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동북아 판 흔들기’ 하나
포탄-핵기술 ‘무기 빅딜’ 촉각
美 의회 “악마의 거래” 규탄
北에는 ‘공개 약속’ 준수 촉구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엄중한 경고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 속에 ‘위험한 만남’을 코앞에 두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이들 간의 회담이 ‘악마의 거래’라거나 북한을 두고 ‘버림받은 나라’ 러시아의 정치를 ‘실패한 전략’이라고 규탄하는 거센 표현들이 등장했다.
12일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역인 북한 국경과 가까운 러 연해주 지방의 하산(Khasan)역에 도착했다고 외신들이 이날 일제히 전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10일 평양에서 출발하면서 열차에 올라타 손을 흔드는 모습에 이어 이날 러 하산역에 도착해 그의 전용 열차에서 내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러 회담 개최일과 장소, 내용 등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한 상황 속에 러 크렘린궁(대통령실)은 이날 “(북·러 정상회담이) 러시아 극동에서 수일 내에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보는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중국이 연대하는 전체주의 진영 간 대립 속 한미일을 포함한 서방 공조에 맞서 강력한 우방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보고 있다.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북한 전문가는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의 지지와 지원을 과시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무기 판매, 원조, 러시아로 노동자 파견 등의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군수 물자 확보를 위해 북한으로 눈을 돌린 행위는 그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전략적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제기된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북한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버림받은 나라, 따돌림받는 나라(pariah)’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러시아가 이러한 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실패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이) 1년 반이 지난 지금, 푸틴이 전장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가로질러 김정은에게 군사 지원을 간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면서 “UN 안전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반하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이전을 막기 위해 미국은 새로운 제재를 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북러 회담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 전쟁에서 쓸 탄약이나 122㎜·155㎜ 포탄과 122㎜ 로켓 등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함께 북한이 비대칭 전력 확보에 투입할 러시아의 첨단 군사 기술을 교환하는 무기 거래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북한 무기가 러시아에 판매됐다는 보도가 나온 뒤 북한 국방부 측이 “러시아와 ‘무기거래’를 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 없다”라고 밝힌 것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외화벌이를 위해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을 늘리는 문제, 러시아의 대북 식량 수출 등 국제사회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사안이 다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더해진다.
유럽정책분석센터(CEPA) 소속 새뮤얼 그린은 러시아가 무기를 원하는 상황 속에 “북한은 이와 관련해 어느 정도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서 북한도 러시아의 미사일 관련 기술을 원한다고 BBC에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서방에 지금 갈등을 어디까지 가져갈 수 있는지 묻고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킹스칼리지 런던 대학교의 러시아 정치학 교수이기도 한 그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이 핵 비확산과 북한이 세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우려도 거론했다.
그는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부추기지 않을 용의가 없는 한 러시아는 북한이 서방에 큰 골칫덩이가 되게끔 하는 데 기꺼이 힘을 다하겠다는 뜻을 보여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지원을 퍼붓는 미국과 나토 등 서방에 ‘러시아 힘 빼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서방 대오를 견고히 하겠다는 무언의 경고인 셈이다.
북러 간 빅딜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백악관 측과 미 의회도 강한 규탄의 목소리를 이어갔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러시아와 무기거래를 할 경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데 이어 이날 백악관은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말 것을 거듭 촉구했다.
에이드리안 왓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공개적으로 경고한 바와 같이 김정은 위원장의 이번 방문 기간 북러 간 무기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북한에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하거나 판매하지 않겠다는 공개 약속을 지킬 것을 재차 요구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크리스 쿤스 의원은 “푸틴 대통령은 더 많은 장비와 지원이 절실하고 북한은 대규모 포병과 물자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들(북러)이 ‘악마의 거래’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