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최혜인 기자] 대서(大暑)를 지나 어느덧 8월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태풍의 계절’이 찾아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장마가 끝난 이맘때 태풍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릴 때면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부터 관심이 쏠린다. 태풍이 강풍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폭우까지 함께 몰고 오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최근에 발생했던 5호 태풍 ‘독수리’가 바로 강풍과 폭우를 함께 몰고 온 경우다. 태풍 이름이 친숙한 것은 독수리(DOKSURI)가 태풍위원회 14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제출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태풍 독수리는 맹수이자 ‘하늘의 제왕’이라는 이름처럼 그 위력도 대단했다. 독수리의 진행 경과를 보면 이렇다.
지난달 20일 필리핀 마닐라 동쪽 약 1300㎞ 부근 해상에서 태풍으로 발달해 무서운 속도로 올라왔다. 그리고 나흘 만인 24일 오후 3시 기준 중심기압 945hPa, 최대풍속 초속 45m, 시속 162㎞로 마닐라 동북동쪽 약 590㎞ 부근 해상에서 강도 ‘매우 강’으로 세력을 키웠다. 지난해 한국을 물바다로 만들었던 제11호 태풍 ‘힌남노’와 비슷한 세기(제주 최근접 시 945hPa)다.
일반적으로 태풍의 최대풍속 ‘25㎧ 이상 33㎧ 미만’을 강도 ‘중’, ‘33㎧ 이상 44㎧ 미만’을 강도 ‘강’, ‘44㎧ 이상 54㎧ 미만’을 강도 ‘매우 강’, ‘54㎧ 이상’을 '초강력'으로 본다. ‘초강력’은 건물이 붕괴하는 수준, ‘매우 강’은 사람이나 바위가 날아갈 정도의 세기, ‘강’은 기차가 탈선할 정도의 세기를 가진다.
힌남노처럼 많은 수증기를 안고 온 독수리는 필리핀·대만을 강타한 데 이어 중국까지 3개국을 비바람으로 휩쓸었다.
가장 먼저 태풍을 만난 필리핀에서는 수도 마닐라 인근에서 강풍에 놀란 승객들이 한쪽으로 몰려 소형 여객선이 전복, 25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폭우로 산사태까지 발생해 어린이 3명과 여성 1명 등 일가족과 17세 청소년이 매몰되는 등 1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카가얀주에서는 1만 6000여명이 집에서 나와 긴급 대피하고 학교 수업과 출근이 모두 중단됐다.
필리핀에 이어 대만도 태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대만 전역에서 18만 6000가구가 정전을 겪어야 했고 동부와 남부 지역에서는 1m 이상의 강우량이 기록됐다. 이와 함께 300편 이상의 국내외 항공편이 끊겼고, 대만 남부와 동부 사이의 철도 서비스도 중단됐다.
또 남부 지역의 사업체들과 학교가 문을 닫았고 산사태와 홍수 경고가 내려졌다. 또 대만의 펑후섬과 킨먼섬에 ‘허리케인급 바람’ 경보가 발령됐고 주민들은 시속 155㎞ 이상의 돌풍을 대비하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태풍으로 세계에서 가장 국제무역이 활발한 항로 중 하나인 대만해협이 막히면서 선박과 항공편 운항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필리핀과 대만을 차례로 강타한 독수리는 강도 ‘강’을 유지하며 중국까지 강타했다. 집계된 이재민만 90만명에 달하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12년 만에 폭우 최고단계인 ‘적색경보’를 발령했다. 베이징에도 폭우로 열차 운행과 서우두 국제공항의 항공편이 일부 취소됐다.
베이징시에서도 관광지와 공원이 폐쇄됐고 홍수 위험지역 주민 3000여명이 대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수리는 지난달 29일부로 소멸했지만 태풍이 몰고 온 수증기는 그 이후로도 많은 비를 뿌렸다.
이제는 제6호 태풍 ‘카눈’이 올라오고 있다. 카눈은 일본 오키나와를 지나 대만 방면을 통해 중국에 상륙할 것으로 전망된다. 태풍의 세기도 ‘매우 강’까지 발달해 제주도까지 그 영향이 미칠 것으로 관측됐다.
그러나 이제 고작 6번째 태풍이다. 지난해 25호 태풍까지 발생한 만큼 올해도 20여개의 태풍이 추가로 아시아를 덮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로 지하주차장 침수 등 물바다가 되면서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 적 있는 만큼 철저한 사전 대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