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마련
우리나라 첫 현대식 대형서점
1948년 개관 후 시민 사랑받아
​​​​​​​추억·낭만 담긴 자료 모아 전시

대한기독교서회 건물에 있었던 종로서관 모습. 1954~1957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대한기독교서회 건물에 있었던 종로서관 모습. 1954~1957년.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토요일 저녁, 종로서적 입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들은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기를, 혹은 자신도 누군가의 이름을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인파로 가득한 종로 거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소설가 김연수씨의 작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 2007)’에 그려진 종로서적의 모습이다. 한국 현대 서점 사(史)에 큰 획을 그었던 서점인 종로서적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었다. 과거 이곳은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이자, 독서인의 사랑을 받은 곳이었다. 2002년 부도로 폐점 소식을 전했지만, 여전히 추억과 낭만이 담긴 종로서적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이와 관련, 서울역사박물관 분관 공평도시유적전시관 기획전시실에서 ‘종로서적’의 추억을 돌아보는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기획전시가 지난 21일 개막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7일까지다.

종로서관(1962년)  (출처: 국가기록원) ⓒ천지일보 2023.07.24.
종로서관(1962년) (출처: 국가기록원) ⓒ천지일보 2023.07.24.

◆한국 서점 역사에 한 획 그어

전시는 종로서적이 가진 한국 현대 서점사적 의의 조명했다. 또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한 ‘옛 종로서적과 관련한 사연과 자료 공모전’을 통해 만나게 된 종로서적 종사자와 고객이었던 시민들의 기억과 추억의 물건을 공개하는 자리로 마련했다. 특히 종로서적을 사랑했던 시민들의 인터뷰 영상도 공개돼 생생한 옛 추억을 들여다볼 수 있다.

지금의 대한성서공회와 그 옆 건물에 자리했던 종로서적은 1948년의 ‘종로서관’을 전신으로 하여 1963년에 ‘종로서적센터’로 개점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대형서점이다.

1970년대 종로서적 모습, ‘내외 출판계’ 1976년 12월호, 강성호 소장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1970년대 종로서적 모습, ‘내외 출판계’ 1976년 12월호, 강성호 소장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소설가 박완서씨는 산문집 ‘호미(2014)’를 통해 “종로서적이 처음 개점할 때 이름은 종로서관이었다. 아마 숙명여고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일본어 번역본을 통해 문학의 세례를 받은 문학소녀들에게 그곳은 꿈의 궁전이었다. 처음 보는 대형서점이었다. 들어갈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마어마하게 큰 매장이 우리말로 된 책으로 꽉 차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라고 당시의 모습을 담아 놨다.

◆지식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

종로서적은 단순히 책만 판매했을 뿐 아니라 당대 지식·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책이 가장 유력한 지식과 정보매체였고, 독서·출판의 사회적 인프라가 전체적으로 부족했던 과거에는 종로서적이 도서관이나 문화정보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종로서적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고 새로운 독서 문화를 이끌어 나갔다. 이는 종로서적을 이용한 시민의 인터뷰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보(社報)이자 수준 높은 독서저널이었던 ‘종로서적’ 1978~1992년, 조유성 소장(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사보(社報)이자 수준 높은 독서저널이었던 ‘종로서적’ 1978~1992년, 조유성 소장(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학창시절 종로서적을 이용했던 김민우씨는 “종로서적이요? 공부를 하게끔 동기를 계속해서 부여해 주는 장소라고 그럴까, 거기 가면은 책은 다 있으니까. (생략)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지식의 늪에서 헤맬 때 여기 가면은 ‘이런 게 있구나’ 라는 걸 보여주는 장소였어요”라고 전했다.

종로서적이 우리나라 서점 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는 근무자들이 남긴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 종로서적 직원이었던 이선우씨는 “처음 발령을 받고 만난 선배들이 다들 ‘종로서적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종로대학이다. 자기가 맡은 파트에서 박사 소리 듣게끔 일해야 된다’는 말들을 많이 했었어요”라고 전했다.

종로서적 ‘벨기에 만화’ 도서전시회 당시의 모습이다. 종로서적 본관에서 신관으로 넘어가는 계단의 모습이 담겼다(1988년), 소장 전세영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종로서적 ‘벨기에 만화’ 도서전시회 당시의 모습이다. 종로서적 본관에서 신관으로 넘어가는 계단의 모습이 담겼다(1988년), 소장 전세영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천지일보 2023.07.24.

◆2002년 월드컵 열기 속에 폐점

이처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은 종로서적은 지난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서 부도를 맞아 폐점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종로에 잇따라 들어서고, 온라인서점이 등장하면서 여러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이에 대해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서울대 법대 명예교수)은 ‘월드컵과 종로서적’이라는 글을 한 신문을 통해 게재했다. 그는 글을 통해 “하필이면 48년 만에 민족의 염원을 이룩하여 새 역사를 창조했다는 바로 그날 접한 참혹한 소식이다. 그러나 종로서적의 죽음은 어쩌면 현충일의 사이렌보다 장엄한,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弔鐘)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후 출판계에서는 95년 역사의 종로서적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이에 2016년 종로서적이 다시 문을 열었다. 비록, 새롭게 개장한 종로서적이 기존의 위치와 운영자가 달랐지만, 옛 종로서적을 복원한다는 취지에서 상징성과 의미를 더했다.

서울역사박물관 김용석 관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옛 종로서적에 종사했던 분들을 포함해 여러 시민들께서 그들의 기억과 추억이 담긴 물건과 사연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전시를 통해 ‘종로서적’을 추억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연일 수만명 약속장소로 명성이 높은’ 종로서적 입구 모습이 실린 신문기사, ‘일간스포츠’ 1992년 11월 26일자, 소장 이철지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2023.07.24.
‘연일 수만명 약속장소로 명성이 높은’ 종로서적 입구 모습이 실린 신문기사, ‘일간스포츠’ 1992년 11월 26일자, 소장 이철지 (제공: 서울역사박물관)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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