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거리 두면 北에 가까워져
균형-가치외교 추구 필요 대두
러-우크라 전쟁 부추겨선 안돼
편향시각·이중잣대 경계해야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천지일보 2022.5.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역임한 러시아 전문가인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천지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있다. ⓒ천지일보 2022.5.3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북러가 뭉쳐 난리가 났다는 식의 입장에 따라가기보다는 러시아를 자극하고 척을 져서 돌아올 게 무엇인지, 외교적으로 잃고 얻는 게 무엇인지 잘 따져 움직여야 합니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년여 만에 북한을 벗어나 러시아 본토를 방문, 서방에서 우려하는 ‘위험한 거래’ 저의를 노골화하고 있는 가운데, 전 주러시아 공사였던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이 20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균형외교’를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김 위원장이 ‘러 우주개발의 심장’으로 불리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찾은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우주개발에 위성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김 위원장은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서방은 이를 단순한 위성협력이 아닌 군사협력이자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에서 러시아 전쟁에 대해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군을 향할 살상 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해 러시아에 지원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발발한 지 1년 반을 넘어선 러-우크라 전쟁은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중러가 연대하는 전체주의 진영 간 대립으로 번졌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다. 그러나 피 튀기는 전쟁의 출구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본지는 주러시아 공사,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등을 지낸 러시아 전문가 박 소장에게 이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들어봤다.

다음은 박 소장과 일문일답.

-북러가 광범위한 군사협력 체계를 구축할 거란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보는지.

미국과 서방은 견제하는 차원에서 우려를 쏟아내고 있지만, 우리는 사안을 (북한과 인접한) 당사자라는 입장으로 이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 장비와 인공위성 등 둘러보고 싶은 게 많았던 것으로 보이나 아직 크게 드러난 건 없다. 북한의 인공위성을 러시아 로켓으로 발사하는 것 등에 대해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정도다.

군사협력에 대해선 예의주시하되 좀 더 두고 봐야 하겠다. 유엔 안보리 제재에 대한 부분도 따져봐야 한다. 러시아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제3국에서 러시아와 뭔가를 하면 다 안 된다는 식의 접근은 지양하면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봐야 된다. 한미일이 만나 공조를 강화하고 우크라이나에 포탄 등 각종 지원을 하는데 러 입장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여론은.

현재 우크라이나 반격이 기대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면서 전쟁을 끝내자는 목소리와 함께 지원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그간 130억 달러(약 17조원)가 넘는 경제적 지원을 우크라이나에 퍼다 준 것에 대해 국민들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할 돈이라며 반발 목소리가 제기된다. 체코 등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등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론을 누르기 위한 수단으로 북러가 뭉쳐 난리가 났다는 식의 입장보다는 러시아를 자극하고 척을 져서 돌아올 게 무엇인지 외교적으로 잃고 얻는 게 무엇인지 잘 따져야 한다. 현재 푸틴 대통령은 전쟁 당사국으로 수렁에 빠져 있기에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국 중재안 등도 회의적이다.

-최근 진영대결이 심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리나라 외교에 대한 평가는.

한국의 국익이 미국의 국익하고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서방에서도 가까워 보이는 미국과 영국의 국익마저 일치할 수 없다. 미국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와 미국 간 간극이 있는 건 당연한 건데,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일부 시각이 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위험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돼선 안 된다. 우크라이나의 처참한 비극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 내에선 절대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긴다고 하더라도 참상이 빚어진 6.25 전쟁의 뼈아픈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전을 통해 러시아 힘을 빼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 등 미국의 액션이 타국 문제를 놓고 이해타산 따져 하는 외교적 행동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진영을 놓고 보면 최전방에 있는 형국이다. 강대국에 휘둘리다가는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해도 손해 볼 게 없다. 하지만 위험한 북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는 입장이 다르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불똥이 우방국으로 튀었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고 매우 분주히 움직였다고 본다.

- 그에 대한 파장과 향후 외교적 대처는.

이는 북한 문제에도 파장을 준다. 중러가 북한을 놓고 경쟁하듯 움직이면서 북한이 호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도 계속 유지하고 발전시켜 이들이 북한에 기울지 않도록 해야 한다. 러시아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가 신호를 주고 있을 때 대러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간다는 말만 하지 말고 대러 외교를 치열하게 해야 한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전 평화협정과 종전을 거부했던 쪽이 그 뒤에 있던 강대국들이다. 전쟁이 한 달도 안 돼 끝날 수 있었는데 사실상 거부한 게 누군지를 제대로 봐야 한다. 러시아군을 한 명이라도 더 없애라고 버젓이 얘기하는데, 반대로 우크라이나군도 목숨을 잃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자유·인권·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구호 아래 편향된 시각이나 이중잣대는 경계해야 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일(현지시간)로 555일째를 맞았다. 18개월을 540일로 보면 벌써 1년 반이 지난 셈이다. 전쟁이 나라 간 대결을 넘어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이 연대하는 전체주의 진영 간 대립으로 번졌다는 비판 속에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3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일(현지시간)로 555일째를 맞았다. 18개월을 540일로 보면 벌써 1년 반이 지난 셈이다. 전쟁이 나라 간 대결을 넘어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이 연대하는 전체주의 진영 간 대립으로 번졌다는 비판 속에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지만, 그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31.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열린 시위에서 포로로 잡힌 한 군인의 아들이 '아버지를 풀어주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 시위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마리우폴 도시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지 500일을 맞아 열렸다. (AP/연합뉴스) 2023.08.28.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열린 시위에서 포로로 잡힌 한 군인의 아들이 '아버지를 풀어주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 시위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마리우폴 도시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포로로 잡힌 지 500일을 맞아 열렸다. (AP/연합뉴스) 2023.08.28.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아이를 안은 한 여성이 러시아 공습으로 파괴된 아파트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이날 러시아군이 키이우, 드니프로, 폴타바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해 최소 8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아이를 안은 한 여성이 러시아 공습으로 파괴된 아파트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이날 러시아군이 키이우, 드니프로, 폴타바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해 최소 8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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