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방관들이 23일(현지시간) 티베르 지역에서 추락한 프리고진 대표의 항공기 잔해를 살피고 있다. (러시아 수사위원회)
러시아 소방관들이 23일(현지시간) 티베르 지역에서 추락한 프리고진 대표의 항공기 잔해를 살피고 있다. (러시아 수사위원회)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러시아 용병 기업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1) 바그너 그룹 대표가 러시아 서부 트베리 지역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러시아 군 수뇌부에 반란을 일으킨 지 두달 만이다.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은 하루 만에 러시아 대통령이 있는 수도 모스크바 턱밑까지 올라갔다가 극적 타협이 이뤄지면서 ‘일일 천하’로 일단락된 바 있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연방 당국은 모스크바 북서부 트베르 지역에서 추락한 비행기 탑승자들에 프리고진 대표가 포함됐다고 발표했다고 외신들이 이날 일제히 전했다. 러 국영 미디어인 러시아 24는 비행기 추락 현장에서 최소 여덟명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전했고, 러 국영 미디어도 비행기에 10명이 탑승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추락한 비행기 엔진 파편에 나타난 숫자는 프리고진 대표에 등록된 것과 일치한다. 즉, 공개된 영상에서는 불타는 엔진 파편에 등록 번호의 마지막 네 자리인 2795가 확인되는데, 이는 RA-02795로 등록된 프리고진 대표 소유의 비행기 번호와 같다.

러시아 수사위원회는 이번 비행기 추락 사건에 대해 형사 사건을 개시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번 사건을 러시아 연방 형법 제263조에 근거해 교통 안전 규칙 및 항공 운송 운영 위반 사항과 관련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국가 항공 당국 측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추락 사고의 상황과 원인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추락한 비행기는 비즈니스 운송을 전문으로 하는 MNT-Aero LLC 소유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사고와 연관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제게 이에 대해 물어봤던 것을 아마 기억할 것”이라고 CNN 기자에게 말했다. 이는 지난달 프리고진이 실패한 반란 이후 자신의 안전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고 말한 발언을 시사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뭔가 확실한 사실은 모르지겠만 놀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란 일으켰던 바그너는 어떤 단체?

바그너 그룹은 한때 우크라이나전에서만 최대 5만명이라는 용병들을 투입한 대규모 용병 기업이다.

그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 그룹 대표는 사기 혐의로 체포돼 복역한 범죄자로 알려졌다. 출소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에서 핫도그를 팔았는데, 이후 점점 사업 영역을 넓혀가며 고급 레스토랑을 차렸다. 이때 당시 부시장을 지내던 푸틴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러시아 정부와 군의 출장급식 사업을 도맡으면서 ‘푸틴의 요리사’로 알려지게 됐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지난 2011년 11월 11일(현지시각) 모스크바 외곽의 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음식을 건네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그가 이끄는 바그너 그룹도 5만명 중 약 4만명이 교도소에서 모집한 죄수 용병인 것으로 추산됐다. 러시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힘입어 지난해 중반부터 러시아 전역 교도소를 돌며 자칭 ‘특수군사작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6개월간 싸우고도 살아오면 사면과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하면서다. 당시 모집 대상에는 단순 사기와 강도뿐 아니라 살인과 강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죄수들도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그너 그룹은 동부 전선에서 일부 성과를 내면서 권력 실세로 떠올랐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전에도 일부 참여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외에도 지난 2015년 시리아에서 알 아사드 정권을 도와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했고, 말리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모잠비크·시리아·리비아 내전에도 참여하는 등 영향력을 지속 넓혀왔다.

리비아를 포함해 말리·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일대에선 다이아몬드·금 광산 사업까지 손을 뻗고 있다. 석유·가스·광산 산업 계약 등 이권을 노리며 이제 막 성장 가도를 밟고 있는 여러 개발국에서 체제와 정권 유지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다가 프리고진 대표는 돌연 수만명 규모의 용병들을 내세워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를 향해 총구를 돌리며 반란 사태를 일으켰다. 당시 무서운 속도로 북진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조차 뚫지 못했던 러시아 ‘심장’ 모스크바까지 단 하루 만에 뚫릴 뻔했지만, 양측이 한발씩 물러서는 극적 타협이 이뤄지면서 결국 ‘하루 천하’로 일단락됐다.

이후 반란을 일으킨 프리고진 대표는 오히려 러시아가 전술핵까지 배치시킨 혈맹국 벨라루스로 전방 이동했다. 반역자를 용서하지 않는 푸틴 대통령의 성향상 프리고진 대표를 암살할 가능성까지 제기됐었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장 반란을 일으킨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현지시간) 점령 중이던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철수하면서 주민과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최근 SNS에 공개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 대표의 다양한 변장 모습. (트위터)
최근 SNS에 공개된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62) 대표의 다양한 변장 모습.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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