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단계뿐 아니라 설계·감리서도 철근 누락 드러나
무량판 적용 단지 주거동 전수조사에 주택업계 ‘촉각’
누적된 임직원 비위에 전관예우 겹친 LH ‘살얼음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ChatGPT 기사내용 요약.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GS건설에 비판이 쏠리며 건설업계에 충격이 퍼지고 있다. 사고는 철근 누락 사태로 시작되었으며, 설계, 감리 등에서도 심각한 부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사고로 인해 ‘무량판 구조’라는 공법이 문제화되고 있으며, 정부는 이 구조가 적용된 300여 개 민간단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거동의 점검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내부 부패 문제와 건설산업 이권 카르텔 의혹도 드러나며 건설업계와 LH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한 조사와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천지일보=이우혁 기자] 인천 검단 아파트 신축 현장의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가 건설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철근 누락이 적발되면서 시공사인 GS건설이 여론의 뭇매를 맞다가 설계·감리 등에서도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면서다.

또 사고 현장에 적용된 공법이 ‘무량판 구조’라는 게 알려지면서 ‘무량판 포비아’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해당 구조를 적용한 민간단지 300여곳을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다만 지하주차장 외 주거동까지 점검하겠다고 하면서 건설업계와 거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주처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조사 결과 누락 문제가 드러났고, 조직의 부패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LH는 5년간 300여건의 임직원 비위가 발생했고, ‘전관예우’ 등 문제가 있어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에 대한 퇴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천지일보=윤신우]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주요 일지. (사진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 2023.08.16.ⓒ천지일보 2023.08.16.
[천지일보=윤신우]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주요 일지. (사진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 2023.08.16.ⓒ천지일보 2023.08.16.

◆인천 검단 붕괴… 시공사는 ‘뭇매’

발단은 지난 4월 29일 오후 11시 30분경 인천 검단신도시의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붕괴하면서 시작됐다.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될 예정이었던 상부가 주저앉으면서 지하주차장 1층이 무너졌고, 그 하중으로 지하 2층까지 붕괴했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 후 시공사였던 GS건설 컨소시엄(동부건설, 대보건설)에 질타가 이어졌다. 인천시장과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면에 나서 “발주청인 LH와 시공사인 GS건설은 무거운 책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때만 해도 건설업계에 만연한 ‘날림 시공’을 원인으로 봤기에 시공 과정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이후 서울시는 ‘부실 공사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건설공사 전 과정을 영상 기록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현재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을 필두로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2023.7.6 (출처: 연합뉴스)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시공사인 GS 건설이 5일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에 대한 전면 재시공 계획을 밝혔다. 재시공 계획 단지는 총 17개동, 1천666가구에 달한다. 6일 촬영한 GS건설의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지난 4월 사고가 발생한 구역이 가려져 있다. 2023.7.6 (출처: 연합뉴스)

◆보강철근 누락… 설계·감리 ‘총체 부실’

사고 후 국토부 조사가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로 확대되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현장에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또 시공사는 물론 설계사와 감리, 발주처도 제 역할을 못 한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이 발생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사조위는 지난 5일 특별점검결과 발표를 통해 현장에 무량판 구조가 사용됐고, 그 과정에서 사용돼야 하는 보강 철근인 ‘전단보강근’이 누락됐다고 설명했다. 지하주차장에는 기둥마다 보강 철근이 설치돼야 했다. 하지만 설계 도면에서부터 32개 중 15개 기둥에서 전단보강근이 누락됐다. 또 추가 누락이 적발되면서 최소 19개 기둥(60%)에서 보강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무량판 구조는 내부 공간을 더욱 여유롭게 사용하기 위해 ‘내력벽’이나 ‘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때 천장의 하중을 기둥으로 분산시켜줄 전단보강근이 필요하다. 만약 전단보강근이 누락될 경우 천장이 자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할 수 있다.

또 설계 기준보다 30% 약했던 콘크리트 강도와 조경 공사 과정에서 토사(2.1m)를 설계상 높이(1.1m)의 2배 수준으로 쌓은 것도 붕괴를 초래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문제는 시공 과정 외에도 설계 단계에서부터 전단보강근이 누락됐다는 것이다. 시공사는 설계대로 시공하지 않았고, 그 설계마저도 부실했다.

아파트를 설계한 유선엔지니어링건축사무소와 감리를 맡은 목약종합건축사무소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발주처인 LH도 설계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사고 직후 발주처와 시공사가 몰매를 맞았지만, 설계 오류도 적발되면서 결국 총체적인 부실로 결론 난 셈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3일 오전 지하 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 중 하나인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전단보강기둥이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 2023.08.03.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3일 오전 지하 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 중 하나인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 보강 공사를 위한 전단보강기둥이 설치돼 있다. ⓒ천지일보 2023.08.03.

◆‘무량판 포비아’ 확산 中… “주거동은 무관”

사고 현장에 무량판 구조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량판 포비아(무량판 공포증)’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는 민간아파트 지하주차장은 물론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주거동까지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건물이다.

지난 3일 국토부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민간 아파트 293개 단지의 안전 점검을 내달 말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전문기관을 투입해 지하주차장뿐 아니라 주거동까지 제대로 설계됐는지 확인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주택건설업계는 반발했다. 주거동에 적용된 무량판 구조는 지하주차장처럼 순수한 의미의 무량판 구조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주거동은 내력벽이 상부 하중을 분산하는 벽식과 무량판이 섞인 복합 구조이고, 주차장보다 면적이 좁기 때문에 사실상 벽식 구조에 가깝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그래픽] 아파트 바닥구조 비교. (출처: 연합뉴스)
[그래픽] 아파트 바닥구조 비교. (출처: 연합뉴스)

정부가 나서서 무량판 구조를 장려한 부분도 지적받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5년 ‘장수명(長壽命) 주택’ 인증제를 도입하면서 무량판 구조에 인센티브를 줬다. 특히 지난 2017년 이후 부활한 분양가 상한제에선 ‘완전 무량판(+5%)’ ‘복합 구조(+3%)’ 등에 가산점을 주기도 했다. 이에 건설사들은 무량판 구조를 단지에 적용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는 물론 집안 내부를 가벽으로 꾸며 구조변경이 쉽다고 홍보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무량판 구조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가 철근 누락을 점검하면서 콘크리트 강도 조사까지 병행함에 따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지력이 충분할 경우 전단보강근을 추가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를 지적하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무량판 아파트에는 이미 15만 세대가 거주하고 있고, 10만 세대는 공사 중인 단지를 기다리고 있어 입주민과 청약 당첨자들의 불만도 거셌다. 당정은 입주 예정자에게는 재당첨 제한 없는 계약 해지권을 주고, 입주민에게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손해배상을 하기로 했지만,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경기도 화성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현장을 방문, 현장의 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2023.8.9 (출처: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경기도 화성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현장을 방문, 현장의 안전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2023.8.9 (출처: 연합뉴스)

◆‘보고 누락’ ‘전관예우’에 도마 오른 LH

무량판 포비아는 급기야 LH의 내부 부패 척결로 확산했다. LH 조사 결과에서 누락이 계속 발생했고,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건설산업 이권 카르텔’이 지목되면서다. 실제로 붕괴한 인천 검단 아파트의 설계와 감리는 LH 퇴사자가 있는 전관 업체가 맡았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LH 무량판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 철근이 누락된 단지가 7월 말 발표(15곳)보다 5곳 늘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단지도 10곳에서 11곳으로 추가됐다. 내용이 추가된 이유는 LH가 목록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철근이 누락됐지만 5개 미만이고, 즉시 보강을 완료해 안전에 우려가 없다는 게 LH 측의 주장이다.

이 사장은 결과에서 빠지거나 추가 조사 대상이 나오는 배경으로 ‘내부의 보고 문제’를 꼽았다. 조직이 커지는 과정에서 소통이 단절됐고, 임의로 명단을 조작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대대적인 조식 혁신을 추구하겠다며 5명 임원의 사직서를 받았고 4명을 사직 처리했다. 다만 이 중 2명은 지난달 임기가 이미 끝났고, 2명은 내달 말까지라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사장 본인은 정부의 뜻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한 상황이다. LH의 임원은 이한준 사장을 포함해 7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한준 사장이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사장 주재 회의에서 최근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임직원들의 비리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LH 임직원들은 5년 새 300건에 달하는 문제로 징계받았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의원이 LH에서 받은 징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이후 올해 8월 1일까지 LH 임직원의 내부 징계는 299건이다. 처벌 수위가 가장 낮은 견책이 160건, 감봉 58건, 정직 32건, 파면 24건, 해임 18건, 강등 7건 등이다.

특히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로 지목되는 ‘전관예우’를 척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LH 역시 마찬가지다. 국회 국토위 소속 박정하 의원이 LH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LH는 18개 전관 업체와 2020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77건 2335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계약은 모두 타 업체와 경쟁 없이 따낸 수의계약이었다. 이들 업체는 붕괴한 인천 검단 아파트를 포함해 16개 단지의 설계·감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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