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사령관 장관 지시사항 전달

‘李장관 발언’ 배치돼 논란일듯

‘법무관리관 통화’ 들은 수사관

“혐의사실·내용 빼라 했다” 진술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2023년 9월 5일 오전 항명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용산구 국방부 군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2023년 9월 5일 오전 항명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용산구 국방부 군 검찰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순직한 해병대 채 상병 수사에 대한 ‘외압’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수사를 둘러싼 ‘대통령 개입설’이 의혹을 넘어 진실공방 문제로 번지더니 이번에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아왔다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구속영장 “혐의자 특정하지 않고” 포함

국방부 검찰단이 앞서 지난달 30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 제출한 박정훈(대령) 해병대 전 수사단장의 사전 구속영장청구서에는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라는 내용이 담긴 진술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합뉴스가 입수해 6일 보도한 구속영장청구서에 따르면 7월 31일 해병대 수사단의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 결과와 관련한 언론 브리핑이 취소된 직후 ‘해병대부사령관은 오후 2시 10분경 국방부에 들어가 우즈베키스탄 출장 직전이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이첩보류’ 등 지시를 받고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했다’고 기술돼 있다.

정종범 해병대부사령관은 같은날 오후 4시경 해병대사령부 회의실에서 해병대사령관, 해병대사령부참모장, 공보정훈실장, 비서실장, 정책실장, 박 전 단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국방부 장관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영장청구서 7쪽에는 부사령관이 장관님 지시사항은 수사자료는 법무관리관실에서 최종 정리를 해야 하는데,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 경찰에 필요한 자료만 전달, 수사 결과는 경찰에서 최종 언론 설명 등을 해야 한다고 회의 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진술이 담겼다.

이는 국방부 장관의 문서로 된 명시적 이첩보류 지시가 없었다는 박 전 단장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기술로 보인다. 다만 ‘혐의자를 특정하지 않고’라는 김 사령관의 진술은 이종섭 국방장관이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그간의 국방부 입장과는 배치돼 논란이 예상된다.

이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예결위 전체 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혐의자를 포함시키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국방부는 이와 관련해 “군검사가 해병대부사령관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요약한 것으로 확인했다”며 “장관이 직접 언급한 내용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법무관리관 통화’도 함께 들어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의 통화를 스피커폰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었다는 박 전 단장의 주장도 사실로 확인됐다.

구속영장청구서 23쪽에는 ‘피의자로부터 법무관리관과의 8월 1일 대화를 함께 청취한 (공란)과 (공란)은 법무관리관이 특정 혐의자를 제외하라는 것이 아니라 혐의사실과 혐의 내용을 빼고 조사기록만 넘기라고 애기했다고 진술하고 있는 바’라고 적혀있다.

공란으로 표시된 이들 2명은 군검찰 조사에서 박 전 단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의 통화를 함께 들었고, 당시 법무관리관이 박 전 단장에게 혐의사실과 혐의 내용을 빼고 조사기록만 넘기라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지만 특정 혐의자를 제외하라는 것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는 설명이다.

군검찰은 이를 토대로 영장청구서에 “법무관리관이 피의자에게 ‘특정 혐의자를 제외하라’고 말했다는 내용은 다른 사람의 진술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또 “‘혐의사실, 혐의 내용을 다 빼라’고 말했다는 점은 위법하거나 부당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전 단장의 법률대리인은 김정민 변호사는 이날 군검찰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군검사는 ‘혐의사실, 혐의 내용을 다 빼라’라고 하는 지시가 적법한 수사 지휘에 해당한다는 전제하에서 피의자를 입건하고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음을 알 수 있다”며 “이는 매우 심각한 법리 오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보아 수사를 개시하는 것을 범죄의 인지라고 부른다’고 판시한 바 있다”며 “혐의사실을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는 결국 범죄를 입건하지 말라는 뜻이고 이는 명백하고도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수사방해, 수사개입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박 전 단장, 5일 군검찰에 소환

박 전 단장은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채 상병 관련 수사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고 보류하라는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혐의(군형법상 항명)로 군검찰에 입건됐다.

국방부 검찰단은 지난달 30일 돌연 박  전 단장에게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피의자의 신속한 수사를 위해 노력했으나 피의자가 계속 수사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사안의 중대성 및 증거 인멸 우려를 고려했다고 군검찰단은 설명했다.

하지만 군검찰의 행태에 대한 반발은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가 수사 외압으로 작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진실공방이 벌어지는 등 관련 사건의 수사·재판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자 박 전 단장을 잡아 가둬서 입을 막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가열됐다.

실제 당시 군인권센터가 시작한 ‘해병대 박정훈 대령 구속 반대 탄원’ 운동이 하루 만에 시민 1만 7139명이 동참하기도 했다. 이처럼 파문이 확산됐지만 인용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이를 깨고 박 전 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1일 기각됐다. 국방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기각 결정이 난 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군사법원은 민간법원과 달리 경계가 흐릿해 국방부의 영향력이 강하기 미치기 때문이다.

4일에는 박 전 단장이 앞서 지난달  21일 수원지법에  보직해임 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보직해임 처분의 효력을 정지하는 집행정지 신청을 낸 바 있는데 보직 해임 처분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첫 심리가 진행됐다. 통상 집행정지 심리는 한차례 진행된 뒤 종결되는 만큼 추석 전에는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단장은 전날(5일)에는 군검찰에 소환돼 약 11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지난달 28일 첫 소환조사 때 진술 거부를 했던 때와는 달리 이번엔 적극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박 전 단장이 서면 진술서만 제출하고 구두 진술을 거부해 소 20여분 만에 종료된 바 있다. 이에 나흘 전 “군 수사 절차 내에서 성실히 소명하겠다”고 군사법원에서 밝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점에서 태도에 변화가 나타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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