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손 없는 아이로 태어나
母가르침 “너만의 인생 살라”
‘장애인’이라며 천대받았지만
굴하지 않고 ‘당당한 삶’ 노력

남편·아이와 행복한 생활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과 사별
‘강사’의 꿈 찾아 역경 이겨내
“장애인자립 가능한 사회바라”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강사’의 꿈을 이룬 정은경 강사가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 한국재능봉사단) ⓒ천지일보 2023.08.09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강사’의 꿈을 이룬 정은경 강사가 사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공: 한국재능봉사단) ⓒ천지일보 2023.08.09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솔개는 40살이 되면 선택을 해야 합니다. 모든 털을 뽑고 발톱을 뽑고 부리를 뽑아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 30살을 더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하는 선택입니다. 제가 40살 초반에 인생의 파도가 오는데 쓰나미처럼 왔습니다. 솔개 영상을 매일 보면서 내 꿈을 위해서 인생의 벽을 뚫어가며 노력해왔습니다. 저는 장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음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솔개와 같은 선택의 기로 속에서 살기를 택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았던 온갖 차별과 천대 속에도 굴하지 않았고 당당하게 살면서 행복한 가정까지 꾸린 그였지만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또 다른 큰 시련 앞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피나는 노력 끝에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는 강사로 다시 태어났다. 이는 정은경 강사가 살아온 삶이고 그가 품은 꿈에 대한 이야기다.

정 강사는 1970년 3월 3일 태어났다. 당시에는 장애인을 ‘집안의 수치’라고 여겼던 시절이었기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집밖에 내보내지 않고 골방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 강사의 모친은 달랐다. 모친은 그에게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은 얼굴이 (사람마다) 다르듯 다른 것이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동요하지 말고 너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라”고 가르쳤다.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강사’의 꿈을 이룬 정은경 강사의 어린시절 사진. (제공: 정은경 강사)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강사’의 꿈을 이룬 정은경 강사의 어린시절 사진. (제공: 정은경 강사)

모친의 가르침 덕분에 정 강사는 누가 뭐라고 하든 당당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도 일반 초등학교에 들어가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고, 체육 등 각종 활동에도 모두 똑같이 참여했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에게 이유 없이 맞은 적이 많았어요. 동네 어르신들은 저를 두고 ‘쯧쯧쯧’ 혀를 차며 ‘얼굴은 이쁜데…’라고 얘기하면서 조상이 어떻고 부모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했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사람들이 ‘장애인은 못살아, 더러워, 불쌍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서 ‘장애인은 더럽지 않다. 못살지 않는다. 불쌍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살았어요.”

정 강사는 학교를 졸업한 뒤 ‘성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하다가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달달 외울 정도로 많이 봤다. 여자로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많이 읽었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이때까지 무엇을 해야 할지 꿈을 찾지 못했다. 정 강사는 25살에 물리치료사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남편을 도와 물리치료사 보조로 근무를 했는데 하루는 한 환자가 “정 선생, 고마워요”라고 인사를 하고 갔다. 그 순간 ‘바로 이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스포츠마사지, 체형관리 등의 자격증도 땄다.

2004년도엔 혼자서 의료기 매장을 차렸다. 3년 정도 뒤부터 단골도 확보하게 됐다. 수입은 남편 월급보다 많아졌다. 정 강사는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었다.

정 강사는 “2008년도에 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에 입학해 공부했다”며 “더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정말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았다”고 말했다.

정은경 장애인식개선 강사가 유튜브 채널 나녹북카페에서 ‘그러니까 당신도 가슴펴고 살아’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나녹북카페 방송화면 캡처) ⓒ천지일보 2023.08.08.
정은경 장애인식개선 강사가 유튜브 채널 나녹북카페에서 ‘그러니까 당신도 가슴펴고 살아’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나녹북카페 방송화면 캡처) ⓒ천지일보 2023.08.08.

하지만 그에게 또 다른 인생의 시련이 찾아왔다. 그는 “2012년도부터 인생의 파도가 오는데 쓰나미처럼 왔다. 남편이 그해 12월 30일 새벽 뇌출혈로 쓰러졌다”며 “남편의 수술을 마친 의사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나한테 온 대가가 이거였어? 나는 남한테 10원 한 장 바라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2년간 투병생활을 했던 남편은 2014년 12월 28일 하늘나라로 갔다”며 “남편이 없는 세상은 너무 무서웠다. 나는 그때 그만 살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정 강사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비전(꿈)이 있었다”라고 답했다. 그는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고 남편이 없는 이곳에서 하루도 살기 싫었던 나는 ‘무엇을 할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꿈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 강사는 “나는 어릴 적부터 친구들 앞에 나서서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멋진 강사가 돼 전국으로, 전 세계로 다니면서 강의하는 것을 꿈꾸게 됐다”며 “장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사가 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정 강사는 과감하게 생업을 내려놓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 유명하다는 한 강사를 찾아갔다. 그리곤 다짜고짜 강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 유명 강사는 “강사가 되기 위해선 직접 저술한 책이 있어야 한다”면서 “책이 없다면 인터넷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해줬다.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강사’의 꿈을 이룬 정은경 강사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 정은경 강사) ⓒ천지일보 2023.08.08.
한쪽 손이 없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며 ‘강사’의 꿈을 이룬 정은경 강사가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제공: 정은경 강사) ⓒ천지일보 2023.08.08.

정 강사는 전자기기를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배워가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6개월가량 글을 썼을 때 글을 본 사람으로부터 첫 번째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때 정 강사는 책이 없어도 강의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강사로 활동하고 있을 때 천안인생극장의 심현용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천안인생극장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170석을 자신의 무대로 생각하고 강의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천안에 오게 됐고 메타버스와 라이브방송도 배워 장애인식개선 강사, 메타버스 강사, 동기부여 강사, 라이브방송 캐스터로 활동하게 됐다.

정 강사는 자신이 그랬듯 장애인 각자마다 지닌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일자리 창출’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장애인이 태어나면 부모들은 ‘이 아이가 자신의 밥벌이를 하고 살까, 이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말한다”며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정 강사는 “어떤 발달장애인은 노래를 잘하고 또 어떤 장애인은 춤을, 영어를, 일어를, 그림을 특출나게 잘 한다”며 “장애인들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특출난 능력에 대해 ‘장애인은 못해’라면서 사장시키는 것이 아닌, 살려줄 수 있는 기업이 많이 나타나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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