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 후보자 주장에 촉발
9.19군사합의 존폐기로 평가도
여권 등, 기지회견서 폐기 촉구
정부 “우리만 지키는 건 안 돼”
정권 정체성‧내년 총선용 관측
文정부 당국자, 폐기 주장 비판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 평화의 힘 평화의 길’ 기념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23.09.1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 평화의 힘 평화의 길’ 기념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지일보 2023.09.19.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9.19 평양공동선언이 5주년을 맞았지만 남북 관계는 되려 경색을 넘어 단절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최후의 안전핀’으로 작동했던 9.19 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권의 힘에 의한 평화라는 강대강 기조와 맞물린 처사인데, 최근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9.19 군사합의 폐기론이 빈번하게 거론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정부‧여당이 가세해 여론몰이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국방장관 후보자, 9.19합의 파기 주장

9.19 남북 군사합의는 지난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 합의서로, 지상과 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군비통제협정이다.

남북 간 군사 긴장 완화 등이 핵심인데, 실제로 남북은 2018년 11월 1일 새벽 0시를 기해 군사분계선(MDL) 일대와 서해 NLL(북방한계선) 주변 (해안) 포사격과 (해상) 기동훈련 등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했다.

2022년도 국방백서를 보면 2010년부터 2017년 사이 북한의 국지도발은 총 237건이나 됐지만 9.19 군사합의 이후에는 2018년 0건, 2019년 0건, 2020년 1건, 2021년 0건, 2022년 1건 등이었다.

9.19 군사합의 이후 접경지역에서 군사 충돌이 확연히 줄은 것이다. 다만 군사합의 체결 이후 지난해 말까지 북한이 명시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사례도 17건에 달해 9.19 군사합의에 대한 폐기 논란도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울릉도 방향으로 미사일을 쏜 것이나 올해 1월 북한 무인기가 군사분계선을 남하하는 일 등을 말한 것인데, 윤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 남하 당시 다시 영토를 침범한다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 여부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통일부가 법률 검토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지난 15일 극우 인사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군사합의 폐기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장관으로 임명될 것이 확실해 9.19 군사합의가 존폐 기로에 선 게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는데, 현행 남북관계발전법 23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尹정부‧여권 9.19합의 폐기 꺼내든 배경은

윤 정부와 여권도 9.19 군사합의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고 특히 여권은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 등의 보수 단체를 대동해 여론몰이에 나선 상황이다. 9.19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를 폐기하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기호 의원(국회 국방위원장)과 이들 단체는 전날(19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촉구했다.

또 “문재인 정부 5년간 가짜 평화에 매달리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시간만을 벌어준 셈”이라며 “더 이상 군사합의로 대한민국의 국방과 안보가 붕괴되는 참담한 현실을 좌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9.19 군사합의 ‘무용론’과 함께 우리 군의 방어력만을 실추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윤 정부 당국자도 9.19 군사합의 폐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남북 간 합의는 상호 존중하면서 지켜져야 한다”며 “우리만 일방적으로 지키고 북한은 안 지키는 합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향후 한반도 정세를 주시하며 적절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최근 9.19 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수 세력을 통해 자주 제기되는 배경을 두고 내년 총선용 안보장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종 논란으로 코너에 몰려 있는 윤 정부가 접경지역의 국지도발 가능성을 유발하는 등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며 보수 세력 결집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들이 의도적으로 폐기, 파기라는 강한 표현을 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정권 자체의 정체성이라는 풀이도 있다. 가치 외교란 걸 내세워 미일에 밀착하고 중러와는 적대관계로 돌리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란 건데, 더욱 가관인 건 주한 러시아 대사 초치 문제다. 북러 정상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알려지지 않은 현실에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 가지고 러시아 대사를 불러 항의를 했다는 것인데 외교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 전 대통령 “최후의 안전핀”

실제 9.19 군사합의 파기 시 남북 간 군사충돌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핀이 사라지는 만큼 ‘한반도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5도 접경수역 등이 다시 군사적 긴장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0년 연평도포격사건과 1999년·2002년 연평해전과 같은 군사 충돌이 발생해도 서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게 된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군불 때기로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일자 당시 군사합의를 만든 문재인 정부 당국자들이 일제히 반박에 나선 건 이 때문이다. 이들 당국자들은 전날 서울 영등포구 63빌딩에서 열린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토론회 ‘평화의 힘, 평화의 길’에 참석해 “이 합의 때문에 5년 동안 북한과 충돌이 거의 없었다”면서 “평화를 위한 노력을 비판하는 것은 무모한 행위”라고 질타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됐는데, 이들 당국자들은 “이명박 정부 기간 비무장지대 국지도발 횟수가 228회, 박근혜 정부 기간 108회였던 것이 우리 정부에는 기록상 5회 정도”라고 일일이 열거했다. 9.19 군사합의서로 인해 접경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데 큰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같은날 문재인 전 대통령도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9.19 군사합의는 ‘최후의 안전핀’이라며 폐기론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평화는 경제라며 진보 정부의 안보와 경제 성적이 보수 정부보다 좋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퇴임 이후 찾은 첫 공식 행사로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을 택한 문 전 대통령은 이날 9.19 평양공동선언의 가장 중요한 성과로 남북 군사합의를 꼽고는 남북 간에 사상 최초로 체결된 구체적인 군비통제 합의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군사합의 덕에 문재인 정부 동안 남북 간 단 한 건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희생된 사람도 없었다”며 “남북 군사합의를 폐기한다는 것은 최후의 안전핀을 제거하는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고 일침했다. 최근 9.19 군사합의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한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