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아프간 여성 탄압 악화
히잡 안 쓰면 징역 10년 法
샤리아 통치 사우디는 달라

2022년 8월 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의 누르 모스크에서 소녀들이 코란을 읽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2년 8월 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의 누르 모스크에서 소녀들이 코란을 읽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내가 받고 싶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원하는 일에 취업의 기회조차 없다고 생각해보자. 국립공원도 갈 수 없고 의료 서비스에도 제한이 있으며 혼자 밖에 나갈 수도 없는데 이를 어기면 징역형을 살 수 있다. 당신이 ‘여성’이라면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 같지만 지금도 세계 한 편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에서는 ‘신의 이름으로’ 여성의 기본권이 점점 빠르게 박탈되는 양상이다.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한 지 2년, 이란에서 히잡 사이로 머리카락이 보여 경찰에 끌려간 마흐사 아미니가 숨진 지 1년째 양국 여성의 인권은 악화일로다. 

국제사회의 압박과 제재에도 두 나라는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들어 여성들의 숨통 끊기에 여념이 없다. 그렇다면 샤리아가 문제일까. 그런데 같은 샤리아로 통치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스탄불=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이란 영사관 밖에서 이란 여성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2022.10.18.
[이스탄불=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이란 영사관 밖에서 이란 여성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에 항의하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2022.10.18.

◆반정부 시위 1년, 더 가혹해진 이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는 지난 18일부터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총회 전부터 뉴욕 유엔본부 인근에서는 이란 정부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또 지난 19일에는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가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연설 중에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 대사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아 경찰에 잡혔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과 “이란 여성에게 당장 자유가 마땅하다”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연단에 섰다.

작년 9월 아미니가 숨진 이후 이란에서는 여성 기본권을 외치는 반정부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당시 세계는 억압적인 사회의 수면 아래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정부 수립 이래 최대 규모로 평가받는 시위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시위를 잔인하게 짓밟은 이란의 지도자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최근에는 시위를 막기 위해 사회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 국제적 책임의 한계도 부각됐다.

아미니의 사망과 반정부 시위 이후 이란 정부는 더 가혹한 탄압에 나섰다.

최근 이란 당국은 아미니 공식 부검 결과 경찰의 구타가 아닌 기저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아미니의 입원과 사망 소식을 전했던 두 명의 여성 기자는 반역죄로 수감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아미니 사망 1주기를 앞두고 다시 추모 시위가 열리자 당국은 시위대를 체포했다.

특히 아미니 사망 1주기 후 나흘 만인 지난 20일(현지시간) 이란 의회는 ‘히잡과 순결 법안’을 가결 처리했다. 이슬람 율법에 따른 복장 규정을 어기는 사람에게 최대 10년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의 법이다. 또 히잡 착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업주는 사업 수익의 3개월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어야 하며 최대 2년간 출국금지, 공공장소 및 온라인 활동 참여 금지를 당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이번 ‘히잡 법안’이 작년 시위에 대한 대응이라고 평가했다.

런던의 국제 문제 싱크 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박사는 이번 법안을 두고 CNN에 “여성에게 요구되는 규범과 히잡에 대한 권위를 재확인하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이란 인권 변호사 호세인 라에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사진을 SNS에 올린 여성 직원의 회사가 문을 닫는 등 당국이 법 초안에 포함된 일부 조치를 불법적으로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AP/뉴시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코란에 입 맞추고 있다. 2023.09.20.
[뉴욕=AP/뉴시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면서 코란에 입 맞추고 있다. 2023.09.20.

◆탈레반 女 억압 법 94개 제정

히잡 착용에 대한 집착은 아프간도 만만치 않다. 지난 8월 탈레반 정권은 한 국립공원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을 지적하며 여성들의 국립공원 출입을 금지했다. 2021년 8월 30일 미군이 아프간에서 최종적으로 철수한 지 2년째의 일이다.

지금 아프간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 교육에 제한을 두고 있는 국가다. 유엔아동기구는 탈레반이 점령하기 전에도 시설 부족 등의 이유로 500만명이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2년 전 탈레반이 초등학교 6학년 이상 여학생의 교육을 금지한 이후 여학생 100만명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아프간 여성과 아동의 권리는 이번 유엔총회 의제 중 하나였다. 지난 19일 유엔총회에서 전 아프간 외교관은 탈레반 정권이 여성의 일상을 제한하는 94개 이상의 칙령과 법령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의 이런 법령은 역시 샤리아에 근거한다.

지역 전문가 하산 압바스는 지난 18일 AP통신에 여아 교육에 대한 그들의 관점은 부분적으로는 19세기 이슬람 사상의 특정 학파에, 일부는 부족주의가 고착화된 시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했다. 즉 샤리아를 앞세우면서도 탈레반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가져와 법을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탈레반이 이슬람 율법을 들어 여성 인권을 퇴보시키는 데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와르닥 전 외교관은 “그들(탈레반)이 이슬람을 대표하는 방식은 이 지역과 이슬람 공동체에도 매우 위험하다”며 “다른 이슬람 국가에도 극단주의자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탈레반이 하는 일을 모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전 세계에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있으며 세계 안보에도 큰 위협”이고 덧붙였다.

하비바 사라비 전 아프간 여성장관도 “탈레반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우리를 수백년 뒤로 밀어내려고 한다”며 “그들이 하는 일이 이슬람의 진정한 가치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압바스는 “아프간 밖의 성직자들 사이에서는 이슬람이 여성과 남성 교육을 동등하게 강조한다는 데 공감대 형성이 돼 있다”며 “탈레반은 그 반대의 주장을 할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인도주의 구호 단체가 배급한 식량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5월 23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여성들이 인도주의 구호 단체가 배급한 식량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사우디는 반대… “영향 줄 수 있어”

샤리아에 기반한 법률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두 국가와 점점 대조적인 선택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미국과 사우디 관계자에 따르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많은 사회적 권리와 자유가 박탈됐던 사우디의 여성 고용률은 37%까지 급증했다고 미국의소리(VOA)는 최근 전했다. 마이클 래트니 주 사우디 미국 대사는 지난 7월에 열린 한 행사에서 “사우디의 기술 분야 인력의 3분의 1은 여성인데, 이는 실리콘밸리보다 높은 수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VOA에 따르면 사우디에서는 최근 기술 산업을 넘어 정부 및 민간 기업에서 여성들이 전례 없는 속도로 직위를 확보하고 스타트업을 주도하는 등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또한 15~24세 사우디 젊은 여성들의 문해력이 99%에 달해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5월에는 우주비행사 레이야나 바르나위가 역사상 최초의 아랍 여성으로 우주여행에 성공했다.

심지어는 금기시됐던 여성의 장관, 왕실 진출도 가능성이 점쳐진다. 아랍 걸프 국가 연구소의 수산 사이칼리 연구원은 “이미 여러 명의 여성이 고위직에 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사우디 정부는 이전에 특정 분야에서 여성의 취업 능력을 제한하던 여러 법률을 폐지하고 여러 차별 금지 및 괴롭힘 방지법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가 이란과 아프간 같은 국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케이프커내버럴=AP/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레이야나 바르나위가 21일(현지시각)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환송 나온 가족·친구들과 인사하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원 바르나위를 포함한 4명의 우주인이 탑승한 '크루 드래건'이 이날 스페이스X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이들은 열흘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며 과학 실험을 한 후 귀환한다. 2023.05.22.
[케이프커내버럴=AP/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우주인 레이야나 바르나위가 21일(현지시각)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환송 나온 가족·친구들과 인사하고 있다. 줄기세포 연구원 바르나위를 포함한 4명의 우주인이 탑승한 '크루 드래건'이 이날 스페이스X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이들은 열흘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며 과학 실험을 한 후 귀환한다. 2023.05.22.

모두 샤리아로 국가를 통치하고 있다고는 하나, 국가마다 그 체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라비 전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와 같은 걸프만 군주국들이 탈레반에 대한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이 커서 탈레반이 여성에 대한 가혹한 정책을 완화하도록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 인권 억압이 세질수록 내부에서도 더 큰 봉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이란의 건축가인 사라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 운동(반정부 시위)의 가장 큰 승리는 모든 패배와 손실에도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 내부에서도 국제적 고립과 경제 악화에 따른 내부 분열 등이 예상된다.

압바스는 “1990년대 탈레반 통치 시절보다 오늘날 여론이 훨씬 더 관련성이 높고 영향력이 있다”며 “평범한 아프간인들의 내부 반발이 결국 정권으로 구석으로 몰아넣고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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