 재회할 수 있었다.

이수경씨는 어릴 적 아버지 품 안에서 즐겨듣던 노래를 방송에서 불렀다. 이 노래를 듣고 사촌 언니와 친언니가 찾아와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메타버스로 더듬어보는 추억

길게는 70년 넘게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실향민과 이산가족에게 가상 세상으로나마 북녘 고향을 찾아갈 길이 열렸다. 국립통일교육원은 27일 제1회 이산가족의 날을 계기로 이산가족 고향 체험 메타버스 콘텐츠를 공개했다. 이산가족 3인의 고향마을을 3차원으로 재현한 것으로, 실향민의 추억, 분단과 전쟁, 이산의 아픔을 가상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다. 고향마을 메타버스 콘텐츠에는 ▲김병모씨의 1950년 진남포 고향 집, 누님 집, 진남포항 ▲김옥화씨의 1950년 평양 고향집, 대동문 나루터, 대동강 철교 ▲김정옥씨의 1935‧1945년 함흥 고향집, 1945년 영생여고 등이 재현됐다.

지난 2014년 2월 20일 오후 북한 강원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제19차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2014년 2월 20일 오후 북한 강원 고성 금강산 호텔에서 제19차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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