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 보이스피싱 피해자처럼 취급”
“구색만 갖춘 특별법, 피해자들 기만”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23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시민사회 대책위원회와 피해자들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중 처벌과 은닉재산 환수를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24.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23일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시민사회 대책위원회와 피해자들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중 처벌과 은닉재산 환수를 촉구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8.24.

[천지일보 부산=윤선영 기자] 23일 피해자 210명에게 166억원 상당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대인 최씨의 첫 공판이 열린 가운데 피해자들이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엄벌을 촉구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해결을 위한 부산시민사회 대책위원회와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피해자 나모씨는 “최씨는 부산에서 감당하지 못할 임대사업을 벌여 피해자가 270여명에 달하고 피해액은 수백억원을 넘어간다”며 “임차인들에게서 가로챈 돈으로 온몸에 명품을 두르고 다니고 구속되기 바로 전까지도 아난티에서 유유자적 골프를 즐기는 등 고통 속에 있는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씨가 유죄판결을 받아도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참담하다”며 “피해자라는 사실이 낙인처럼 남아 직장에서는 연차도 쓰지 못하고 눈칫밥을 먹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니가 조심했어야지’ ‘그거 뭐 운다고 해결되나’ 등 2차 가해에도 시달리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직장을 위해서 연고 없는 타지 생활을 하고 있고 한 푼이라도 더 아껴보려고 전세대출을 이용해 보금자리를 옮겼다는 피해자 이모씨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에 법원에서 온 임의경매 통지서를 받고 평범했던 삶은 산산조각이 났다”고 괴로워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1시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모(53)씨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공판에서 진술 기회를 얻은 한 피해자는 “상견례 하루 전날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파혼하게 됐고,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백내장에 걸리는 등 삶이 회복 불가 상태에 이르렀다”며 재판부를 향해 법의 정의를 실현해달라고 호소했다.

최씨 일당이 소유한 오피스텔은 대부분 대학가와 청년 주거지에 자리하고 있어 피해자들 대부분이 20~30대 사회 초년생들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금액만 166억원에 이르며 계속해서 추가 고소장이 접수되고 있어 피해 규모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을 찾은 피해자들은 일제히 ‘선 구제 후 구상’을 외쳤다. 선 구제 후 구상은 공공이 피해자를 먼저 구제한 다음 집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피해주택을 매입하는 등의 방식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산지부 이동균 변호사는 “최근 피해 회복이 곤란한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부패재산몰수법상의 ‘특정사기범죄’의 유형에 ‘전세사기’를 포함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며 “올해 하반기 이후에 더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 보호를 위해 조속히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피해자 아버지는 호소문을 통해 “20대 초반의 어린 제 딸에게 1억원이라는 거금의 빚이 어느날 갑자기 도둑같이 찾아왔다”며 “무이자로 한 달에 약 70만원을 10년간 갚아야 하는 절망을 사회 초년생인 제 딸이 떠안게 됐다. 딸이 사기 당한 1억원을 지급해 주고 사기꾼과 그 친인척들의 재산을 환수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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