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스트레스에 취약해”
“범죄에 대한 경각심 없어”
처벌 강화해야 한다 목소리도
가게 오던 손님들도 줄어들어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한 대형백화점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이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서현역 한 대형백화점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이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으로 사망한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수도권특별취재팀] 최근 장소를 불문하고 ‘묻지마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7월말부터 신림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면서 8월에는 서현역을 시작으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거나 살인 예고 글이 올라오는 등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잇따른 살인 예고와 묻지마 범죄에 시민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2일 본지가 오후에 방문한 평택역은 몇몇 시민들이 지하철과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오가고 있었다. 평택역 앞 광장에는 이어폰을 끼고 걷는 사람, 핸드폰을 보고 걷는 사람, 앞을 보며 걷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는 시민의 모습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요즘 뉴스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 흉기 관련 범죄에 대해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원범(40대, 남, 평택시 세교동)씨는 “가해자 처벌이 너무 약하다. 흉기 관련 범죄도 외국 경찰처럼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치안에는 좋은 인상을 보이는 나라였는데 호신용 물품을 들고 다녀야 하나 생각하게 되는 나라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탄했다.

강미연(30대, 여, 평택시 오성면)씨는 “대체로 요즘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한 것 같다. 배려와 참을성 등 인성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다”며 “작은 일에도 손해당할까, 무시당할까 등 한껏 예민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양보와 배려 교육에도 신경을 썼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 같다”고 전했다.

서지현(20대, 여, 안성시 원곡동)씨는 “요즘 청소년들이 재미로 흉기 관련 예고 글을 올리는 등의 글을 봤다. (청소년들이)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없고 촉법소년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 보니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경찰에서도 본보기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강하게 말했다.

이어 “심신미약 등으로 약한 처벌을 계속 내린다면 항상 불안하게 살아가는 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처벌을 강화해 재미 삼아 글을 쓰는 이들이 없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 6시경 서울시 강서구 가양역 주변에는 퇴근하는 시민들로 북적이나 대체적으로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듯했다. 역 주변 상가들에는 2~3명의 손님이 눈에 띄기도 했다. 오후 9시면 상가 문을 닫지만, 이날은 비가 와서인지 일찍 문을 닫고 있었다. 치킨집 사장님도 평소처럼 손님을 기다리듯 카운터 옆에 앉아 있었지만 한산하기만 하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배정훈(가명, 60대, 남,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씨는 “오후 8시만 되면 손님이 없다. 위층에 학원이 있어 오후 9시에 수업이 끝나지만 다들 귀가하기 바쁘다”며 “조용한 동네여서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는 이영지(가명, 50대, 여,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씨는 “처음 보는 손님이 오면 유심히 보고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며 “물건도 좀 유심히 보게 되고 위험한 물건을 사는 사람인가 보게 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양역 근처에 있는 아파트 뒤편에는 평소 운동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서현역, 신림동 등에서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 이후로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박미경(가명, 57, 여,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씨는 “오전 11시쯤이면 항상 운동하러 나왔는데 최근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서 아무리 낮이라고 해도 겁이 나서 잘 안 나오게 된다”며 “신랑이나 아들이 퇴근해서 오면 나올까 생각도 해봤지만, 두 사람이 피곤해하니 안 나오게 됐다. 한동안은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인근에서 경찰들이 현장을 살피며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인근에서 경찰들이 현장을 살피며 근무를 서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23일 본지가 찾은 김포시 사우동의 한 번화가는 밤 시간대가 되자 사람이 거의 없이 한산했다. 번화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살펴봤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기영우(28, 남)씨는 “아르바이트 시간대가 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라 매일 불안해하면서 일하고 있다”며 “일단 손님이 들어오면 손에 이상한 걸 들고 있는지, 얼굴표정은 괜찮은지 살피게 된다”고 말했다.

기씨는 “우리나라는 해외에서도 범죄가 없는 나라로 평가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는 그런 말도 무색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에 있는 음식점 거리 분위기도 다른 곳과 비슷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전시환(가명, 50대, 남, 김포시 사우동)씨는 “정치가 불안하니 민생도 흉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여당도 야당도 서로 싸우지만 말고 민생 안정에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며 “정부를 믿고 안심하고 사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코로나19와 폭염, 폭우로 영업이 잘 안 돼 너무 힘든 상황인데 요즘은 이곳저곳에서 묻지마 범죄까지 벌어지고 있어 현실이 각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며 “오르던 매출이 다시 줄어 가겟세를 못 낼 정도다. 이뿐만 아니라 가게를 찾는 손님의 행동을 살피게 된다”고 토로했다.

사당역 인근에는 시간대 상관없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자신에게 일어날 상황을 대비해 운동이나 호신용품 등을 알아본 적 있다는 시민도 있었다.

백사라(30대, 여, 서울시 강남구)씨는 “성장 발달단계에 문제가 생기면서 외부로 물리적인 힘을 가하게 되지 않나 생각이 든다”며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라 요즘에는 길을 걸을 때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사람과 거리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김하영(20대, 여, 수원시 장안구)씨는 “묻지마 범죄 관련 방송을 보고 연이어서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니까 세상이 흉흉해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뚜렷한 게 없어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흡수 스프레이, 전기충격기 등 호신용품에 대해 알아봤는데 일반인이 어설프게 사용하면 오히려 범인의 심리 자극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도망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스피드 운동을 알아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미정, 노희주, 류지민, 송연숙, 이성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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