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노조법 2·3조 개정안 8월 국회 상정 않기로 합의
양대노총과 노조법 개정 운동본부 “거대양당, 직무유기”
“모든 노동자 일터·삶 지키기 위한 최소 권리 담고 있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처리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3.08.22.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계단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조법 2·3조 개정안 국회 처리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출처: 뉴시스) 2023.08.22.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이하나씨는 A은행 통합콜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다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해고됐다. A은행 통합콜센터 용역업체 변경 과정에서 입찰제안 시 ‘모든 상담노동자를 고용승계하겠다’던 B회사가 약속을 어겼다고 한다. 기준도 없이 5분의 면담으로 콜센터를 시작하면서부터 일하던 팀장을 포함한 4명의 장기근속자들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이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던 6명의 다른 상담사들까지 해고시켰다한다. 이씨는 8개월째 해고복직을 위해 투쟁 중이다.

어제(21일) 여야는 내달 있어질 임시국회에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노조법 2·3조 개정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1953년에 만들어진 현행 노조법 2조는 ‘근로자’나 ‘사용자’의 정의를 매우 협소하게 규정해 특수고용노동자나 하청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노동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범위를 확대해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 활동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이씨도 하청업체인 B회사가 해고했지만 일해오던 곳이자 원청인 A은행에 얘기해도 ‘권한이 없다’며 무시와 방관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3년이 넘는 시간을 24시간 낮이고 밤이고 A은행과 고객들을 위해 일해 왔다”며 “그럼에도 종이 몇 장의 계약으로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일면식도 없던 B회사에게 넘겨버리는 계약을 한 것은 누구냐. 원청인 A은행”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노동자들은 뼈 빠지게 일한 나의 일터를 ‘우리 회사’라 부를 수 없다며 “원하청 착취구조로 비정규직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법의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대노총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법 개정안 처리를 지연시키고 있는 거대양당의 직무유기를 강력 규탄한다며 국회가 이번 8월 임시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을 반드시 처리해달라고 거듭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노조법 2·3조 개정안 본회의 일정 합의조차 거부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하다는 이유로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하지 않기로 여당과 합의했다. 이에 대해 이들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며 국회의 입법논의를 막고 있는 국민의힘과 개정안 즉시처리 의지를 스스로 꺾으며 차일피일 법안 통과를 미루고 있는 민주당의 행태는 입법자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노조법 2·3조의 정당성을 알고 있음에도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비정규직을 만들어서 온갖 권한은 누리면서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재벌대기업의 무책임에 면죄부를 주려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의 억지를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민생’을 핑계 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라며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빼앗긴 임금 30%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당한 A은행 콜센터 노동자가 원청과 하청의 책임을 물으며 10여일이 넘도록 단식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민생이 아니고 무엇인가. 민생 핑계를 대고 있지만, 실은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노조법 개정안을 이용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대해선 “경제인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면책 T/F를 만들면서, 정당한 노조 활동을 한 건설노조 활동가들은 구속시킨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농성장 침탈에 항의한 금속노련 사무처장은 구속시키면서 횡령·배임·갑질폭력을 자행한 기업총수 12명은 사면한다”며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킬러법안’이라고 개악한다고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할 권리마저 존중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지켜질 수 있겠는가”고 비판했다.

이들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터와 삶을 지켜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담고 있다”며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고 공포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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