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과 서방 제재 상태 우회하나
위성기술 등 우주 협력 명분 아래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 완성 우려
시선 한반도로 돌려보자는 셈법도
美 “주저없이 제재 부과할 것” 경고

김정은(오른쪽 두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며 얘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2023.09.13.
김정은(오른쪽 두 번째) 북한 국무위원장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로켓 조립 격납고를 둘러보며 얘기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돕겠다고 밝혔다. (AP/뉴시스) 2023.09.13.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4년여 만에 극동 우주기지에서 만나 우주개발 등에 손을 잡았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우주개발에 위성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고, 김 위원장은 초대해줘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이에 따라 2번 연거푸 실패한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도와 공동발사에 성공한다면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노림수가 될 수 있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북러의 밀착은 미국 캠프데이비드 합의 등 최근 한미일의 공조에 대한 북러의 반응인데, 하필 러 우주개발의 심장으로 불리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한 건 그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대한 포괄적 부정의 표현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제성훈 한국외대 교수는 13일 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러시아와 위성기술 협력을 통해 발사에 성공하면 탄도미사일 기술로 위성 발사를 할 수 없는 유엔제재 상태를 우회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연출하는 셈”이라고 밝혔다.

◆“북러 우주 협력, 군사 분야로 번져”

제 교수는 양국의 위성기술 협력이 앞으로 군사기술로 진전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러는 위성협력을 통해 발사에 성공한다면 아마도 ‘공동발사’라고 부를 공산이 크다”면서 “추후 과학기술협력을 표방하면서 좀 더 민감한 민수 부문, 그러니까 군수전환이 가능한 기술이전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두 나라 모두 국제사회와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페트로 달러 추세 속에서 탈달러를 모색하는 에너지 수출국) 러시아 루블로 결제하는 무역 결제 방식에 합의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밖에도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와 북한 광물개발, 북한 노동자 활용방안 등 경제협력 분야에서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서 만난 김정은과 푸틴[보스토치니 우주기지=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에 위치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3.09.13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서 만난 김정은과 푸틴[보스토치니 우주기지=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오후 러시아 극동 아무르주에 위치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3.09.13

러시아가 북한에 위성 기술개발을 지원하겠다는 양국 정상의 의지는 북한에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탄도미사일 기술로 위성을 발사할 수 없다’는 규칙을 ‘모든 국가는 우주의 평화적인 공동 이용’이라는 ‘보편적’인 규칙으로 대체하겠다는 발상으로, 서방의 반발이 예상된다는 해석이다.

◆“‘우주의 평화적 이용’ 아니다”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러시아 대사)은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2층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초청 강연에서 “하바로프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라는 도시에는 잠수함 생산기지와 수호이 전투기 생산기지가 있다. 주목할 것은 우주 협력인데, 그간 한국과 많은 민간 우주 협력을 해 왔던 러시아가 앞으로는 북한과 협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러 간 우주 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안보리 결의에 저촉될 소지가 상당히 있는 것”이라며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의 협력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이 결여된 도전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우주 이용이지만 북한의 경우는 탄도미사일로 평화와 안정을 깨뜨린 죄업으로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위성 발사가 금지돼 있다”면서 “러시아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은 모든 나라의 기본적인 권리’라는 원론적인 맥락에서 안보리 결의와 무관하게 북과 협력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인 규칙(general rule)과 개별적인 규칙(local rule)이 있는데,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에 적용되는 개별 규칙은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일반적 규칙을 적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가 등장했다. 2023.2.9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8일 인민군 창건일(건군절) 75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신무기가 등장했다. 2023.2.9

위 사무총장은 “러시아와 북한이 우주 기지에서 회담을 하고 거기서 우주 기술을 협력하는 상황은 자칫하면 군사 영역으로 매치될 수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이번 김정은 위원장 수행단의 면면을 보면 군사 쪽에 방점이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로 쏠린 시선 한반도로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위성발사 협력과 핵추진 잠수함 등 전략무기 개발 협력이 현실화 될 경우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협상력 약화를 의미한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왔다.

미국이 러시아가 북한에 이런 군사기술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러시아는 북러 협력을 통해 현재 우크라이나 쪽에 쏠려 있는 미국과 서방의 시선을 한반도 쪽으로 옮기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러 정상회담의 발표 내용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일 가능성이 크지만, 어쨌든 미국에 주는 신호, 표시는 굉장히 클 것”이라고 밝혔다고 이날 스푸트니크가 전했다. 미국으로서는 러시아가 북한과 위성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관련 협력 가능성도 커 예의주시하면서, 건조가 현실화할 경우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전망됐다.

◆“북러 밀착에 러 설득 필요성 커져”

그러나 정 센터장은 “미국이 반발하겠지만, 미국으로서는 그로 인해 러시아와 대화와 협력할 필요성을 더 느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는 일단 미 대륙까지 겨냥하고 있는 북의 군사적 의도를 막아야 하니 러시아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이 회담하는 것은 2019년 4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스푸트니크 제공] (출처: 연합뉴스) 2023.09.1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이 회담하는 것은 2019년 4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스푸트니크 제공] (출처: 연합뉴스) 2023.09.13

북러 우주 협력이 북한의 한반도 정찰능력을 고도화시켜 주한미군에 대한 위협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뚜렷하다. 정 센터장은 “북한 정찰위성에 러시아가 제공하는 고해상도 카메라가 탑재되고 그래서 북한이 한국 주한미군을 아주 정밀하게 들여다볼 능력이 갖춰진다면, 미국으로서는 굉장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서 “게다가 북한이 핵 잠수함까지 갖추면 미국은 군사 전략적 지형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이기 때문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은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론 러시아가 북한에 이를 주지 못하도록 러시아와 대화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느낄 것”이라며 “러시아도 이런 차원에서 단순한 탄약에 대한 대가를 넘어서 북한과의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밝혔다. 러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쏠려 있는 서방의 시선을 한반도로 돌려보자는 셈법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북러 밀착 행보에 반발하는 미국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냐는 취재진 물음에 “우리가 우주기지에 온 이유”라고 답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다. 북한은 우주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한다”고도 했다. 이는 러시아가 보유한 인공위성 발사 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서방은 이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북한이 기술이전을 대가로 전쟁에 사용할 물자를 제공하는 등 우주개발을 명목으로 광범위한 군사협력 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AP/뉴시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 (AP/뉴시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하면 북한의 핵 개발 야망을 막으려 했던 15년간의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과 무기 거래를 하거나 군사기술을 교환하는 행위는 지난 2006년 체결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위반하는 행위다.

이에 서방은 강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북러 모두 긴밀히 주시하면서 무기 이전이 이뤄질 경우 제재 부과를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같은 날 일종의 무기 거래를 추진하기로 하면 우리는 분명 대응에 나설 것이며, 북한에는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분명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북러 공조를 두고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며 ”다른 나라들과 함께 공조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며, (그럼에도 무기거래가 이뤄지면) 응분의 책임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와 관련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과 러시아의 급격한 밀착이 불러올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북한의 재래식 무력 현대화를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은 더 강압적이고 심지어 치명적인 무력의 사용을 선택할 정도로 대담해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출처: 뉴시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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