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천지일보=이예진·홍수영 기자] 전쟁 종식을 위해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든다는 것은 어쩌면 모순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통하던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영화가 우리를 찾아온다. 바로 ‘오펜하이머’다.

15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는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으로 많은 팬층을 보유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것으로 핵물리학자인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불안해하는 모습부터 마지막 스트로스의 청문회까지 오펜하이머를 몰랐던 사람이라도 그의 일대기를 알 수 있게 구성했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의 연출에서 특이점은 크로스토퍼 놀란 감독 특유의 시간 흐름이다. 러닝타임 180분을 거의 균등하게 1시간씩 3분할로 나눴다. 처음 1시간은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부터 원자폭탄을 만들어가기 위한 이론을 쌓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이 가운데 놀란 감독은 원자폭탄을 구성하는 원자 등의 과학적인 원리를 관객들이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각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후 1시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전쟁 직전 독일 물리학계로부터 우라늄의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이에 모든 과학자들의 머릿속에는 이를 통해 폭탄을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치로부터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의 물리학자들은 나치로부터 핵폭탄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사로잡힌다.

이에 미국에서는 뉴멕시코주의 허허벌판에서 군인들과 과학자들을 모아놓고 핵폭탄을 만드는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여기서 오펜하이머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과학자들을 가운데서 중재하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3년 만에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제2차 세계대전은 끝이 나게 된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를 보기 전 단순히 ‘맨해튼 프로젝트’에 대한 영화로만 생각했다면 마지막 1시간은 의외의 시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마지막 1시간은 인류를 구원한 영웅에서 과거 이력이 낱낱이 파헤쳐지며 수치스러울 정도로 까발려져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를 시기 질투했던 루이스 스트로스로 인해 청문회에 서게 된 오펜하이머는 과거 공산주의자들과 함께했던 행적들이 밝혀지면서 공산주의자로 매도당한다. 이는 그의 지인들 중에 공산주의자들이 많기도 했으며 그의 전 연인과 현재 와이프 역시 공산당에 몸 담았기 때문이었다.

또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제조를 반대했고 이것이 그를 더욱 공산주의자로 만들게 했다. 바로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엿볼 수 있다. 이후 그의 오해는 풀리게 되지만 오펜하이머의 영웅적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이처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의 전기를 다루며 총 3시간의 러닝타임을 거의 균등하다시피 나눴다. 하지만 이러한 플롯 외에도 또 다른 연출이 있으니 세 가지 시점이 교차되면서 극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바로 오펜하이머의 젊은 시절부터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뤄가는 과정과 이후 그를 매도하는 청문회 과정, 마지막으로 오펜하이머의 청문회를 끌어낸 스트로스의 청문회 과정이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제공: 유니버설 픽쳐스)

놀란 감독의 작품을 여태껏 본 팬들이라면 이 연출이 낯설지는 않다. 전작인 ‘덩케르크’에서도 놀란 감독은 3가지 시점으로 연출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더욱 이 연출이 빛을 발하는 것은 스트로스 청문회 과정을 흑백으로 연출하면서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는 점이다. 덕분에 관객들은 장장 3시간의 러닝타임을 화려한 CG 없이도 지루하지 않게 극을 따라갈 수 있다.

또 영화를 웰메이드로 만드는 것은 놀란 감독의 연출력도 있지만 배우들의 돋보이는 연기다. 특히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킬리언 머피는 핵폭탄으로 인해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복잡한 모습을 마치 오펜하이머가 돌아온 것처럼 그대로 구현해냈다. 연기뿐만이 아니라 외형적인 모습까지도 복사, 붙여넣기 하듯 만들어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와 대립하는 인물인 스트로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역시 조용하면서도 뒤에서 일을 꾸미는 모략가와 같은 모습을 보이며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이처럼 놀란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영화 ‘오펜하이머’는 글로벌 흥행 수익 6억을 돌파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아이맥스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하루만에 매진 사태를 불렀고 개봉 전날 사전 예매 50만장을 돌파하면서 국내 극장에도 흥행의 바람이 불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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