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 연방 국명을 소문자가 아닌 대문자로 쓰기로 했다.
8일 천지일보가 입수한 우크라이나 정부 공문에 따르면 교육과학부는 현재 혼용하고 있는 러시아 연방(російської федерації)이라는 국명을 소문자가 아닌 대문자로 쓰기로 했다. 이는 공표일 이후 이달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된 상태다. 이 문건에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략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난 학생들의 교육 보장에 대해 ‘외국 학교’에서 ‘일반 중등 교육기관’으로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이번 조치는 같은 언어·문화권으로 비칠 수 있는 러시아를 완전 다른 나라로 분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최근 우리나라를 그나마 같은 민족성을 담은 ‘남조선’이라는 용어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별도의 나라로 표현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간 우크라이나가 추진해온 ‘러시아 색 지우기’와 맞물려 러시아는 별도의 국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별도의 나라로 인정하는 경우 소문자가 아닌 대문자로 표기한다. 반대로 코소보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스페인의 경우 최근 코소보를 대문자가 아닌 소문자로 쓰면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러시아 지우기 나서는 우크라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종속된 문화권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옛날 1100년 전 ‘키예프(우크라이나어로는 키이우) 루스’라는 뿌리가 같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인 지난해 2월 21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항상 러시아의 일부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은 같은 키예프 루스에서 나왔을지라도 러시아와는 구성 민족도 달랐고, 독자적 문화·종교를 가지고 있는 독립된 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역사 문화적 상징적인 키이우(키예프)가 현재 우크라이나 수도여서 러시아가 아닌 자신들이 키예프 루스의 종가(宗家)라고 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같이 쓰는 ‘키릴 문자’를 읽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다른 민족 입장에선 언뜻 보기에 같아 보이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다른 것처럼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도 읽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같은 한자 문화권이지만 전혀 다른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도 같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소련 시절 이전부터 500년 가까이 오랜 기간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러시아 문화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과거 1654년 우크라이나가 폴란드와 싸우기 위해 모스크바 공국(지금의 러시아)과 동맹을 맺은 ‘페레야슬라프 협정’ 이후, 불과 2년 만에 러시아와 폴란드가 손잡고 우크라이나를 가르는 드네프르강을 기준으로 분점하는 등 러시아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름(크림)반도를 장악한 10여년 전부터 동부 지역 반군들을 지원하면서 자국 내 러시아 색을 지우려는 노력을 강화해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부터는 사회 모든 부문에서 러시아 문화 지우기 움직임이 확산했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뒤 우크라이나어 사용 장려를 법제화했고 소련 전쟁 영웅들을 비롯한 작가·예술가의 동상을 무너트렸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수도 키이우에 설치된 61m 높이의 거대한 불굴의 여성 전사 동상인 ‘모국의 어머니상’에서 옛 소련의 상징인 망치와 낫 문양을 제거하기도 했다. 대신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삼지창으로 문양을 갈아치웠다. 모국의 어머니상은 옛 소련 시절인 1981년 2차 세계대전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기념물을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1992년 2월 삼지창 문양을 독립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채택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페트로프스키-슈테른 교수는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러시아의 사관에 대해 “푸틴은 1860년대 러시아 관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어나 우크라이나 국민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없기 때문에 주권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