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물-아랫물 미혼합 특이호수
역사적 지문 ‘나이테’처럼 퇴적
“1950년경 새 지질시대 시작”

12일(현지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포드 호수 바닥에서 프랜신 매카시 브록 칼튼 대학 지구과학 교수를 포함한 인류세 탐험대장이 호수에서 채취한 퇴적물 샘플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AFP/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크로포드 호수 바닥에서 프랜신 매카시 브록 칼튼 대학 지구과학 교수를 포함한 인류세 탐험대장이 호수에서 채취한 퇴적물 샘플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AFP/연합뉴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46억년이라는 지구 역사 속에서 현대 인류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대를 뜻하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의 표본지가 주목받고 있다.

현생 누대에서는 생명체가 생기기 이전의 선캄브리아기가 포함된 고생대부터 중생대, 신생대라는 지질시대로 이어진다. 이 속에서 인류가 지구에 본격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한 기간은 수천만년에 달하는 다른 지질시대와 달리 300만년도 채 안 된다. 이를 신생대에서 제4기로 칭하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현대 인류 역사는 수만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구에 미친 영향력은 막대한 만큼 과학자들은 이를 지질시대 상에서도 구분해야 된다고 보고 있다. 이게 바로 인류세다.

인류세는 200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이 처음 제안했다.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 등 인간 활동으로 인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이 홀로세의 안정적인 상태를 벗어남으로써,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인류세)에 들어섰다는 주장이다.

인류세 표본지로 과학자들은 15년 가까이 지구촌 여러 곳을 놓고 갑론을박을 펼쳐왔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포드 호수를 비롯해 폴란드의 수데텐 산맥의 이탄 습지, 미국 캘리포니아의 시어스빌 호수, 발트해 해저, 일본 만, 중국의 물로 채워진 화산 분화구, 남극 반도의 구멍 뚫린 얼음 핵, 그리고 호주와 멕시코만의 산호초 등 11곳이다.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천연지대로 꼽힌다.

그중에서 과학자 연구팀은 한 곳을 유력지로 선정했다. 지난 2009년 만들어진 인류세 작업그룹(AWG: Anthropcene Working Group) 산하의 위원회 과학자들은 11일(현지시간) 프랑스 릴에서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크로포드 호수를 인류세 표본지로 선정했다고 미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이들은 핵폭발로 인해 축적된 플루토늄, 방사성 탄소와 화석 연료 사용증가로 축적된 비산재의 변화를 측정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인적이 드문 숲 속 크로포드호수의 바닥 진흙층이 지구에 새로운 시대인 인류세가 도래했는 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선정됐다. (AP/뉴시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인적이 드문 숲 속 크로포드호수의 바닥 진흙층이 지구에 새로운 시대인 인류세가 도래했는 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선정됐다. (AP/뉴시스)

크로퍼드 호수는 면적이 운동장 2~3개 크기인 2.4헥타르(0.024km²)에 불과하지만 높이가 24m에 이르고 윗물과 아랫물이 섞이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호수 밑바닥에는 산소가 거의 없어 물고기, 곤충, 유기물질이 내려가지 못한다. 그저 무기물질이 아주 천천히 낙하할 뿐이다. 호수의 ‘나이테’인 셈이다.

연구자인 고미생물학자 프란신 매카시 온타리오주 브록대 지구과학 교수는 “지구가 이전 1만 1700년 동안과 달리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전환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1만 1700년 전 시작돼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온 시기인 ‘완신세(完新世, Holocene)’로 일컫는다. 이 완신세가 끝나고 인류세가 시작됐다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퇴적물을 통해 인류 활동의 지질학적 지표를 검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프란신 매카시 교수는 “호수의 모양이 수직 혼합을 막아 바닥 수와 표면 수가 섞이지 않는다”며 “바닥의 호수는 지구의 나머지 부분과 완전히 고립돼 있다”고 부연했다.

AWG가 인류세를 공식화하는 최종 제안보고서를 제출하면 하위위원회와 상위 위원회인 국제위에서 투표로 찬반을 결정한다. 이들 위원회는 전 세계 100만명 이상의 지구과학자를 대표하는 국제지구과학협회 일부다. 과반수로 위원회를 차례로 통과하면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37차 국제지질학대회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비준이 완료되면 인류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1만 1700년 동안 이어져 온 ‘홀로세’를 끝내고 인류세에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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