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거래’ 논의 오갈 듯

북러 밀착, 미국 등이 빌미

美, 북러회담 비아냥대며 민감

한반도 안보비용 급증 가능성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연방을 방문하기위해 9월 10일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2023.9.12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연방을 방문하기위해 9월 10일 오후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2023.9.12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당과 군 간부들을 대동하고 러시아를 방문하기 위해 지난 10일 오후 전용 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12일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도 이전처럼 북러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 장소 등을 전하지 않았지만, 외부로 송출되는 통신뿐 아니라 북한 내부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도 출발 소식을 실으며 북러 정상회담을 대내외에 알렸다.

북러 정상의 만남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김 위원장이 탄 열차가 러시아에 진입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북러정상회담은 당초 알려진 12~1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가능성이 큰 데, 일각에선 이들 날짜가 아닌 14일 이후 별도의 장소도 거론한다.

북러 정상 간의 만남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뚜렷해진 신냉전 구도, 즉 한미일과 북중러 대립 구도를 한층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등 지난 2019년 4월 열렸던 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보다 더 한반도 정세와 역내 안보 지형에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북러회담서 어떤 얘기 오가나

북러 정상 간 만남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탄약이나 군사물자를 지원하는 대신 러시아로부터 핵·미사일 고도화를 위한 기술적 지원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문성묵 한국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통화에서 “북러 양측의 입장이 맞물린 만남이다. 절실한 상황이 만남의 동력이 됐고 한미일에 과시하려는 점 등 여러 포석이 깔려있다”면서 “내부적으로 경제난 등 주민 결속을 위한 타개책의 일환인 한편 대외적으로는 러시아를 돕는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군사 기술을 이전받겠다는 것인데, 과연 얼마나 이전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 서방이 북러 간 무기 ‘빅딜’ 여부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다. 또한 북한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을 늘리는 문제, 러시아의 대북 식량 수출 등 유엔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여러 사안이 다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크렘린궁도 이날 “안보리에서의 사안에 대한 프로세스도 논의 주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스푸트니크 통신이 전했다.

이외에도 두 정상이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태평양함대사령부 33번 부두와 함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국방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 외에 다른 일정을 함께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동방경제포럼(EEF)이 개최되는 것을 고려할 때 그것과 연계된 일정이 있지 않겠느냐”며 “나머지 사안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답했다.

◆북러 돌연 밀착 배경은

북러의 갑작스런 밀착의 명분을 준 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등의 전쟁 개입 압력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북러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존재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도 해당되지만, 대놓고 무기 거래 관련 회담을 할 수 있는 건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 등의 우회적인 탄약 지원 정황이 미국의 기밀문건을 통해 탄로나면서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러 정상회담의 빌미가 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논리와도 같다. 지난 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서방의 서술과 달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직접적으로 규탄하지 못한 공동성명이 채택된 것도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다. 러시아가 원한 결과대로인데, 당장 영국 BBC 등 서방 언론들은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및 파트너들의 집단적 입장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 등 서방의 힘이 이전만큼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의 다급함은 최근 북러 회담 관련 동향을 노골적으로 흘리면서 이를 확인해주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데서도 나타났다.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을 받으면서까지 남의 나라 회담에 화들짝 놀라 관여하는 모양새다. 아직 어떤 내용이 오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성급하고 막무가내라는 비판이다.

심지어는 11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대변인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킨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다며 이제는 북한에 무기를 구걸하고 있다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이전과 같은 외교적 수사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을 제재할 효과적인 수단이 사실상 마땅치 않은 데다가 더군다나 북러의 연대는 기존 유엔 안보리 결의를 통한 대북제재 시스템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러회담, 한반도 영향은

관심사는 지정학적으로 맞닿아 있는 우리의 현실인데, 북러 간 회담을 통해 무기 관련 거래가 성사될 경우 한반도 안보 국면은 새로운 사태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가 북한의 재래식 무기를 받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 및 핵잠수함 기술 등을 제공하면 이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남북 간 군비 경쟁이 심화하는 등 한반도 안보 비용은 급속히 증가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에 최선희 외무상과 함께 군 서열 1∼2위인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당 군정지도부장은 물론, 무기 거래 관련 주요 보직자들이 대거 동행한 건 이번 방러 목적이 군사적 성격에 있음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이 최근 세 차례 군수공장을 시찰해 대러시아 지원과 관련된 것이라 평가받는 탄약‧무기 생산을 독려한 것이나 당장은 러시아 기술이 필요한 핵추진잠수함 도입 계획을 밝힌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의 연장선이다.

특히 한미일과 북중러의 군사적 대치 전선을 선명하게 할 북중러 연합훈련 가능성이 이번 회담에서 얼마나 논의될지도 관심거리다. 지난 7월 방북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북중러 연합훈련을 공식 제의했다는 러시아 언론의 보도가 나왔고 러시아 당국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대한 맞불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북중러 연합훈련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는 중국의 태도에 달려 있어 아직 불투명하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윤 정부는 한미일 협력 강화로 동북아 지역에서 기회는 많아지고 안보는 강화됐다고 선전하지만 되려 북중러 연대의 계기가 되는 등 한반도를 더욱 위험에 빠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동북아 신냉전 구도가 짙어지면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더욱 요원해질 것이라는 진단에 힘이 실리는 건 이 때문이다. 남북 단절의 시대라지만 한중일 대 북중러 간 대결 구도가 심화하면서 남북은 차치하고 북미 간 대화 가능성도 더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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