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된 덕수궁 돈덕전 ⓒ천지일보 2023.09.25.
재건된 덕수궁 돈덕전 ⓒ천지일보 2023.09.25.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덕이 있는 자를 후대하고 어진 자를 믿으며’. 이는 중국의 고대 문헌인 서경에 기록된 ‘돈덕(惇德)’의 뜻이다. 100여년전 대한제국 영빈관으로 지어진 돈덕전(惇德殿)은 이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대한제국은 진정한 자주독립과 교류를 통한 새로운 문명 창조를 이루고자 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시사점으로 남아있다. 이런 가운데 덕수궁 돈덕전이 새롭게 재건돼 26일 시민들을 맞이한다. 이에 재건된 돈덕전을 살펴보고 역사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1910~1917년 돈덕전 정면 사진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9.25.
1910~1917년 돈덕전 정면 사진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9.25.

◆대한제국 영빈관 덕수궁 돈덕전

25일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의 외관은 더욱 이국적이고 화려해 보였다. 개관을 하루 앞두고 있어 분주해보이기도 했다. 이날 오후 3시 1층 기획전시실에서 개관 기념식을 열고, 26일 오전 9시부터 시민들에게 정식 개관된다.

돈덕전은 제한대국의 서양식 영빈관이다.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예식에 맞춰 1902~1903년 대규모 국제행사장으로 지어졌다. 돈덕전은 대한제국이 원했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국제교류를 실현하고, 열강과 대등한 근대국가의 모습과 주권 수호의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설립됐다.

덕수궁 돈덕전 내부 ⓒ천지일보 2023.09.25.
덕수궁 돈덕전 내부 ⓒ천지일보 2023.09.25.

이는 돈덕전이라는 이름 속에도 담겨있다. ‘돈덕(惇德)’은 중국의 고대 문헌인 ‘서경’ 우서 순전 제16장 중의 “멀리 있는 자를 회유하고 가까이 있는 자를 길들이며, 덕이 있는 자를 후대하고 어진 자를 믿으며 간사한 자를 막으면, 사방의 오랑캐들이 복종할 것이다(柔遠能邇 惇德允元 而難任人 蠻夷率服)”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덕이 있는 자’는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야 할 세계의 여러 국가를 가리킨다. 이들을 후대하는 장소가 바로 돈덕전이다.

외관 상 건축물은 매우 화려하다. 이는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한 건축양식으로 세워졌다. 황제는 이곳에서 외교사절단을 접견하고, 연회를 베풀었다. 국빈급 외국인 숙소로도 사용됐다. 이 같은 돈덕전은 1921~1926년 일제에 의해 훼철됐다. 1930년대에는 건물터가 아동유원지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1945년 이후에는 덕수궁관리소 등의 용도로 가건물이 지어졌다가 발굴조사와 복원 작업을 위해 철거됐다.

문화재청의 덕수궁 복원정비사업은 2015년부터 덕수궁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역사문화자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덕수궁 복원정비사업을 추진했다. 돈덕전은 2017년에 발굴조사, 2018년에 설계를 마쳤고 2019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12월 준공했다. 전시를 위한 자료조사와 공간설계는 건축공사 중인 지난해 7월부터 시작했으며 전시물 제작·설치 및 인테리어를 올해 9월 24일까지 마무리했다.

전시관 내부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9.25.
전시관 내부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9.25.

◆전시와 아카이브 공간 마련

새롭게 개관하는 돈덕전은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공간이었던 역사성을 고려하고, 현대에 맞는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의 전시와 기록보관(아카이브), 도서 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공간으로 꾸며졌다.

돈덕전 1층은 고종의 칭경예식 등 당시 대한제국의 모습을 담은 상설전시실Ⅰ(대한제국 영상실)과 다양한 기획전시와 국제행사가 가능한 기획전시실로 구성된다. 2층에는 한국 근대 외교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상설전시실Ⅱ(대한제국의 외교)와 20세기 초 서양의 살롱을 동기(모티브)로 하여 가구와 조명등을 배치했다.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9.25.
서울 진관사 태극기(보물)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3.09.25.

특히 전시실에서는 외교의 중요한 사건뿐만 아니라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마지막 주영공사 이한응 등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대한제국의 주권과 자주 외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외교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서화가이자 초대 주미공사관원인 강진희(1851~1919)가 1883년 미국에서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두 대의 기차를 그린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화차분별도(火車分別圖)’도 전시됐다. 많은 사람과 물자를 싣고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는 기차는 근대화의 기반이자 상징 으로 여겨졌다. 이 그림은 당시 선진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려던 조선정부의 의지와 이를 실현시키려는 주미 조선 외교관들의 노력을 압축해 보여준다. 

대한불교조계종 진관사 소장 유물로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해 그려 넣은 ‘서울 진관사태극기(보물)’도 만날 수 있다. 이 태극기는 우리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서,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거점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덕수궁관리소 박상규 학예연구사는 “돈덕전의 재건은 역사공간의 완성을 의미한다”며 “단순히 건물이 제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담긴 역사 공간의 퍼즐이 끼워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돈덕전은 과거 역사의 복원인 동시에 미래 문화교류 공공외교의 창”이라고 덧붙였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88년) (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천지일보 2023.09.25.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88년) (제공: 국립고궁박물관) ⓒ천지일보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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