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일제강점기 ‘설립’
한민족 문화예술 수호한 곳
일제의 영화 검열 흔적 보존

“지켜야할 우리 시대 보물”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지역 문화사랑방 역할 톡톡

2020년 광주극장 전면 모습.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2020년 광주극장 전면 모습.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지역탐방] 광주극장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극장에서 관람하는 한 편의 ‘예술영화’는 잔상이 오래 남는다. 때로는 영화 속 용감하고 잘생긴 주인공을 이상형으로 간직했던 달콤한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예향’의 도시 광주에는 이러한 기억을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있다. 1933년 일제강점기에 설립, 올해 88년 된 ‘광주극장’이다.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단관극장은 스크린이 하나인 옛날식 영화관이다. 낡은 극장 외벽에 부착된 다양한 영화 포스터가 마치 야외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빨간 바탕에 하얀색으로 써진 ‘1933 SINCE, 광주극장’ 간판에서부터 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건물에서 풍기는 위풍당당함은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현실을 견뎌낸 흔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빨간 바탕에 하얀색으로 써진 ‘1933 SINCE, 광주극장’ 간판.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빨간 바탕에 하얀색으로 써진 ‘1933 SINCE, 광주극장’ 간판. ⓒ천지일보 2023.09.18.

본지가 최근 찾은 광주극장은 1930년대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단단해 보였다.

매표소를 지나 로비에 들어서자 은은한 커피향기와 함께 영화포스터가 예술·역사가 어우러진 곳임을 짐작하게 했다. 상영관 내부는 ‘멀티플렉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훈훈함이 전해졌다. 광주극장은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856석이다.

3층에서는 1940~1970년대 극장 사진 및 풍경 전시, 1970년대 초 포스터 전시, 간판실, 영화의 집, 광주극장 아카이브, 광주극장 옆 테마 골목 조성 ‘영화가 흐르는 골목’을 만나볼 수 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1층 영화관 입구에 전시된 김희정 감독 작품 ‘어디로 가고 싶은신가요’ 영화 포스터.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1층 영화관 입구에 전시된 김희정 감독 작품 ‘어디로 가고 싶은신가요’ 영화 포스터. ⓒ천지일보 2023.09.18.

◆1935년 10월 1일 개관

광주극장은 1935년 10월 1일 개관했다. 이후 폐쇄 위기를 극복하고 뿌리를 내리면서 광주의 역사와 영화 예술, 공연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광주극장은 1935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사업가 최선진씨가 개관한 단관극장이다. 최씨는 자신이 고생해서 번 돈을 아낌없이 극장 사업에 투자했다. 당시 충장로 파출소 인근에 광주 읍성이 있었는데 일본은 성문을 중심으로 조선 사람들을 지배했다.

2020년 10월 광주극장 개관 85주년 영화제에 참여한 예술인과 시민들이 개막 손 간판을 향해 극장 운영이 지속되길 소원하느 퍼포몬스를 하고 있다.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2020년 10월 광주극장 개관 85주년 영화제에 참여한 예술인과 시민들이 개막 손 간판을 향해 극장 운영이 지속되길 소원하느 퍼포몬스를 하고 있다.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성문 안쪽은 일본인들이 상권을 차지했다. 모든 문화행정 기반시설들이 일본인을 중심으로 성문 안에 집결돼 광주극장도 읍성 안에 세우는 건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읍성 밖 지금의 충장로 5가에 자리를 잡게 됐다.

개관 당시 1000석이 넘었으나 1968년 1월 화재로 인해 극장이 전소돼 같은 해 10월 재축됐으며 856석의 현재 모습을 갖추고 있다. 건물 자체도 모던한 건축양식으로 요즘 말로 ‘랜드마크’였다.

현재는 고층 건물이 많아서 광주극장이 좀 왜소해 보이지만 1930년대 당시에는 사람들이 극장 구경을 많이 왔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일본경찰이 검열했던 임검석(臨檢席)도 보존돼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으로 독립·예술영화 상영관 광주극장 출입문.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으로 독립·예술영화 상영관 광주극장 출입문. ⓒ천지일보 2023.09.18.

◆극장 역사 체험 교육 공간

광주극장 1층에서 만난 김형수 전무이사는 “당시 호남지역 유일 조선 자본으로 세워진 극장으로 우리 민족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영화는 물론 창극, 악극, 판소리 같은 공연예술도 무대에 올렸고 강연이나 야학을 위한 집회공간으로도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항일 정신을 드높이고 교육 계몽운동에도 기여했다”며 “광주극장은 대한민국 영화산업의 발전을 위해 황무지였던 예술영화 시장에 뛰어들었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현재 문화 다양성이 사라진 극장가에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전용관의 길을 선택해 문화예술 지킴이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1935년 당시 광주극장 모습.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1935년 당시 광주극장 모습.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특히 개관 후 1960년대까지 영화, 연극, 판소리, 국극, 발표회, 리사이틀 등 다양한 공연물과 회합, 강좌 개최로 지역공동체의 역할을 했다.

격변의 1970~1980년대에도 영화를 통해 시민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제공했다. 대기업의 자본이 영화산업을 잠식하기 시작한 1990~2000년대에도 극장의 정체성을 지키며 상업영화관에서는 만날 수 없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예술영화와 거장들의 회고전, 감독, 배우와의 만남을 지속해서 개최해 시민들의 삶 속에 문화적 자양분을 한 층 높이는 역할을 해왔다.

광주극장은 현재 극장의 원형을 유지하며 영화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이자 시민들의 문화공간인 동시에 광주의 극장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건물 외관에 부착된 영화포스터가 이곳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건물 외관에 부착된 영화포스터가 이곳이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보존 가치 높은 광주의 ‘보물’

광주극장은 일제의 검열 속에서도 한민족의 문화예술을 수호해 온 역사적인 장소다.

많은 향토극장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도 오랜 시간 광주시민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영화인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온 역사적 장소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지역의 여론이다.

지자체에서도 광주극장 지정 기부제를 통해 경영난을 지원하고 나섰다. 최근 영화 ‘프랑스 여자’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만든 김희정 영화감독은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 릴레이 응원에 참여했다. 지난 8월에는 제주 출신 전시기획자 김해다씨가 동구청에 ‘광주극장 100년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500만원의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1957 영화 산유화 배우 스텝진이 광주극장에서 기념촬영 모습.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1957 영화 산유화 배우 스텝진이 광주극장에서 기념촬영 모습. (제공: 광주극장) ⓒ천지일보 2023.09.18.

이외에도 다양한 계층의 예술인과 시민들이 광주극장을 후원하고 있다. 특히 2021년 10월 그림책 ‘나와 광주극장’을 펴낸 정애화 작가는 “남은 생을 계속 광주극장 ‘덕후’로 살고 싶다”며 자신을 광주극장 홍보대사로 자처했다.

정 작가는 “856석에 비해 영화 보는 사람이 적어 원하는 좌석에 가서 앉아도 되는 편리함도 있다”며 “150만명의 광주시민 가운데 2000명만 모여도 좋겠다”고 자신의 저서에 남기기도 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김형수 전무이사가 극장 이용을 문의하는 관람객에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김형수 전무이사가 극장 이용을 문의하는 관람객에 설명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광주극장 측은 지금도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소개하고자 힘쓰고 있다. 더불어 시민들의 손으로 직접 영화 포스터를 그리는 ‘간판학교’와 커뮤니티 공간인 ‘영화의 집’ 등을 운영하며 영화 애호가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개인, 단체와 협업해 시대의 다양한 담론을 펼쳐 보이는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김형수 전무이사는 광주극장이 끝까지 문을 닫지 않는 이유에 대해 관람객의 진심 어린 애정을 꼽았다. 한 세기를 품은 광주극장을 사랑하는 예술가들은 “반드시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우리 시대의 보물”이라고 광주극장이 품은 역사적 가치를 예찬하고 있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광주극장 1층 문에 임검석(臨檢席)이라고 써져 있다.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일본경찰이 검열한 자리를 아직도 보존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인 광주극장 1층 문에 임검석(臨檢席)이라고 써져 있다. 공연이나 영화 상영을 일본경찰이 검열한 자리를 아직도 보존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광주극장’을 예찬한 정애와 작가의 그림책.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광주극장’을 예찬한 정애와 작가의 그림책.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내부 1층 벽면에 정기후원 회원모집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내부 1층 벽면에 정기후원 회원모집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1층에 전시된 영화 ‘어느 멋진 아침’ 포스터.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1층에 전시된 영화 ‘어느 멋진 아침’ 포스터.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주변 영화가 흐르는 골목 입구. ⓒ천지일보 2023.09.18.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극장 주변 영화가 흐르는 골목 입구. ⓒ천지일보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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