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지서 지방선거 이어
‘통일의 날’ 기념일 지정 추진
친러-친우크라 주민 갈등 잦아
내부결속·대외홍보 ‘이중 포석’

천지일보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공문. 이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러시아와 점령지를 대상으로 ‘통일의 날’을 제정하기 위한 안을 국가두마(State Duma, 러 하원)에 제출했다. ⓒ천지일보 2023.09.25.
천지일보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공문. 이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러시아와 점령지를 대상으로 ‘통일의 날’을 제정하기 위한 안을 국가두마(State Duma, 러 하원)에 제출했다. ⓒ천지일보 2023.09.25.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20%에 육박하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장악한 러시아가 해당 점령지에서 지방선거를 감행한 데 이어 ‘통일의 날’ 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6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러시아 정부 공문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러시아와 점령지를 대상으로 ‘통일의 날’을 제정하기 위한 안을 국가두마(State Duma, 러 하원)에 제출했다.

이 안건은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기반이자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United Russia)이 하원뿐 아니라 연방평의회(상원), 시장·주지사 등 대부분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의 날 대상 지역은 러 당국이 러시아에 편입됐다고 주장하는 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 지역이 포함됐다. 러시아는 이 지역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루한스크 인민공화국(LPR) 등으로 부르고 있다.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의 지역은 친러 성향의 주민들이 많아 연방제 도입,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폭동이나 시위가 일어나는 등 친 우크라이나 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푸틴 대통령이 적어놓은 ‘통일의 날’ 시행날짜는 9월 30일이다.

이에 당장 오는 30일 점령지를 대상으로 ‘통일의 날’을 지정함으로써 내부결속을 도모하고, 점령지가 자국 영토라는 것을 대내외에 알리는 이중 포석을 깔았다는 평가다.

러시아는 8~10일 실시한 전국 지방선거에서 우크라이나 4개 합병지역에서 러시아 여당 '통합러시아당'이 압승했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9월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자주, 헤르손주)의 러시아 측 수장들과 합병 조약을 체결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2023.09.25.
러시아는 8~10일 실시한 전국 지방선거에서 우크라이나 4개 합병지역에서 러시아 여당 '통합러시아당'이 압승했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9월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 자포리자주, 헤르손주)의 러시아 측 수장들과 합병 조약을 체결한 뒤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2023.09.25.

입수한 문건은 푸틴 대통령 이름으로 ‘러시아 군사적 영광과 기념일’에 관해 연방법 제11조를 개정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지난 1995년 3월 13일 제정된 이 법은 러시아의 군사적 영광과 기념일의 날 도입에 관한 내용 등을 규정해 놨다.

기존대로라면 ‘군사적 영광과 기념일’ 대상 지역은 러시아 연방인 21개 공화국과 6개 연방 직할구, 2개 연방 직할시(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49개주, 1개 자치주, 10개 자치구 등 총 89개의 구성 주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기존 러시아 연방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까지 추가시켰다.

◆러, 4개 병합지서 첫 지방선거

이들 점령지역은 최근 러시아 정부가 처음으로 지방선거를 치른 곳이기도 하다. 러 매체 스푸트니크, 리아노보스티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점령지를 포함해 20개가 넘는 지역에서 주지사 등 수장을 선출하는 지방선거를 벌였다. 점령지에서 선거를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에서는 예상대로 러시아 여당 통합러시아당이 모두 압승을 거뒀다.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헤르손 지역은 투표율 65.36%에서 통합러시아당이 74.86%의 표를 얻는 등 모두 70%에서 8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10일 도네츠크의 러시아 지방선거 후 개표 작업. (AP.연합뉴스) 2023.09.25.
10일 도네츠크의 러시아 지방선거 후 개표 작업. (AP.연합뉴스) 2023.09.25.

헤르손 지역 선거에는 네덜란드, 인도, 브라질, 스페인, 아이슬란드, 모잠비크 등 선거 관련 국제전문가들이 참석시켜 선거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마리나 자하로바 헤르손 지역 선관위원장은 “통합러시아당이 압승해 지방의회 의석 36석 중 28석을 차지했다”면서 “선거에 대한 불만 사항은 접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선거를 가짜 선거로 규정하고, 결과가 어떻든 ‘무효’라는 입장이다. 우크라 외무부는 “이번 선거는 국제법을 위반한 가짜 선거”라면서 국민에게 선거에 참여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쟁 전에도 러시아와 가까운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의 지역은 친러 성향의 주민들이 많아 연방제 도입,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폭동이나 시위가 일어나는 등 친 우크라 측과 갈등을 빚어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번 선거가 치러지는 동안에도 투표소 곳곳에서 친 우크라로 추정되는 세력의 공격이 보고됐고, 일부 투표소에선 수류탄이 발견되기도 했다.

[헤르손=AP/뉴시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을 완전히 장악한 러시아가 '위장' 주민투표를 시행해 이 지역을 '헤르손 인민공화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월 7일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의 점령에 반대하며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2.04.28.
[헤르손=AP/뉴시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을 완전히 장악한 러시아가 '위장' 주민투표를 시행해 이 지역을 '헤르손 인민공화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월 7일 헤르손 주민들이 러시아의 점령에 반대하며 러시아 군인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는 모습. 2022.04.28.

이곳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간 내전인 돈바스 전쟁을 중단하기 위한 ‘민스크 협정’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민스크 협정은 지난 2014년 9월과 2015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도네츠크·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사이에 서명한 돈바스 전쟁의 정전 협정을 말한다.

57개국에 달하는 나라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유럽 최대 안보협의체인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중재 아래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 서명됐다. 그러나 이 협정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교전이 이어지면서 지난 2021년 한 해에만 79명 이상의 우크라이나군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영토. (뉴시스) 2023.09.25.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우크라이나 영토. (뉴시스) 2023.09.25.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이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영토로 편입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주민들이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영토로 편입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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