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용병 프리고진 비행기 추락사로
그간 표적됐던 푸틴 정적들 ‘조명’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가 반역자로 전락한 예브게니 프리고진(62) 바그너 그룹 대표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그동안의 푸틴 정적들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프리고진 대표 외에도 푸틴 대통령이나 그의 이익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수께끼 속 의문사를 맞이했거나 죽을 뻔한 인물들은 정치인을 포함한 여러명이 꼽힌다.

먼저 전 KGB(소련 국가안보위원회) 요원으로 노골적으로 푸틴을 비판했던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는 영국 런던 밀레니엄 호텔에서 방사성물질인 폴로늄으로 물들인 녹차를 마신 후 2006년 43세로 숨졌다. 영국 당국은 지난 2016년 조사에서 푸틴 대통령이 이를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러시아 측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영국 판사가 이끄는 조사에서 전 KGB 경호원 안드레이 루고보이와 다른 러시아인 디미트리 코프툰이 폴로늄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당국은 KGB를 이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의해 독살이 지시된 것으로 판단했다. 리트비넨코는 중독되기 6년 전 러시아를 떠나 영국으로 망명했다.

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시도했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인근 트베리 지역에서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수사관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사고로 프리고진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화/연합뉴스) 2023.08.24.
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을 시도했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인근 트베리 지역에서 전용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수사관들이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당국은 이번 사고로 프리고진을 비롯한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신화/연합뉴스) 2023.08.24.

또 알렉산더 페레필리치니는 지난 2012년 11월 런던 외곽의 고급 주택에서 조깅을 한 후 그의 주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2009년 스위스의 러시아 돈세탁 계획 조사에 협력한 뒤 영국으로 피난 갔다. 갑작스러운 사망은 그가 살해당한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낳았다.

페레필리치니는 러시아 요리인 수영 수프(Sorrel Soup)를 큰 그릇에 넣어 먹는 것을 즐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경찰은 그가 독살됐을 수 있다는 의혹에도 그러한 가능성을 배제했다. 조사 전 심리에서 그의 위에서 겔세뮴근 식물의 치명적인 독극물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어 러시아에서 가장 두드러진 야당 지도자로 꼽혔던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 2020년 8월 냉전 시대 소련이 사용했던 신경작용제 ‘노비초크’로 중독, 독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러시아는 어떠한 개입도 부인했다.

이후 나발니는 이듬해인 2021년 러시아로 자발적으로 귀국했으나 도착 즉시 체포됐다. 이후 사기 등 혐의로 1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으며 ‘극단주의’로 분류된 그와 관련한 정치 활동은 전면 금지됐다. 이어 최근 최고 보안 감옥에서 19년이 더해진 형을 선고받았다.

또 영국 정보국에 비밀정보를 넘긴 전 러시아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는 지난 2018년 3월 영국 솔즈베리 대성당 인근 쇼핑센터 외부 벤치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이들은 중증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며, 영국 당국은 이들이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소비에트 군대에서 개발한 ‘노비초크’로 중독됐다고 밝혔다. 둘은 가까스로 생존했다. 러시아는 이 중독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관련성도 부인했으며, 오히려 영국이 반러시아적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야당 활동가인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도 지난 2015년과 2017년에 자신을 중독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는 그의 혈액에서 수은·구리·망간·아연의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러시아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민간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추방하면서 반란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일부 러시아 고위급 장성들의 운명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의 모습. (AP/뉴시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민간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추방하면서 반란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일부 러시아 고위급 장성들의 운명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사진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총참모장의 모습. (AP/뉴시스)

그러다가 이번에 러시아 민간군사회사(PMC) 수장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대표가 러시아 서부 트베리 지역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러시아 군 수뇌부에 무장반란을 일으킨 지 두달 만이다. 현재 ‘푸틴 대통령과 쇼이구 장관의 복수설’부터 ‘우크라이나 소행’ ‘생존설’ 등 각종 설이 나돈다.

그중에서도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성향상 ‘복수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앞서 프리고진 대표는 돌연 수만명 규모의 용병들을 내세워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향해 총구를 돌리며 반란 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무서운 속도로 북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조차 뚫지 못했던 러시아 ‘심장’ 모스크바까지 단 하루 만에 뚫릴 뻔했지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는 극적 타협이 이뤄지면서 결국 ‘하루 천하’로 일단락된 바 있다.

24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PMC 바그네르 센터' 옆 비공식 추모소에서 한 남성이 꽃을 놓고 있다. 23일 트베리 지역에서 승무원 3명과 승객 7명이 탑승한 바그네르 그룹 소유 항공기가 추락해 전원이 사망했으며 탑승자 명단에 바그네르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네르 그룹은 텔레그램에서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 방공망이 항공기를 격추했다"라고 주장했다. (AP/뉴시스) 2023.08.24.
24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PMC 바그네르 센터' 옆 비공식 추모소에서 한 남성이 꽃을 놓고 있다. 23일 트베리 지역에서 승무원 3명과 승객 7명이 탑승한 바그네르 그룹 소유 항공기가 추락해 전원이 사망했으며 탑승자 명단에 바그네르 용병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네르 그룹은 텔레그램에서 성명을 내고 "러시아군 방공망이 항공기를 격추했다"라고 주장했다. (AP/뉴시스) 20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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