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경제 어려워 감세 옳아”
K-콘텐츠, 반도체급 세제지원
신성장 원천기술 대상도 늘려
물가연동제 폐지해 주류 안정
주택청약 소득공제 한도 확대
“낙수효과, 기대에 못 미칠 것”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정부가 27일 ‘202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가운데 감세 기조를 유지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세제개편처럼 법인세, 부동산 관련 세금을 대폭 줄인 정도는 아니지만 민간, 시장을 중심에 둔 과세 기조를 바꾸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세제지원의 대상이 여전히 부유층에 쏠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일 벗은 세법개정안,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 상황이 어려울 때는 세금 부담을 줄여 기업, 중산·서민층의 투자나 소비 여력을 확보해 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5월까지 국세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36조 4000억원 줄었다. 이에 따라 올해 ‘세수펑크’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감세 지속이 가져올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 목소리도 높다.

기재부는 ‘2023년 세법개정안’에 따라 세수는 4719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기재부 추정치는 직전 연도 대비 세수효과를 계산하는 순액법 기준이다. 정정훈 기재부 세제실장은 “(2023년을 기준연도로 잡고 세수효과를 계산하는) 누적법 기준으로는 5년간 3조 702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2023년 세법개정안에서 세수감소 요인은 자녀장려금 확대, 출산·보육수당 비과세 확대 등에 따른 것이다. 2024년 세수가 마이너스(-)7546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이 중 대부분이 소득세(-7415억원)가 차지했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자녀장려금 소득상한 금액은 기존 4000만원에서 7000만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된다. 최대지급액도 자녀 1인당 8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자녀장려금 확대에 따른 세수효과는 -5300억원, 출산·비과세 확대는 -642억원으로 예상됐다.

세수증가 요인도 있다. 기재부는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규정 합리화가 세수를 1750억원가량 늘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감자 및 출자감소 등 법인세가 과세되지 않은 배당소득은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법인법과 법인령을 개정한다는 것이다.

계층별 세부담은 서민·중산층이 6302억원의 세금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됐다. 서민·중산층은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200% 이하인 계층을 일컫는다. 고소득자는 710억원, 중소기업은 425억원, 대기업은 69억원 세금부담이 줄어든다.

기재부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감소 기조에 따른 우려도 반박했다. 추 부총리는 “(2023년 세법개정은) 서민, 중산층과 미래 세대를 위해 꼭 필요한 분야에 세제 혜택이 돌아가도록 고심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법개정안은 증세, 감세 요인이 섞여 있어 중립적”이라며 “경제가 어렵다고 하면서 거기서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은 지금 타이밍상 맞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7.05.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7.05.

◆결혼자금 증여세 감면 및 유망 산업 세제지원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정부는 혼인신고 전후 각 2년(총 4년) 이내 부모, 조부모 등 직계존속으로부터 재산을 증여받는 경우 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1억원을 공제해주기로 했다. 성인 자녀가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을 때 적용되는 기본 공제한도 5000만원(10년간)에서 추가되는 것이다. 막대한 재정 투입으로도 저출산 현상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가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감면 혜택을 강화하고 나섰다.

현재는 성인 자녀가 직계존속으로부터 증여받을 때 5000만원(미성년자 2000만원)이 공제되는데 혼인에 따른 공제로 1억원을 더해주겠다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증여세 공제한도가 개편되는 것은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이번 개정안에 따라 부모로부터 1억 5000만원을 증여받는 예비·신혼부부는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양가 부모로부터 1억 5000만원씩 총 3억원을 증여받을 경우 총 1940만원(970만원×2명)을 절감하게 된다.

내년부터 국내 TV프로그램,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 제작비에 대한 기본 세액공제율도 대폭 확대된다. 같은 예산을 들여 콘텐츠를 만들어도 세금감면액이 대폭 늘어난다. 특히 총 제작비용 중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에서 쓸 경우 국내 산업의 파급효과를 고려해 추가 공제까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제작비 세액공제율은 현행보다 최대 5배까지 상향된다.

또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장려하기 위해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을 현행 7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국내 복귀 기업에 대한 소득세·법인세 감면 혜택을 현행 ‘5년 100%+2년 50%’에서 ‘7년 100%+3년 50%’로 확대된다. 유턴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 인정되는 업종의 동일성 기준도 완화한다.

정부는 바이오의약품 관련 기술·시설을 국가전략기술·사업화시설에 포함했다. 국가전략기술에 선정되면 시설투자는 25~35%, R&D는 30~50%까지 세액공제를 받는다.

세액공제를 받는 신성장 원천기술 대상도 늘렸다. 미래차 등 기존 13개 분야 262개 기술에, 에너지효율 향상 핵심기술, 핵심광물 정·제련 등 공급망 관련 필수 기술 등을 추가했다.

정부는 물가 인상에 편승해 널뛰기하는 맥주·탁주(막걸리) 가격을 잡기 위해 물가연동제를 폐지한다. 앞으로는 법정세율의 ±30% 범위에서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세율을 조정한다. 이와 함께 맥주 주세 과세 방식을 종량세로 전환하면서 생맥주의 급격한 세부담 증가를 완화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20% 경감세율 적용 기한도 3년 연장한다.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한도는 기존 연 24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확대된다. 장기 주택저당 차입금 이자상환액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도 폭넓게 적용한다. 납입한도는 연 60만원이 늘고 공제를 추가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장기주택저당 차입금 이자상환액에 대해서도 소득공제를 확대한다.

주택요건은 기준시가 5억원 이하에서 6억원 이하로 완화한다. 기존 공제한도는 300만~1800만원이었으나 600만~2000만원으로 높아진다. 전세보증금 등에 대한 간주임대료 과세 특례도 일부 연장된다.

연간 1200만원인 사적연금소득 분리과세 기준이 1500만원으로 높아진다. 육아휴직자도 소득 요건 등만 충족하면 매월 70만원씩 5년간 적금하면 최대 5000만원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청년도약계좌 가입이 가능해진다.

OTT.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OTT.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부자감세’ 논란 연장선상… “재정 위협까지 커질 것”

전문가들은 이번 세법개정안이 여전히 ‘부자감세’ 비판을 면치 못한다고 평가했다.

강병구 인하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작년에 이어 감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전년도에 비해서는 서민층과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세제지원을 확대했지만 여전히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추진했던 부자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며 “전반적으로 세수 결손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상황이 지속되면 정부가 주장해온 재정의 지속 가능성도 위협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지적했다.

또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한 민간 주도의 성장을 강조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부자감세보다는 저소득층·서민층에 대한 세제지원을 통해 분배 구조를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유호림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일부 중소기업과 서민의 조세 부담을 완화해주긴 했지만 (정부가) 지난해 다하지 못한 부자감세를 완결하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어 “결혼자금 증여세 감면의 경우 소득분위 상위 10% 가구에나 해당하는 얘기지 나머지는 해당하지 않는다”며 “결혼·창업자금 등 여러 증여 공제까지 받으면 30대 초반인 자식에게 약 14억원을 세금 안 내고 증여하는 게 가능하다. 이같이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을 것 같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늘 점차적으로 공제 금액과 범위를 확대해 왔듯이 이번에도 결혼을 시작으로 상속세까지 공제할 것”이라며 “상속·증여세는 기회균등 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인데 정부가 99%가 아닌 1%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수가 부족하다면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감면해줄 수 없으니 세금을 내라는 말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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