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관아 복원 이론적 토대 마련

전북 정읍시가 15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고부농민봉기 재평가와 고부관아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제공: 정읍시) ⓒ천지일보 2023.09.15.
전북 정읍시가 15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고부농민봉기 재평가와 고부관아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제공: 정읍시) ⓒ천지일보 2023.09.15.

[천지일보 정읍=김도은 기자] 전북 정읍시가 15일 한국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고부농민봉기(고부봉기) 재평가와 고부관아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윤준병 국회의원과 동학농민혁명 연구자, 고부관아복원추진위원, 동학단체, 시민 등 약 100여명이 참석했다.

학술대회 기조발제를 맡은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인 고부봉기의 역사적 왜곡을 지적하며 고부봉기를 보는 시각을 새롭게 정리했다.

신 교수는 “고부봉기는 동학농민혁명과 직결된 형태를 가지고 있고 동학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 장군이 고부봉기를 계획하고 추진해간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1주제는 예원대학교 이동희 교수의 ‘19세기 고부군의 통치행정과 향촌사회’로 ‘왜 고부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됐는가’하는 관점을 바탕으로 고부의 지역적 특징을 통치 행정체제와 향촌사회질서 차원에서 살폈다.

제2주제는 ‘고부봉기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이라는 주제로 서강대학교 조재곤 교수의 발표가 이어졌다. 고부봉기 발생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언론, 개인을 포함한 일본인이 이해하고 있던 고부봉기의 전모를 동 시기에 작성된 자료를 중심으로 살폈다.

제3주제 발표를 한 연세대학교 최윤오 교수는 당시 고부 농민군의 지향점과 목표를 명확히 하기 위해 고부군 달천면 토지자료 행심안 자료를 분석해 당시 농민군의 존재 형태를 추적했다.

‘사발통문 서명자와 고부봉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은 조광환 동학역사문화연구소장은 각종 사료 분석을 통해 사발통문 서명자 20명의 생애와 활동을 추적하고 사발통문 거사 계획으로 시작한 고부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었음을 밝혔다.

원광대학교 원도연 교수는 ‘일제의 고부군 폐지 의도와 관아 복원의 역사적 의의’ 발표를 통해 고부관아를 동학농민혁명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과 그에 저항한 농민들의 한과 투쟁을 상징하는 장소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고부봉기를 단순 민란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한국사에서 차지하는 고부 지역의 역사적 위상을 확보하고 고부봉기를 재검토해 동학농민혁명의 의미 고찰과 고부관아 복원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고 평가했다.

이학수 정읍시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바탕으로 고부봉기가 재평가돼 더 이상의 역사 왜곡이 끝났으면 한다”며 “고부봉기가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운 민중적 항쟁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도록 고부관아와 같은 기념공간 복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는 고부관아 복원을 위한 세 번째 프로젝트로 오는 11월 공청회를 진행해 고부관아 복원을 위한 활시위를 더욱 당길 계획이다.

한편 고부는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되는 고부봉기의 중심 지역이었으나 1914년 일제의 보복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郡)에서 일개 면 소재지로 몰락했다. 조병갑 학정의 상징인 고부관아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유적지를 알리는 안내판만 있을 뿐이다.

일제는 조선 통치와 행정 체계에 대한 정통성을 훼손하기 위해 지방 관아 건물을 훼철하고 학교를 건립했다. 고부관아 역시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로 훼철, 변형됨으로써 건축물이 제대로 남은 곳이 없는 데다 구체적 자료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일제에 의해 무참히 훼손된 고부관아 복원은 민족의 정체성과 정기를 회복시켜주는 중요한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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