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시민, 개인 성금 모아
희생 많은 나주에 건립 결정
10월 말 제막실 가질 예정
“가해·피해 넘어 상생으로”

전남 나주시에 일본인들이 사죄 뜻을 담은 사죄비가 건립할 예정이다. 사진은 나주시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한일동학기행단이 지난 2019년 10월 30일 제1회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를 개최한 모습.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15.
전남 나주시에 일본인들이 사죄 뜻을 담은 사죄비가 건립할 예정이다. 사진은 나주시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한일동학기행단이 지난 2019년 10월 30일 제1회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를 개최한 모습.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15.

[천지일보 나주=서영현 기자]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동학농민군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 전남 나주시에 일본 측 참가자들의 사죄 뜻을 담은 사죄비가 건립될 예정이어서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희생자 추모 사죄비 건립은 동학을 연구하는 일본 지식인과 시민들이 일본군 학살 행위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십시일반 모은 성금으로 세워진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대표 나천수)는 지난 10일 나주시민회관에서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는 사죄비 건립의 역사적 배경과 경위, 건립부지 등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쿠스노키 비요키치(楠美代吉)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從軍日誌).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09.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쿠스노키 비요키치(楠美代吉)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從軍日誌).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09.

◆과거 동학농민군 학살한 일본

한일동학기행 한국 측 대표이면서 동학연구자인 박맹수 전(前) 원광대 총장은 기조 발표에서 항일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전라도 및 나주 일대에서 학살한 일본군의 만행에 관해 설명했다.

과거 1894년 7월 23일 일본군은 불법으로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점령했다. 이 사실이 전국 각지에 전해지자 ‘전주화약’을 계기로 자진 해산했던 동학농민군은 분노해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했으며, 녹두장군으로 유명한 전봉준 등 동학농민군 지도자는 1894년 10월 중순 전라도 삼례에서 ‘항일구국’을 기치로 제2차 기포를 단행했다.

이에 일본 대본영 참모차장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는 농민군에 대해 ‘모조리 살육할 것’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 기록은 역사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선 정부 요청 없이 대본영의 작전명령이 내려진 것은 당시의 근대 국제법과 조선 국내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나주에 35일간 주둔했던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가 자행한 동학농민군 학살의 구체적 실상은 제1중대(동로 부대) 제2소대 제2분대 소속 쿠스노키 비요키치 상등병이 남긴 종군일지에 상세하게 드러나 있다. 기록에는 ‘(나주성) 남문에서 약 400m 남짓 떨어진 곳에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고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나주동학 위상정립 및 한일 국가교류 협약 체결식.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15.
나주동학 위상정립 및 한일 국가교류 협약 체결식.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15.

◆일본의 양심, 살육 역사 밝혀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는 학자적 양심에 위배 된다는 취지로 일본군의 살육 역사를 밝히고 사죄비를 건립하고 싶다고 밝힌 일본인 학자의 요청 아래 일본인 위령비 건립을 나주시 행정에 요청했다. 나주시장과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박맹수 총장, 일본 동학 기행단 대표 이노우에 교수가 3자 MOU를 체결했고 그 후에 위령비를 세우기로 잠정 협의했다.

나주시와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한일동학기행단은 지난 2019년 10월 30일 제1회 나주동학농민혁명 한일학술대회를 개최했고 2020년과 2021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일국제영상으로 학술대회를 대체했다. 2022년에는 나카트라 아카라 교수 단장으로 위령비 건립 후보지 등을 답사했고 2022년 말 위령비 건립 시민 공감대를 위한 좌담회에서 일본 측이 가해자니 위령비 대신 사죄비로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여론 청취 하에 명칭을 변경했다.

나주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사죄비 건립부지는 (구)나주역 주변과 호남초토영이 있던 나주초등학교 인근으로 아직 검토 중이다.

추진위 관계자는 “오는 10월 29일 일본 측 동학 기행단이 방문해 10월 30일 사죄비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사죄비 건립 이후 일본인 측 순례 코스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또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뛰어넘은 한일 두 나라 시민들의 성숙한 역사의식으로 화해와 상생의 모델을 만든 세계적인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며 “일본인이 세우는 나주 사죄비가 세계적 명소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시민적 협조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사죄비 제막식은 오는 10월 30일 나주 죽림동 시민공원에서 시민의 날 행사 일환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전남 나주시가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건립을 위해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15.
전남 나주시가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비 건립을 위해 주민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23.08.15.

◆아픈 역사 치유하고 화해·상생

추진위는 ‘일본의 양심’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명예교수와 홋카이도대학 이노우에 카츠오(井上勝生) 명예교수를 주축으로 나주학회, 한일동학기행단 참가자들로 구성됐다. 한일동학기행단은 지난 2006년부터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의 제안을 통해 지난해까지 총 17차례에 거쳐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상호 답사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일본 측 교수들과 한일동학기행 참가자들은 사죄비 건립을 통해 일본군의 학살 행위에 대한 사죄의 뜻을 분명히 한다. 이를 통해 과거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나주를 거점으로 상생과 평화의 교류 관계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일본의 양심 있는 학자와 한일동학기행 참가자들이 나주에 세우려고 하는 사죄비가 화해와 상생이라는 나주의 발전적인 미래상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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