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에 비해 상담률 ‘저조’
캐나다·미국 등 韓의 3배 이상
치료 중단 정신질환자 ‘고립’
지역사회 지원체계 강화 필요

9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올해 초 발표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1’을 보면 국민 3~4명 중 1명은 정신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지만, 진단을 받은 사람 중 12%가량만 전문가 상담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 연합뉴스)
9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올해 초 발표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1’을 보면 국민 3~4명 중 1명은 정신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지만, 진단을 받은 사람 중 12%가량만 전문가 상담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잇단 흉악범죄로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강화 필요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인 3~4명 중 1명은 불안이나 우울, 알코올 사용장애 같은 정신장애를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진단을 받은 사람 중 12%가량만 전문가 상담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치료를 끊은 정신질환자들의 경우 고립된 채 증상이 악화할 수 있으므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찾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사회로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9일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올해 초 발표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21’을 보면 조사 대상인 만 19~79세 중 2021년 연말을 기준으로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장애(알코올 사용장애, 니코틴 사용장애, 우울장애, 불안장애)를 앓은 적 있는 사람의 비율(정신장애 평생유병률)은 27.8%였다. 성인 3~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셈이다. 유병률은 남성이 32.7%로 여성 22.9%보다 높았다.

정신장애 진단도구(K-CIDI)를 통해 평생 한 번이라도 이런 정신장애 진단을 받은 적 있는 사람 중 정신건강전문가(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등 의사,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간호사)와 상담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의 비율은 12.1%에 불과했다.

이런 비율은 선진국에 견줘 현저하게 낮았다. 캐나다(46.5%), 미국(43.1%), 벨기에(39.5%), 뉴질랜드(38.9%)는 평생이 아닌 최근 1년간 상담 경험률로 봐도 한국의 3배 이상이었다.

비교적 낮은 편인 일본(20.0%)과 비교해도 한국은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전체 인구 중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3.0%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2021년 만 15세 이상 인구 중 정신질환(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 기준 치매 제외 F코드진료) 진료를 받은 사람의 비율은 인구 10만명 당 5125명 꼴이었다. 입원환자 5만 9412명 중 타의에 의해 입원(비자의 입원)한 사람은 2만 299명으로, 전체 입원환자 중 차지하는 비중(비자의 입원율)은 34.8%였다.

‘비자의 입원율’은 2015년 65.2%, 2016년 61.6%였지만, 2017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이 시행돼 강제 입원이 까다로워지면서 2017년 37.9%, 2018년 33.5%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다만 이런 비율은 2019년 32.1%까지 떨어진 뒤에는 2020년 33.6%, 2021년 34.8%로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정신병원에 중증 정신질환자로 입원했다가 퇴원한 사람 중 40% 가까이는 퇴원 후 한 달 내 의료기관에 외래방문을 하지 않았다. 중증정신질환자(치매 제외) 중 퇴원 후 1개월 이내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외래 방문을 한 사람의 비율은 63.3%였다. 나머지 36.7%는 증상이 중증인데도 외래진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환자의 복약상태와 안부 등 사후 관리에 구멍이 컸다. 중증 정신질환자의 31.8%는 퇴원 후 석 달 이내에 재입원(동일 병원, 다른 병원 모두 포함)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외래 치료를 받던 정신질환자들이 스스로 치료를 중단하고 의료기관과 정부, 지역사회에서 고립돼 ‘은둔형 외톨이’인 채로 증상이 악화할 때까지 방치되는 게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역사회에서 발견된 치료 중단자를 위한 ‘외래치료지원제도’를 2020년 도입한 바 있다. 자해·타해 행동으로 입원 또는 외래 치료를 받다가 중단한 정신질환자를 발견하면 심의위원회 판단을 거쳐 최대 1년간 외래 치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외래치료지원제가 시행된 이후 3년간 전국의 지원대상자 수는 2020년 20건, 2021년 32건, 2022년 64건에 그쳤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치료 중단자들에 대해 더 편히 자발적으로 찾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사회로 끌어내고, 일자리 등 적응까지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 단장인 기선완 가톨릭관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정신건강복지센터 외에도 포괄적으로 환자를 돌봐주는 지역사회 체계가 필요하다”며 “일상생활을 돕고 직업기술 등도 가르쳐주는 다양한 기능의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학업과 구직 활동, 단체생활을 시작하는 10∼20대의 낮은 연령대에서 발병이 빈번한 만큼, 이들의 병원 밖 사회활동과 인간관계 구축 지원이 적극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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