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왕산 수성동계곡
주변 경관 아름답기로 꼽혀
여러 계층으로 문학 향유해
아파트 건립으로 경관 잃어
건립 과정 중 복원 기회 찾아
서울 기념물 제31호로 지정
안평대군 옛 집터 있던 곳

[천지일보=송연숙 기자] 시민들이 수성동계곡에서 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0.
[천지일보=송연숙 기자] 시민들이 수성동계곡에서 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10.

[천지일보 서울=송연숙 기자] 수성동계곡은 누상동과 옥인동의 경계에 있는 인왕산 아래에 있는 계곡이다. 수성동의 동이라는 명칭은 현재의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골짜기, 계곡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수성동은 조선 시대 도성 안에서 백악산 삼청동과 함께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로 꼽혔고, 조선 후기 역사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경지략 등에 명승지로 소개되기도 했다. 17~18세기의 화가인 겸재 정선이 백악산과 인왕상 아래 장동 일대를 담은 곳이기도 하다.

겸재 정선이 그린 ‘장동팔경첩’이라는 그림을 보면 거대한 바위 사이로 개울이 흐르고 주변에는 암석이 수려하며, 계곡에는 2개의 장대석을 맞댄 돌다리가 놓여 있다. 선비들은 이곳에서 한가로이 풍경을 즐겼다.

이 일대는 18~19세기 조선 후기 중인·서얼·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로 이뤄진 위항문학을 꽃피웠던 곳으로 문학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다. 이러한 시모임은 당시 양반층의 전유물로 여기던 문학이 중인층을 비롯한 여러 계층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원한 물소리가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수성동계곡은 1971년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이전의 그 경관을 잃게 됐다.

하지만 2007년 옥인시범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서울시는 수성동계곡의 자연경관을 복구할 기회를 얻게 됐다. 시는 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수성동계곡의 역사적 가치를 재발견했고, 2010년 현존하는 그림 속 돌다리와 계곡 일대를 서울시 기념물 제31호로 지정하고 복원 공사를 해왔다. 복원 작업은 수성동계곡의 풍경을 담은 정선의 작품 수성동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장동팔경첩 속 풍경은 2012년 7월 11일 원형에 가깝게 복원돼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천지일보=송연숙 기자] 수성동계곡 입구에서 보이는 인왕산 ⓒ천지일보 2023.09.10.
[천지일보=송연숙 기자] 수성동계곡 입구에서 보이는 인왕산 ⓒ천지일보 2023.09.10.

◆안평대군 옛 집터 있는 곳

인왕산의 물줄기는 수성동과 옥류동으로 나뉘어 흘렀다. 이 물줄기는 기린교에서 합수돼 청계천으로 흘렀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옥같이 맑게 흐르던 옥류동 계곡은 주택가로 변했지만, 수성동계곡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여전히 맑고 청아한 물소리가 들리고 있다.

수성동계곡은 조선 세종의 아들이자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안평대군(1418~1453, 이용)의 집터가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수성동은 인왕산 기슭에 있으니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해 시내와 암석이 빼어남에 있어 여름에 놀며 감상하기에 마땅하다. 이곳에는 안평대군의 옛 집터인 비해당 터가 있고, 기린교라 불리는 다리가 있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로 형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한 불운한 왕자였다. 서예와 시문, 그림, 가야금 등에 능하고 특히 글씨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꼽혔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 그는 이곳에 ‘비해당’이라는 별장을 짓고 살며 시와 그림을 즐겼다.

비해당의 ‘비해’는 ‘게으름 없이’라는 뜻으로 시경에 나오는 구절인 ‘숙야비해 이사일인’에서 따온 말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한 사람을 섬기라는 의미도 있다.

비해당으로 가는 길에는 통돌다리 2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기나긴 세월 속에 슬픔과 기쁨을 담은 다리가 기린을 닮아서 ‘기린교’라 불렸다. 지금은 기린교로 추정되는 돌다리만 남아 있다.

ⓒ천지일보 2023.09.10.
[천지일보=송연숙 기자] 수성동계곡 하류에 기린교라 추정되는 다리가 있다. ⓒ천지일보 2023.09.10.

◆자연경관 보며 더위 식히는 시민들

무더위로 기승을 부리던 여름이 지나갔지만 9월이 돼도 더위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최근 본지가 찾은 수성동계곡에는 계속되는 더위에 시민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사람들은 계곡 근처에 삼삼오오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동문학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서지현(30대, 여, 서울시 영등포구)씨는 “이곳이 정말 아름다워 가끔 그림 스케치하러 오는데, 물이 많지 않아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간호학과 동문들과 함께 온 김영숙(50대, 여, 경기도 파주시)시는 “이렇게 발 담그고 있으니 너무 좋다”며 “서울에 이렇게 경치도 좋고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 있다니 놀랍다”고 감탄했다.

서촌에 왔다가 수성동계곡 표지판을 보고 왔다는 이소은(20대, 여, 인천시 남동구)씨는 “크지는 않지만 서울 한복판에 초가을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양지원(30대, 여,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씨는 가고 싶은 계곡을 검색하다 보니 수성동계곡이 역사적인 곳이라고 해서 친구와 같이 왔다고 했다. 양씨는 “물소리가 너무 좋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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