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자살·폭력·조현병 등 관련”
“더위로 인한 수면장애 영향 커”
무더위에 온라인 증오발언도 ↑
“올 3분기 사회불안지수 최고치”

지난 8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시내에서 높은 생활비와 새로운 세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한 활동가가 경찰에게 체포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8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시내에서 높은 생활비와 새로운 세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한 활동가가 경찰에게 체포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여름이 채 절반도 지나기 전에 세계가 역사적으로 더운 날씨를 맞이했다. 이는 섭씨 1도 정도의 지구 온난화에 따른 결과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지구는 이보다 3배 이상 더워질 수 있다는 경고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더위는 특이한 종류의 살인자다.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토네이도, 홍수, 지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위로 인한 사망자가 더 많다. 그러나 더위로 인한 피해는 훨씬 더 복잡하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기분이 그것이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이라고 한다.

◆“폭염-정신 연관 연구, 초기단계”

치솟는 기온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폭염이 더 강렬해지고, 더 빈번해지고, 더 길어짐에 따라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고 진단한다.

과학자들은 불안, 공포, 슬픔, 수치심, 죄책감 등 우리 주변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유발되는 다양한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기후 고통(climate distress)’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미국 정신의학회 기후변화 및 정신 건강 위원회 위원장인 조슈아 워첼 박사는 지난 10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폭염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질적인 인식이 생긴 것은 5년 전에 불과하다”며 “이 연관성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기본적인 생물학과 관련한 우리의 이해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작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도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 상승, 이재민 발생, 기근, 경제 및 사회적 손실 등이 깊은 불안, 슬픔, 스트레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보고서는 어린이, 청소년, 노인, 만성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특히 취약하다고 했다.

◆더위가 방해한 수면, 정신 피해 입혀

고온이 자살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근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대학 연구팀은 랜싯 지구 보건에 발표한 논문에서 “월 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자살 발생이 1.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더위가 폭력 범죄와 공격성 증가, 정신 장애로 인한 응급실 방문 및 입원, 특히 조현병, 치매, 정신병 및 약물 사용 환자의 사망 증가와도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NYT는 최근 연구에 따르면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정신병, 치매 또는 약물 사용 환자의 사망 위험이 거의 5% 증가한다고 전했다. 살인을 포함한 대인 폭력은 약 4~6% 증가했다.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과 정신 건강 장애 사이의 연관성과 관련, 다양한 생물학적 설명을 덧붙이는데 이 중 반드시 언급되는 것은 ‘수면 장애’다.

쾌적한 휴식을 취하려면 실내 온도가 20도 이하가 돼야 하지만 열대야가 기승인 밤에는 사람들이 더 늦게 잠들고 더 일찍 일어나며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더운 방에서 며칠 또는 몇 주 동안 잠을 자면 당뇨병이나 심장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 악화할 뿐만 아니라 정신 장애, 자살 위험, 기억력, 기분, 인지 기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후 정신의학 연합의 회장인 로빈 쿠퍼는 지난 5월 미국 타임지에 “수면은 매우 복잡한 기능이며 숙면이 부족하면 정신 건강에 여러 영향을 미친다”며 수면 장애가 양극성 장애 환자의 조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텔아비브=AP/뉴시스] 지난 7월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 권한 축소 입법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열렸다.
[텔아비브=AP/뉴시스] 지난 7월 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개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경찰이 쏘는 물대포를 맞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부 권한 축소 입법을 강행하자 이에 반대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열렸다.

◆약물이 체온유지 능력 손상하기도

또 하나는 기분, 불안 및 우울증과 관련된 신경 전달 물질인 세로토닌의 영향이다. 햇빛과 열이 증가하면 세로토닌 수치가 상승하면서 기분 변화, 공격성, 과민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항생제, 베타차단제, 일부 항우울제, 항히스타민제 등 널리 사용되는 다양한 약물은 체온을 감지하고 조절하는 신체의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널리 사용되는 리튬과 정신분열증, 우울증 및 양극성 장애에 처방되는 일부 약물들은 땀을 흘리고 몸을 식히는 신체의 능력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있다.

휴스턴 베일러 의과대학의 정신과 전문의 아심 샤 박사는 NYT에 “극심한 더위와 땀은 체내 리튬 수치를 독성 수준으로 끌어올려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간접적인 경로로는 더위가 작물에도 영향을 미쳐 영양소 결핍으로 인한 신경 발달 장애 등 정신과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워첼 박사는 지적했다. 더운 날씨에 일부 작물은 아연, 철분 등 영양소를 덜 흡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폭염으로 진드기와 같이 정신과적,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병원균을 옮기는 질병 매개체의 활동 범위도 넓어지는 양상이다. 극심한 더위는 알레르기 원인물질(알레르겐)과 오염 물질을 증가시키고 공기의 질을 악화해 불안과 우울증도 유발할 수 있다.

◆더위에 식량위기·고물가 겹쳐 위기↑

정신 건강이 악화하는 개인이 많아지면 사회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먼저 폭염은 온라인과 SNS 등에 올라오는 혐오성 발언에도 영향을 미쳤다. 작년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에 따르면 기온이 41도를 넘어설 때 트위터에서 증오 발언이 최대 22%까지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27도 이상의 기온은 모든 기후대에서 온라인 혐오의 상당한 증가와 일관되게 연관돼 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올해 기온이 상승한 사실도 사회 불안을 부추겼다는 보도도 나왔다. 2013년 사이언스지에 실린 미국 스탠퍼드대학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온이 평년보다 단 1도만 상승해도 소요 발생 빈도가 15% 가까이 높아졌다.

지난달 더 이코노미스트는 사이언스지의 연구 결과를 인용, 온도 변화를 대략 계산하면 6~7월 무더위로 전 세계에 폭력적인 사회 불안의 위험이 50% 정도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매체에 따르면 위기관리 자문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는 올해 3분기 세계 사회 불안 지수가 2017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회사의 히메나 블랑코 수석 분석가는 더위와 높은 생활비 문제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역사적으로 기온이 높아지면 사회 불안이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는 식량위기와 고물가 등 악재가 줄줄이 겹쳤다는 설명이다.

세계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지났고 국제 곡물 가격은 작년 최고치보다 낮아졌으나 이상기후로 인해 물가 상승은 좀처럼 멈추지 않는 양상이다.

특히 국제 쌀값은 2008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태국 쌀 수출업자 협회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 9일 보도했다. 전 세계 쌀 수출의 약 40%를 담당하는 인도는 올해 극심한 폭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인도 정부는 바스마티 품종을 제외한 나머지의 쌀 수출을 금지했다. 반면 두 번째로 큰 쌀 수출국인 태국은 엘니뇨의 여파로 건조한 날씨가 지속된 데다가 주요 도시의 누적 강우량이 평년보다 40% 낮아 쌀 생산량에 차질을 빚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케냐와 인도, 이스라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에선 이미 사회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올해는 ‘길고 더운, 불편한 여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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