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해 기술 39%, 소프트웨어
대기업과의 소송 패소율 높아
대통령 개입, 제도 정비 속도

지난 4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4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기업 아이디어 탈취 피해기업 기자회견에서 윤태식 프링커코리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중소기업이 지난해 기술·정보 침해를 당해 발생한 피해액이 19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올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기술 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면서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4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의 ‘2023 중소기업 기술 보호 수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에 대한 중대한 기술 침해가 발생했거나 이전에 발생한 피해를 인지한 사례는 지난해 총 18건이었고, 피해액은 197억원으로 조사됐다.

피해 건수로 비교하면 2021년(33건) 대비 절반 가까이 줄었으나, 피해액은 오히려 2021년(189억 4천만원) 대비 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침해된 기술이나 경영상의 정보는 ‘소프트웨어 및 프로그래밍 파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38.5%로 가장 높았다.

중소기업이 기술 침해를 당한 후 내부적으로 별도로 조치하지 않은 비율은 8.3%였고, 외부적으로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33.3%에 달했다.

해외에서는 해당 비율이 더 높았다. 해외에서 기술 침해를 당한 이후 별도의 조치를 하지 않은 비율은 50.0%를 기록했다. 해외 기반은 중소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국내 기반은 중소기업 세 곳 중 한 곳이 기술 탈취 피해를 인지했음에도 손을 놓고 당했던 셈이다.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은 인력·자금 여력이 부족한 탓에 대기업이 이들의 기술을 탈취하려고 하면 이를 막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스타트업 생태계 민간 지원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조사해 지난 5월 발간한 이슈 페이퍼에 따르면 대기업은 하도급 관계나 자본력의 차이를 바탕으로 기술 탈취가 용이한 것으로 파악됐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이슈 페이퍼에서 “스타트업은 침해 사실 및 손해액 산정 관련 입증이 용이치 않아 대기업과의 분쟁 피해가 스타트업 간 기술 탈취 피해보다 더 크게 발생한다”고 지적하면서 “스타트업은 기술 탈취가 이뤄진 이후의 대응을 고려하는 것보다 기술 탈취가 이뤄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에 따르면 기술·서비스 탈취 문제로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갈등을 겪는 사례는 ▲교보문고와 텍스처(기록·수집된 문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추천·유통하는 서비스) ▲농협경제지주와 키우소(목장 운영을 위해 필요한 기록 관리를 돕는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LG생활건강과 프링커코리아(화장품 염료를 이용해 피부에 원하는 대로 도안을 그려주는 휴대용 타투 프린터기) ▲카카오헬스케어·카카오브레인과 닥터다이어리(연속혈당측정기와 모바일 앱 연동 서비스) ▲신한카드·BC카드와 팍스모네(계좌에 잔액이 없이도 신용카드를 통해 개인 간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 등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뤄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특허 심판 심결 16건 가운데 9건에서 중소기업이 패소해 패소율은 5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특허 심판 패소율은 지난 2018년 50%, 2019년 60%, 2020년 72%, 2021년 75%까지 높아졌다가 지난해 하락 전환했다. 그러나 여전히 승소율보다 패소율이 더 높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특허 심판·소송에서 침해 사실과 손해액 산정에 대한 증거의 대부분을 침해자인 대기업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증거 수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해 패소율이 높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관련 제도 정비를 계획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스타트업 코리아 전략회의’에서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중범죄로 규정하며 단호하게 ‘사법처리하겠다’고 밝혔고, 중소기업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신속하게 구제받고 대기업으로부터 보복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지켜주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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